책소개
코랴크인은 캄차카반도의 토착 민족이다. 오래전부터 축치족, 유카기르족, 예벤키족, 예벤족, 러시아인 등과 인접해서 생활했다. 코랴크인과 축치족 및 러시아인의 경계는 아나디르강이다. 코랴크인은 아나디르강 북쪽, 축치족은 아나디르강 남쪽에는 거주하지 않는다. 축치인은 주로 추콧카만에 거주하는데 과거에는 종종 이 경계를 넘어 코랴크인을 공격해 코랴크인을 죽이거나 포로로 잡아갔다. 1930년에 코랴크 민족 자치 지구가 제정되었고 현재 코랴크 자치구로 재조성되었다. 코랴크 자치구에는 티길(Тигиль), 펜진(Пенжин), 올류토르(Олютор), 카라긴(Карагин) 네 개 지역이 포함된다.
코랴크인의 주된 경제 활동은 순록 사육이다. 러시아인의 끊임없는 문명화 정책에도 코랴크인의 순록 사육 방식은 과거의 생태적, 자연 친화적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물론 어로나 사냥에도 종사하지만 보조적인 생산 활동이다. 모피 동물의 경우 개체 수가 급속하게 감소하면서 코랴크인의 경제 활동에서 비중이 아주 미미해졌다. 어로와 바다 동물 사냥은 여름에만 가능하기 때문에 주민들은 긴 겨울을 위해 여름에 사냥해 비축해 둔다. 그들의 전통 신앙은 애미니즘이다. 동물뿐 아니라 하늘, 바다, 산 등 주변의 모든 사물에 생명이 있다고 믿는다. 모든 마을에는 아파펠(аппапель)이라는 성소(聖所)가 있는데 그곳에 제물로 순록, 드물게는 개와 바다 동물을 바치며 축원을 한다.
이 책은 코랴크인 설화 42편이 수록되어 있다. 악행을 경계하고, 풍족한 삶을 추구하며, 지혜와 힘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이야기들은 당시 코랴크인이 어떠한 가치를 중요시했는지 잘 보여 준다.
200자평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여러 민족의 역사를 보유하고 있는 의미 있는 곳, 시베리아. 지역의 언어, 문화, 주변 민족과의 관계, 사회법칙, 생활, 정신세계, 전통 등이 녹아 있는 설화. 시베리아 소수민족의 설화를 번역해 사라져 가는 그들의 문화를 역사 속에 남긴다.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시베리아 설화가 그리스 로마 신화나 북유럽의 설화에 조금은 식상해 있는 독자들에게 멀고 먼 시베리아 오지로 떠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게 도와주길 기대한다.
옮긴이
엄순천은 러시아어학 박사다. 현재 성공회대 외래교수로 재직 중이며 시베리아 소수민족 언어 및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 중이다. 저서로 ≪잊혀져가는 흔적을 찾아서: 퉁구스족(에벤키족) 씨족명 및 문화 연구≫(2016), 역서로 ≪북아시아설화집 3: 나가이바크족, 바시키르족, 쇼르족, 코미족, 텔레우트족≫(2015), ≪예벤키인 이야기≫(2017) 등이 있다. 연구 논문으로는 <중국 문헌 속 북방지역 소수종족과 퉁구스족과의 관계 규명: 순록 관련 기록을 중심>(2018), <에벤키족 음식문화의 특성 분석 − 인문지형학, 인문경제학, 민속학적 관점에서>(2017) 등이 있다.
차례
까마귀 이야기
비를 멈추게 한 쿠이킨냐쿠
쿠이킨냐쿠의 여행
쿠이킨냐쿠와 늑대의 신경전
쿠이킨냐쿠와 여우
바다표범 기름을 찾아 헤매는 쿠이킨냐쿠
곰을 잡은 쿠이킨냐쿠
까마귀 대장 쿳킨냐쿠와 까치 딸 미티
까마귀 무사 소홀릴란
까마귀와 늑대
까마귀와 새끼 쥐들
마찰란
까마귀와 태양
벌받은 탐욕스러운 까마귀
까마귀 남편과 갈매기 부인
해를 삼킨 까마귀 벨빔틸린
악령을 떨쳐 버린 까마귀의 딸
곰과 여러 동물 이야기
곰의 아들 카이니빌류
곰 굴에서 겨울잠을 잔 목동
게으름 때문에 약혼자를 잃은 레라
여우, 바다표범, 평화주의자 곰
개 남편과 바다표범 아내
오만한 비초크
악령 이야기
아버지 대신 악령에게 잡혀간 남매
다섯 자매
악령을 죽인 고아 소년
악령을 죽인 예멤쿠트의 아들
용감하고 지혜로운 코랴크인 이야기
영리하고 기민한 빅사
지혜로운 바보 오요
리니날필리나의 복수
날렵한 미비트
무사 자매
기억을 잃고 툰드라를 헤맨 인탈라트
임카의 아들 피니난
해안 코랴크인과 툰드라 코랴크인의 화해
탄기들을 교화한 사냥꾼
소홀릴란의 아내
부자와 가난한 형제의 지혜 겨루기
예멤쿠트와 하예옐기트
쿳킨냐쿠와 샤먼들
늑대에게 납치된 딸을 찾아온 샤먼 키트나
휘파람 부는 남자와 암말료
산삼을 구해 온 효자 문효손
해설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까마귀와 늑대는 낭떠러지 바로 앞에까지 굴러갔다. 까마귀는 하늘로 날아갔지만 늑대는 강으로 날아가 강물에 박혔다. 물이 얼어 있어서 늑대는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결국 까마귀에게 도와 달라고 애원했다.
“너도 잘 탈 수 있다고 했잖아!”
“순록 떼를 줄게.”
“필요 없어. 내게도 순록은 얼마든지 있어.”
“내 여동생을 줄게.”
“좋았어!”
까마귀는 흔쾌히 동의하면서 늑대가 물 밖으로 나오는 것을 도와주었다. 늑대는 나와서 몸을 턴 뒤 툰드라로 냅다 달아나면서 소리쳤다.
“내 여동생을 주고 싶지만 너는 너무 까매!”
-<까마귀와 늑대>, 58~5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