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1664년 베르사유 궁전에서 초연된 <타르튀프>는 곧 교회와 성직자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쳤다. ‘희극’의 본분을 잊고 감히 ‘종교’ 문제를 다루었다는 이유로 이후 <타르튀프> 공연이 전면 금지되었다. 몰리에르는 <타르튀프>의 공연을 위해 백방으로 애썼다. 루이 14세에게 청원을 넣기도 하고, 내용 일부를 손봐 제목까지 바꾸어 무대에 올리려고도 했다. 공연 금지 조치가 부당하다며 고등법원에 소송도 제기했다. 이 모든 노력이 허사로 돌아가자 몰리에르는 그 충격으로 한동안 극장 문을 닫아야만 했다. 초연 이후 5년이 흘러서야 이 작품에 대한 해금이 이루어졌다. <타르튀프> 공연이 이토록 순탄치 않았던 배경에는 정치 종교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종교인의 위선을 거침없이 폭로한 내용으로 인해 교회와 고위 성직자들 눈밖에 난 이유가 가장 컸다.
오르공은 성직자 타르튀프를 집에 들인 뒤 그를 성인처럼 떠받들며 다른 가족들도 그에게 봉사하도록 강제한다. 이에 불만을 품고 있던 가족들은 오르공이 약혼한 딸을 파혼시켜 타르튀프와 결혼시키려 하자 참았던 분노를 폭발시킨다. 가족들은 이구동성으로 타르튀프의 위선을 조목조목 꼬집지만 오르공은 타르튀프에 대한 믿음과 섬김을 거둘 줄 모른다. 한편 타르튀프는 오르공의 맹목적인 호의를 방패삼아 오르공의 아내 엘미르를 유혹하려다 오르공의 아들 다미스에게 덜미를 잡힌다. 타르튀프의 배은망덕함이 천하에 드러났음에도 오르공이 이를 좀처럼 믿지 않자 엘미르는 타르튀프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대담하게 덫을 놓는다. 위선자 ‘타르튀프’는 당시 프랑스에서 ‘영혼의 지도자’를 자처하며 각 가정에 상주하던 성체회 소속 수도사를 빗댄 인물이다. 이들은 가족들의 사생활까지 단속하면서 프랑스 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는데, 몰리에르가 직접 그 폐단을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몰리에르의 직업적 삶이 희극과 축제로 어우러져 있다고 해도 그의 인간적·지식인적 삶은 투쟁의 연속이었다. 그것은 중세로의 회귀를 꿈꾸는 귀족, 타락한 정치적 종교인, 스콜라 철학에 그 뿌리를 둔 사변적 의술을 고집하는 의사, 아리스토텔레스적 사고 체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학자 등 시대착오적인 세계관 속에서 경직된 도덕률을 고사하려는 수구 세력에 대한 투쟁이었다. 급진 가톨릭 세력으로 규합되는 이들은 사실 젊은 왕 루이 14세에게도 공통의 적이었다. 왕은 새로운 권력의 확립을 위해 종교와 정치는 물론 학문과 예술에서도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려 했다. 루이 14세가 몰리에르를 보호해 준 것은 이 공통의 적에 대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었으며, <타르튀프>는 이 둘의 이해관계가 탄생시킨 작품이었다. 그러나 루이 14세는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곧 예술적 자유를 억압하기 시작했다. 자유에 대한 갈망이 누구보다도 강했던 예술가 몰리에르에게 이러한 폭압은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이제 루이 14세에게도 몰리에르 같은 자유로운 예술가들은 전제주의(專制主義)적 왕권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한 존재로 비쳐지기 시작했다. 프랑스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왕 루이 14세와 프랑스의 가장 위대한 작가 몰리에르의 극적인 만남, 밀월 그리고 결별로 이어지는 역사적 에피소드는 절대 권력을 손에 쥐려던 왕과 자유의 가치를 사수하려던 예술가의 공감과 반목의 드라마였던 것이다. 그리고 <타르튀프>는 이 드라마의 중심에 있는 작품이다.
200자평
루이 14세의 비호 아래 승승장구하던 몰리에르는 문제작 <타르튀프>로 인해 연극 인생 최대 고비를 맞는다. 종교인의 위선을 대담하게 비판하고 나선 이 작품에 교회와 성직자들이 거센 비난을 퍼부었고 이후 <타르튀프>의 공연은 한동안 금지되었다. 수년 만에 겨우 다시 무대에 오른 <타르튀프>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으며, 이후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한 ‘타르튀프’는 프랑스어에서 ‘위선자’를 뜻하는 일반명사가 되었다.
