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의 ‘한국 근현대소설 초판본 100선’ 가운데 하나. 본 시리즈는 점점 사라져 가는 명작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이 엮은이로 나섰다.
1930∼1940년대의 표기법을 그대로 살렸다. 함경북도에서 태어나 만주와 북쪽 지역에서 활동한 작가 특유의 말맛을 느낄 수 있다.
<탁류>는 현경준이 중요하게 형상화하고 있는 지식인 사회운동가의 내면적 갈등과 저항의지를 다룬 작품이다. 앞서 밝힌 대로 현경준이 문학활동을 시작한 시기는 일제의 지속적인 탄압으로 인해 프로문학이 점차적으로 쇠퇴하고 이전의 사상운동과 사회활동들이 위축되었던 시기다. 사회운동가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 열풍과 투옥 과정 속에서 이들은 전향하여 현실 타협적인 동조자로 살아가느냐, 아니면 끝까지 저항하고 투쟁하느냐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작가는 ‘명식’이라는 사회운동가를 등장시켜 이러한 갈등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고 타개해 나갈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작가는 명식을 옥죄는 절망적인 식민지 상황을 ‘검붉은 탁류’로 규정한다. 식민지 현실에 순응하고 타협하면서 그것을 합리화하는 작금의 현실을 비판하며 흙탕물과 오물로 범벅된 사회를 정화시키고 새로운 혁명의 물결로 암울한 현실을 극복해 나가야 함을 시사한다.
<유맹>은 ‘만주국 국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선전문학의 일종’, ‘언론자유라고는 전혀 없는 상황 하에서 우회적으로라도 당시 조선민족의 실생활의 한 단면을 증언하여 보려는 노력’ 등 평가가 정반대로 엇갈린다.
<유맹>의 캐릭터는 두 인물군으로 나누어진다. 낙오된 폐인들과 범법자들을 교화, 선도하려고 희생과 감화 노력을 아끼지 않는 보도소 소장 측이 그것이다. 부락민들을 빛의 세계로 이끌어내겠다는 자발적이고 강한 의지로 특수부락을 책임지고 있는 소장은 상당히 모범적이고 본받을 만한 것으로 그려진다. 회의적이고 냉소적이던 명우를 적극적으로 신뢰하고 감화시켜 결국에는 국책에 걸맞은 인재로 소생시켜 내는 과정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작가의 시선은 좀 더 복합적인데, 보도소 소장의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키면서도 이에 대한 부락민들의 상반된 반응을 냉정하게 제시하는 소설의 장면들은 일종의 반어적 효과를 자아낸다.
소장의 진심 어린 설교가 부락민들의 조소와 무관심 속에 부정되는 장면은 만주국의 국책이 은연중 부정되고 도외시됨을 시사한다. 이러한 작가의 시선은 마침내 개심하고 새 일꾼으로 거듭나기로 결심한 명우와는 달리, 끝내 개심을 거절하고 구류소로 끌려가는 과거의 사회운동가 규선, 그리고 자살로 생을 마치는 규선의 처를 결말에 제시한 의도와도 일맥상통한다. 즉 표면적으로는 만주국의 교화정책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부응하는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에서는 은밀하게 그 정책을 조롱하고 거부함으로써, 소극적인 저항의 형태를 보여 준다.
200자평
함경도 출신으로 해방 이전에 주로 북쪽에서 활동한 현경준의 단편 하나와 중편 하나를 수록했다. <탁류>는 1935년 ≪조선중앙일보≫를 통해, <유맹>은 1940년 ≪인문평론≫을 통해 발표됐다. 현경준은 이외에도 만주에서 ≪만선일보≫를 통해 상당수 작품을 발표했다.
지은이
현경준(玄卿駿)은 1909년 2월 29일, 함경북도 명천군 하가면 화태리에서 태어났다. 경운생(耕雲生), 금남(錦南)이라는 호를 썼으며, 김경운(金卿雲)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했다.
