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카릴 처칠의 희곡 〈톱 걸스〉(1982)는 대처리즘 시대 영국 사회를 배경으로 여성의 성공과 희생, 계급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처칠은 과거와 현재를 병치하고, 성별 교차 배역, 중첩 대화 등 실험적 기법을 사용해 여성의 삶을 조명한다. 1막에서는 말린이 회사 승진을 자축하며 역사적 여성 인물들을 초대해 만찬을 연다. 교황 조운, 여승 니조, 인내의 그리셀다, 전사 그렛, 여행가 이자벨라 등 ‘최고의 여성들’은 남성 사회에서 성취를 이뤘지만 대부분 모성을 희생하며 고통을 감내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2막과 3막은 말린의 직장과 가족사를 그린다. 말린은 하이플라이어로서 남성적 방식을 답습해 성공했지만, 딸 안지를 언니 조이스에게 맡기고 가정을 포기해야 했다. 노동자 계급에 머물며 안지를 키운 조이스는 빈곤과 좌절 속에 산다. 말린은 능력주의와 개인주의를 믿지만, 조이스는 계급의 벽과 대처리즘의 냉혹함을 비판한다.
말린의 동료 윈과 넬도 남성 중심 사회에서 강인한 여성상을 구축했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성을 상실하거나 불안정한 삶을 산다. 구직자 루이스, 쇼나, 지니인은 최고가 되지 못한 평범한 여성들로, 여성의 노동 현실과 차별을 보여준다.
처칠은 ‘최고의 여성’이 되는 과정에서 여성성이 억압되거나 남성적 가치에 동화된다는 점을 비판하며, 진정한 성공이란 무엇인지 묻는다. 여성의 연대와 사회 구조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 작품은 현재까지도 전 세계에서 상연되며 여성과 계급 문제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200자평
카릴 처칠의 희곡 〈톱 걸스〉(1982)는 여성의 성공과 희생, 계급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역사적 여성 인물들이 등장하는 만찬에서 성취와 고통을 겪은 여성들의 이야기가 조명된다. 대처리즘 시대의 영국 사회를 배경으로, 여성의 사회적 위치와 개인주의적 성공이 가져오는 비용을 비판하며, 진정한 여성 연대와 사회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지은이
카릴 처칠(Caryl Churchill, 1938∼)
현재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극작가 중 한 명이다. 1972년 <소유자들(The Owners)>이란 작품으로 런던 로열코트 극장에서 극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1970년과 1980년대에는 페미니스트 극의 대모로 명성을 쌓았고 이후 전쟁, 혁명, 환경, 여성 노동, 신자유주의, 팔레스타인 문제 등 당면한 국제적 이슈와 역사적 사건들로 관심을 넓히며 거침없는 창작력을 보이고 있다. <넘버>에서는 인간 복제라는 가장 첨예한 문제를 다루기에 이른다. 심도 있는 지적 탐구를 바탕으로 복장 전환, 언어 실험, 1인 다역, 교차 배역, 그리고 역사 다시 쓰기라는 극작 기법은 브레히트의 서사극 스타일과 결합되어 처칠만의 독창적인 연극 미학을 구축한다. <클라우드 나인>(1979∼1981), <최고의 여성들>(1982), <엄청난 돈>(1987∼1988), <넘버>(2004)로 오비상을 총 네 차례 수상했다.
옮긴이
이지훈
이지훈은 연세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후 미국 뉴욕주립대학교 올버니캠퍼스에서 연극학 석사, 동아대학교에서 〈King Lear와 Lear의 비교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저서로는 희곡집 《기우제》(평민사, 2006), 《셰익스피어와 사랑에 빠지다》(북스힐, 2001, 편저), 역서로는 《카릴 처칠 희곡집 : 비네가 탐/클라우드 나인》(평민사, 1997), 《꾀뜨미네의 사흘》(일월서각, 1985), 《벨 자》(고려원, 1983), 《운전 배우기》(지만지, 2012), 《빨래》(지만지, 2016), 《이 집에 사는 내 언니》(지만지, 2017), 《포럼으로 가는 길에 생긴 재밌는 일》(지만지, 2018) 그리고 《넘버》(지만지, 2021)가 있다. 논문은 〈King Lear의 모성 부재〉, 〈King Lear와 민담 Source로서의 Cinderella Cycle〉, 〈‘베니스의 상인’의 시간과 공간〉, 〈꿈과 생시 : 최인훈의 ‘둥둥낙랑둥’〉 등이 있다. 미국 UCLA대학, 브라운대학, 일본 도시샤대학에서 방문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는 창원대학교 영문학과 명예 교수다.
〈기우제〉로 1994년 여성신문사에서 수여하는 희곡 부문 여성문학상을 수상했고 이후 영미 여성주의극의 번역과 무대화에 주력해 왔다. 카릴 처칠의 〈비네가 톰〉, 팸 젬스의 〈두자, 피시, 스타스 그리고 비〉, 마리아 아이린 포네스의 〈진흙〉, 자작극 〈그 많던 여학생들은 다 어디로 갔나?〉, 웬디 케슬먼의 〈빠뺑 자매는 왜?〉를 연출했고 그 외 부조리극으로 해럴드 핀터의 〈방〉, 베케트의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 아라발의 〈장엄한 예식〉 등의 작품을 연출했다.
2012년 극단 TNT 레퍼토리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폴라 보글의 〈운전 배우기〉를 국내 초연으로 연출한 바 있으며, 2015년 한국여성연극인협회에서 수여하는 올빛상(극작)을 수상했다.
자작극 〈나의 강변북로〉를 연출하고 출판했으며(평민사, 2020), 2020년 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대본 공모에 〈여로의 끝〉이란 작품이 선정되어 출판되었다(독서학교, 2020). 이어 희곡 《머나먼 벨몬트》(평민사, 2021), 《조카스타》(평민사, 2022) 그리고 《라희도희》(평민사, 2024)를 출판했고 2022년 서울연극협회로부터 극단 활동 40년으로 특별공로상을 수상했다. 그 기념으로 극단 40년사를 기록한 《TNT 레퍼토리와 나의 연극이야기》(평민사, 2023)를 출간했다. 〈여로의 끝〉은 서촌 공간 서로에서 백순원 연출로 낭독극으로 초연되었고 영한 합본이 출간되었다(평민사, 2023).
극단 TNT 레퍼토리(1982년 창단) 대표이며 2017년부터 드라마 연구소 ‘D Forum’을 열고 연극인과 일반인을 위한 희곡 읽기 세미나 강좌와 창작에 주력하고 있다.
차례
초연에 대해
나오는 사람들
배우들의 대사에 대해
1막
2막
3막
부록 : 조운의 라틴어 대사에 대해
해설 : 누가 진짜 ‘톱 걸스’인가?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이자벨라 : 넌 삶이 끝났다고 생각했겠지만 그렇지는 않았지.
조운 : 끝났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그렛 : 슬프다.
말린 : 그래, 내가 처음 런던에 왔을 때, 가끔 슬펐지… 그리고 미국에서 다시 돌아왔을 때도 그랬어. 하지만 단 몇 시간 그랬고. 20년 동안 그랬던 건 아니야.
이자벨라 : 나도 마흔이 되었을 때 내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어. / 오, 난
니조 : 나도 내가 20년 동안이나 그런 감정이었다는 건 아니야. 매 순간은 아니었어.
2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