지은이
몰리에르(Molière, 1622∼1673)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극작가이자 배우다. 서양 중세를 거치며 비극에 비해 열등한 장르로 간주되던 희극의 미학적 가치를 제고해 근대적 의미에서 희극의 위상을 정립했다. 영국인들이 영어를 셰익스피어의 언어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프랑스인들은 프랑스어를 몰리에르의 언어라고 표현한다. 그만큼 몰리에르의 희극에는 프랑스 고유의 정서와 문화가 마술 같은 언어로 녹아들어 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최고의 엘리트 교육을 받았으나 편안한 삶을 마다하고 연극에 빠져들었던 몰리에르는 13년의 유랑 극단 생활을 거치며 유럽 근대의 여명기에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계층의 삶을 경험했다. 유랑을 마치고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파리 연극계로 재입성해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지만 수많은 시기와 모함에 맞서야 했다. 그는 52세로 삶을 마감할 때까지 40대 초반에 발병한 폐질환에 시달렸지만 한순간도 웃음을 놓지 않았다. 이 위대한 희극 작가의 작품들은 300년이 넘도록 전 세계 사람들에게 삶의 울림이 있는 웃음을 선사해 왔고 앞으로도 우리에게 웃음을 통해 삶의 의미를 깨닫고 삶이 주는 감동을 느끼게 해 줄 것이다.
옮긴이
김익진은 고려대학교와 파리 10대학에서 프랑스문학을 전공했다. 몰리에르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고려대학교와 강원대학교 강사를 거쳐 현재 강원대학교 인문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프랑스고전문학회의 학술이사 및 총무이사를 지냈고 현재는 몰리에르와 웃음에 관한 연구 및 문학을 활용한 마음 치유의 실천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는 ≪프랑스 뮤지컬의 이해≫, ≪인문학 산책≫, ≪시민의 인성≫(공저) 등과 ≪아내들의 학교≫, ≪몰리에르 희곡선≫, ≪예술치료의 모든 것≫ 등의 역서가 있다.
차례
서문
나오는 사람들
1막
2막
3막
4막
5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도린 : 지난번 난리통에도 현명하게 처신하셨고
폐하 편에 서서 일할 때도 정말 용감하셨는데
타르튀프에게 집착하신 이후로
얼간이가 돼 버리셨어요.
타르튀프를 형제라 부르며 영혼으로 사랑하지요
자기 어머니, 아들, 딸, 부인보다 백배는 더요.
주인님은 유일하게 타르튀프에게 비밀을 털어놓고
타르튀프가 신중한 분이라며 시키는 대로 행동하죠.
타르튀프에게 빠져서 끌어안지를 않나
자기 애인도 그렇게 사랑스럽게 대하지는 못할걸요.
식사할 땐 그를 제일 상석에 앉혀요.
그러곤 먹는 걸 보며 행복해하시죠. 혼자 6인분을 먹는데.
제일 맛있는 부위로만요. 다른 사람들은 다 양보해야 해요.
그가 트림을 하면 주인님은 “신의 가호가 있기를!” 이러죠.
주인님은 그자한테 미쳤어요. 그가 자기 전부고 영웅이죠.
그가 뭘 하든 찬사해요. 말끝마다 그의 말을 인용하고요.
그가 하는 일은 아무리 사소한 것도 주인님께 기적이죠.
그가 하는 말은 주인님께 모두 신의 말씀이에요.
주인님이 속는 걸 잘 알고 즐기는 타르튀프는
온갖 속임수를 다 써 가며 주인님을 홀리고 있지요.
독실한 신자인 척하면서 항상 돈을 뜯어내고
우리 모두에게 언제나 잔소리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죠.
심지어는 그자의 시중을 드는 하인까지
우리에게 훈계를 하려 든다니까요.
-34쪽
오르공 : 처남, 그 사람을 알게 되면 처남도 반할 거야.
그리고 자네의 기쁨은 끝도 없을 걸세.
그분은… 말하자면… 아… 사람이… 한마디로, 사람이지!
그분의 훈계를 잘 따르는 사람은 깊은 평화를 맛보게 되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하찮은 존재로 바라보게 되지.
그래 나도 그분과 대화를 하면 완전히 달라져.
그분은 어떤 것에도 애착을 갖지 말라고 가르쳐 주시지.
내 영혼을 세속의 연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셨어.
형제, 자식, 어머니, 아내가 죽는 걸
큰 고통 없이 바라볼 수 있게 되었어.
-44쪽
클레앙트 : 참내! 사기꾼 하나가 감히 성스러운 척 얼굴을 찡그려 대며
점잖은 모습으로 매형을 속였다고 해서
다른 모든 사람이 그와 같을 것이고
오늘날 진실한 독신자는 없으리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런 결론은 리베르탱들에게나 넘겨주시고
그자의 겉모습과 진정한 미덕을 구별하고
사람을 너무 서둘러 평가하지 마세요.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중심을 잡아야 해요.
사기꾼을 찬양하는 일도 피해야겠지만
참신앙을 모욕하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되겠지요.
혹시 만일 또 극단으로 치우치실 일이 있다면
그때는 차라리 지금처럼 사기를 당하는 게 낫겠지요.
-19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