1925년 경성고보에 입학했다가 1927년 3학년 1학기에 ‘당시(當時) 거세게 밀려온 시대(時代)의 조류(潮流)’(좌익사상운동)로 인하여 학업을 중단하고 시베리아로 가서 사회주의를 체험하며 유랑생활을 한다. 1929년 귀국하여 평양숭실중학, 일본 동경의 모지 도요쿠니(門司豊國)중학, 일본 관서대학 등에서 공부하다가 사상사건에 연루되어 학교를 중퇴하고 귀국했다. 이후 만주로 이주하여 1937년부터 1940년 7월까지 북간도(연변) 도문의 백봉국민우급학교에서 교원생활을 하였고 1940년 8월부터 ≪만선일보≫에서 반 년 간 기자생활을 하였다. 1934년 9월 ≪조선일보≫에서 주최한 ‘혁신기념사업장편소설응모’에 중편소설 <마음의 태양(太陽)>이 이석(二席)으로 입선돼 문단에 데뷔한다. 1935년 1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격랑(激浪)>이 당선되면서부터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한다.
1945년 광복 후 북한에서 활동한 현경준은 함경북도 예술공작단 단장, 조소문화협회 함경북도위원장, 문학동맹 함경북도위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1949년 중편소설 <불사조>를 발표하였고, 1950년 6·25전쟁 때 종군작가로 참전했다가 1950년 10월 전사했다.
엮은이
윤송아(尹頌雅)는 이화여대 기독교학과와 경희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강사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는 <재일조선인 문학의 주체 서사 연구-가족 · 신체 · 민족의 상관성을 중심으로>, <≪8월의 저편≫에 나타난 ‘일본군 성노예’ 재현의 의미>, <경계를 와해하는 ‘무국적자’의 레토릭-金城一紀, ≪GO≫를 중심으로->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재일코리안 문학과 조국≫(공저), ≪내가 처음 읽는 페미니즘 소설≫(편저), ≪현경준 작품집≫(편저), ≪오유권 작품집≫(편저), ≪백두산≫(편저) 등이 있다.
차례
탁류(濁流)
유맹(流氓)
一. 최초(最初)의 탈주(脫走)
二. 부락점묘(部落點描)
三. 천국도(天國圖)
四. 양심(良心)의 잔편(殘片)
五. 마음의 금선(琴線)
六. 지옥(地獄)으로 가는 길
七. 빛과 어둠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어째서? …어째서 거짓말인가?”
질문이 아니라 괴롬을 못 이겨 불으짖는 신음소리다.
“거짓말이 아니구요. 일확천금이 어째서 비현실적이구 꿈이라는 말이우?”
병철의 태도는 더한칭 툭명스러워진다.
소장은 또 한동안이나 말없이 내려다보다가 이번에는 확 내뿜듯이 노긔를 잔뜩 띄고 반문한다.
“그럼 그것이 현실적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게.”
“얼마든지 하지요. 현재, 지금 누구니 누구니 하며 돈푼씩이나 지니구 뽐내는 그들 중, 자초부터 한 푼 두 푼씩 바른 노릇을 해서 모은 것을 가지구 부자라는 이름을 띈 자가 그래 몇이나 됩니까? 전부가 일확천금을 한 것이라구 해두 틀리진 않겠지요.”
“그렇지만 자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부정업을 해서 얻은 것이야 아니지.”
“천만에 말슴입니다. 그들의 사업은 전부가 밀수가 아니면 부로카 노릇이었지요. 그두 대낮에 공공연하게 한 축이랍니다. 멀리를 생각지 마시구 전번에두 목단강(牡丹江)에서 소장님을 찾아왔지만, 그 무슨 회사 사장인지 한 그 양반이 자초에는 무슨 업을 해서 그렇게 돈을 쥐였는지 아십니까? 자초에는 도문(圖們) 개척 시에 밀수를 굉장히 해서 돈푼이나 쥐었으니까 아쥐 지금 회사두 그때에 얻은 것으루 된 것임에 틀림없겠지요.”
소장의 낯색은 새파랗게 질려간다. 그는 무에라고 말하려고 씩은거리기는 하나 입술만 푸들푸들 떨릴 뿐 종시 입은 열지 못한다.
모다들 킥킥거리며 조소하는 그 속에서 병철은 자못 통쾌한 듯 빙글거리기까지 하며 옆채기에서 천천히 담배갑을 꺼내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