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오이디푸스 왕>에서와는 달리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의 오이디푸스는 모르고 저지른 범죄와 정당방위는 죄가 아니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그의 죄가 면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운명의 비밀을 집요하게 캐내려는 지나친 호기심과 행동에는 이미 오만이라는 죄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만한 인간에게 신의 심판은 불가피하다. 과거에 라이오스를 죽였던 오이디푸스의 성급한 성격은 크레온과의 대립에서, 그리고 아들 폴리네이케스와의 대립에서 다시 반복되고 있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에는 <오이디푸스 왕>에서처럼 운명에 저항하는 개인의 의지가 그리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는 도리어 운명에 순응하고 자신에게 다가올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코러스는 자신의 운명을 피하기 위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그것이 헛된 일임을 상기시키고 운명에 순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한다.
오이디푸스가 테베로부터 추방되지만, 아무도 신들이 왜 오이디푸스의 운명을 그렇게 정했는가를 묻지 않는다. 인간에게 내려진 신의 부당한 재난조차도 그리스 사람들에게는 신이 주관하는 우주 질서의 일부로 파악되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이 세상에 인간으로서는 불가해한 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이러한 힘이 인간의 노력이나 이성의 영역 밖에서 인간의 삶을 끊임없이 위협하고 있다는 불안한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인간 존재의 취약성을 드러낸다.
이 작품에서 신탁은 진실인 것으로 판명되지만 그 신탁의 목적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는 신의 뜻이라는 비논리적인 요소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운명과의 관계에서 인간의 한계는 너무나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이디푸스의 행위와 한 인간으로서의 당당함과 의연함은 인간의 존엄성을 부각시킨다. 죽음을 이미 예견하고 있었던 오이디푸스지만 죽음이 임박하기 직전까지 갈등하고 고뇌한다. 그러나 오이디푸스는 성숙한 내면의 눈으로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성찰하고 마침내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오이디푸스가 삶에 더 이상 연연하지 않고 숙명적인 죽음의 자리로 의연하게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따라서 그의 죽음은 우리에게 깊은 연민을 자아낸다.
200자평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3부작 중 두 번째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자신의 비극적 운명을 알고 난 뒤, 왕국에서 추방당한 오이디푸스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운명을 피하지 않고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오이디푸스의 모습에서 비로소 인간적인 존엄이 구현된다. 그리고 그것은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날까지도, 끊임없이 인생의 모진 시험에 처하게 되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다.
지은이
소포클레스는 ≪시학≫의 저자 아리스토텔레스가 그 어느 작가보다도 높이 평가했던 그리스 극작가다. ≪시학≫의 비극론은 바로 소포클레스의 비극을 토대로 해 집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괴테는 소포클레스를 다음과 같이 칭찬하고 있다. “소포클레스 이후 그 어떤 사람도 내게 더 호감이 가는 사람은 없다. 그는 순수하고 고귀하고 위대하며 쾌활하다. 현존하는 소포클레스의 작품이 몇 편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유감이다. 그러나 몇 편의 작품일지라도 이 작품들은 읽으면 읽을수록 더 좋게 느껴진다.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작품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기원전 496년 그리스 아테네 근교에 자리 잡은 콜로노스에서 태어난 소포클레스는 아테네가 문화적으로 가장 성숙했던 시기에 배우인 동시에 극작가로 활동했다. 수려한 용모와 배우로서 손색이 없는 신체적 조건을 갖추고 있어서 처음에는 배우로서 명성을 날렸다. 기원전 468년, 28세에 첫 작품을 발표했고 이는 경연대회에서 일등상을 받았다. 이후 123편의 작품을 썼고 24회나 일등상을 받았다. 정치가로서도 탁월한 식견을 지녔던 소포클레스는 기원 전 445년, 델로스(Delos) 동맹이 결성되었을 때, 아테네 동맹국의 재정을 통괄하는 재정관에 선출되었다. 또한 기원전 443년에 페리클레스와 더불어 10명의 지휘관 직에 선출되었으며, 기원전 440년에는 사모스(Samos) 섬 원정에 출전할 장군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평생을 아테네에 살면서 그가 보여준 애국심과 진지한 인품은 시민들의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일생동안123편의 작품을 발표했지만 현존하는 작품은 다음 7편뿐이다.<아이아스>, <안티고네>, <오이디푸스 왕>, <필록테테스>, <엘렉트라>, <트라키스의 여인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가 그것이다.
옮긴이
김종환은 현재 계명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영미어문학회의 편집위원장과 한국셰익스피어학회의 편집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셰익스피어와 타자≫, ≪셰익스피어와 현대 비평≫, ≪셰익스피어 작품 각색과 다시쓰기의 정치성≫, ≪인종 담론과 성 담론 : 셰익스피어의 경우≫, ≪명대사로 읽는 셰익스피어 비극≫, ≪명대사로 읽는 셰익스피어 희극≫, ≪셰익스피어 연극 사전≫(공저), ≪음악과 영화가 만난 길에서≫, ≪상징과 모티프로 읽는 영화≫가 있다. 셰익스피어 작품 번역서로는 4대 비극과 ≪로미오와 줄리엣≫, ≪줄리어스 시저≫, ≪베니스의 상인≫, ≪한여름 밤의 꿈≫, ≪헨리 5세≫, ≪리처드 3세≫, ≪자에는 자로≫,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있다. 소포클레스의 작품 전체를 완역했고, 아이스킬로스의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와 ≪오레스테스 3부작≫,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 ≪엘렉트라≫, ≪히폴리투스≫를 번역 출판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서막
제1삽화
제2삽화
제3삽화
제4삽화
종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얘들아, 아비는 이제 너희 곁을 떠난다.
나의 모든 것이 끝나는구나.
그동안 날 보살펴 주었던
너희의 수고도 이제 끝났다.
얘들아, 날 보살펴 주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한마디 말이 수고스런 삶의 고통과 무게를
덜어 줄 것이다. 그건 바로 사랑이란 말이다.
나 오이디푸스는, 그 어느 누구에게서도
받을 수 없을 크나큰 사랑으로 너희를 사랑했다.
너희는 이제 아비 없는 여생을 살아가야 한다.
157-15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