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인간’과 ‘이리’ 사이의 양극단에서 찾아 헤매는 불멸인(不滅人)의 길
하리 할러는 세상에서 소외된 외로운 ‘이리ᐨ인간’이다. 겉으로는 깨끗하게 갖추어진 소시민적 집에 세 들어 살며 극도로 예의를 갖추지만, 내면에서는 스스로의 야수성을 자각하며 끊임없는 불안과 공포를 겪는다. 그는 이처럼 자기 자신 안에 존재하는 화해할 수 없는 이중성 사이에서 피나는 투쟁을 하는 인물이다. 어느 날 할러는 자신의 운명적 존재인 ‘이리’에 대해 꿰뚫어 보듯 서술한<황야의 이리에 관한 논문>을 입수한다. 이를 통해 자기 안에 인간과 동물의 두 개의 영혼만이 아니라 수천의 상호대립적인 영혼이 살고 있음을 인식한 할러는 자살로써 탈출을 꿈꾼다. 거리를 헤매던 할러는 재즈 음악이 흐르는 한 술집에서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헤르미네를 만난다. 그녀와의 만남을 통해 할러는 개체로서의 자아가 용해되는 경험을 한다.
‘히피들의 성(聖) 헤세’
20세기 산업혁명 이후 세계는 물질문명에 물들어 가고, 급격히 늘어난 힘의 역(逆)분출로 인해 결국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는다. 무질서와 혼돈의 ‘병든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헤세는 ‘내면으로의 길(Weg nach innen)’을 통해 자기 자신을 다시 찾을 것을 호소한다. 자아와 인간성의 재발견, 동양의 지혜와 초월주의와 같은 헤세 철학의 정수가 실린 책이 바로 ≪황야의 이리≫다. 이 책은 1927년에 처음 발표되었으나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1950년에 비트족과 히피족에 의해 재발견되며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이를 계기로 헤세는 ‘히피들 사이의 성 헤세’로까지 추앙받으며 일종의 운동까지 전개되어 진정한 나를 찾고자 한 이가 있는 모든 곳에서 이 책이 읽히기에 이른다. 오늘날까지 헤세는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사부’로 일컬어진다.
헤세의 작품 중 가장 자전적인 소설
히피와 비트족의 ‘성경’으로 불리는 이 책은 헤세의 작품 중 가장 자전적 요소가 많이 들어간 작품이다. 지식을만드는지식의 이번 책은 헤세의 실제 삶과 연관된 부분에 옮긴이 이인웅이 각주를 달아 상세히 설명했다. ≪황야의 이리≫에 담긴 자아로의 여정을 독자들이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전문적인 해설도 함께 덧붙였다. 독일정부초청 장학생으로서 국내 헤세 연구자 1호인 이인웅 역자의 전문성이 유감없이 발휘됐다.
이 작품의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가면무도회는 1926년 2월 헤세가 참석했던 호텔 보라크에서의 경험을 그대로 투영한 것으로서, 이 책에는 당시 호텔의 메뉴판에 그려졌던 가면무도회의 그림이 실렸다. 그 밖에 헤세가 직접 그린 수채화 <가면 무도회>와 축음기를 사러 간 주인공 할러와 헤르미네의 모습을 묘사한 초판본 삽화, 그리고 귄터 뵈머가 그린 헤세의 초상화도 함께 실었다.
200자평
헤르만 헤세의 작품 중 ≪데미안≫ 다음으로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읽히는 소설이다. 1927년에 발표된 이 소설은 그로부터 한참이나 지난 1950년대 후반에 다시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이 책에 담긴 자기 자아와 인간성의 재발견, 동양의 지혜와 초월주의의 가치가 히피족과 비트족에 의해 재발견된 것이다. 히피족과 비트족 사이에서 이 책은 ‘성경’으로까지 일컬어지며, 헤세는 ‘히피들 사이의 성 헤세’로 추앙받기에 이른다. 국내 헤세 연구자 1호인 이인웅이 번역했다.
지은이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헤세는 1877년 7월 2일 남부 독일 칼브에서 선교사인 아버지 요하네스와 선교사의 딸로 인도에서 성장한 어머니 마리 군데르트의 장남으로 태어난다. 고향 칼브와 스위스 바젤에서 유년기를 지내고, 라틴어 학교를 거쳐 신학교에 입학하지만, “시인이 되거나 아니면 전혀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7개월 만에 도망친다. 서점에서 일하며 1898년 첫 시집 ≪낭만의 노래≫를 발표한다. ≪페터 카멘친트≫(1904)로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고 신문 잡지에 기고하며, 마리아 베르누이와 결혼한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 독일 포로 후생 사업소에 근무하지만, 1916년 아버지 사망, 부인의 정신 분열증, 막내아들 발병으로 충격을 받고, 카를 구스타프 융과 B. 랑 박사에게 정신 치료를 받는다. 1919년 가족을 떠나 스위스 남부의 몬타뇰라로 이주해 수채화를 그리고, 싱클레어라는 익명으로 ≪데미안≫을 발표한다.
1924년 스위스 국적을 취득하고, 루트 벵거와 재혼한다. 히피들의 성서가 된 ≪황야의 이리≫(1927)로 절정을 이루지만, 1939∼1945년 헤세 작품은 독일에서 “원치 않는 문학”이 되고, 나치 관청은 책 출판을 허락하지 않는다. 예술사가 니논 돌빈과 세 번째 결혼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얻고, 만년의 대작 ≪유리알 유희≫로 194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베른대학 명예박사, 괴테 문학상, 독일 서적 협회 평화상 수상 등 세계적 인정과 존경을 받으며, 1962년 8월 9일 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다.
옮긴이
이인웅
충북 진천에서 태어나 청주중고등학교를 거쳐 한국외국어대학교와 동 대학원 독일어과를 졸업했다. 독일 정부 초청(DAAD) 장학생으로 뮌헨대학교와 뷔르츠부르크대학교에서 독문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1972년 헤르만 헤세에 관한 연구 논문으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기획실장, 교무처장, 통역대학원장, 부총장 등의 보직을 수행하고, 문교부 국어심의회 외래어표기분과위원, 교육부 국비유학자문위원, 한국학술진흥재단 인문분과위원(장), 각종 고등고시위원, 한독협회지 초대 편집인, 한국헤세학회장, 한국독어독문학회장, 독일동문네트워크(ADeKo) 이사 등을 역임했고, 현재는 한국외국어대 독일어과 명예교수다.
지은 책으로 ≪Ostasiatische Anschauungen im Werk Hermann Hesses≫(독일), ≪작가론 헤르만 헤세≫(편저), ≪현대 독일 문학 비평≫, ≪헤르만 헤세와 동양의 지혜≫, ≪파우스트. 그는 누구인가≫(공저)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비롯해 ≪선(禪). 나의 신앙≫, ≪수레바퀴 아래서≫, ≪이별을 하고 건강하여라≫, ≪인도 여행≫, ≪헤세 시선≫, ≪싯다르타 / 인도의 이력서≫와 산문선 ≪최초의 모험≫,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헤르만과 도로테아≫, ≪파우스트≫,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의 방송극집 ≪고장≫과 ≪프란츠 카프카의 편지−밀레나에게≫ 등 60여 권이 있다. 그리고 학술 논문으로 <Hermann Hesse und die taoistische Philosophie>(스위스), <헤르만 헤세와 불교>, <I Ging, das Buch der Wandlungen, im Glasperlenspiel von H. Hesse>(독일), <헤세의 도가 사상>, <괴테의 ‘초고 파우스트’ 연구>, <그라베의 대립적 세계관>, <파우스트와 역사 세계>, <정신 분석과 헤세의 문학 창조>, <파우스트의 구원과 그 문제성> 등 50여 편이 있다. 그 외에도 문학과 삶에 관해 각종 신문 잡지 등에 250여 편의 글을 쓰고, 여러 텔레비전 및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고, 국내외에서 많은 초청 강연을 했다.
차례
편집자 서문
하리 할러의 수기
해설
지은이에 대해
지은이 연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고독이란 독립이다. 오랜 세월 동안 그것을 소망했고 또 이룩했다. 고독은 차가웠다. 그래, 그러나 고요하기도 했다. 별들이 운행하는 차갑고 고요한 공간처럼 놀라울 정도로 고요하고 거대했다.
-본문 56쪽에서
옛날에 황야의 이리라고 불리던 하리라는 사나이가 있었다. 두 다리로 걸어 다니고 옷도 입은 인간이긴 했으나, 사실 그는 한 마리 황야의 이리였다. 사람들이 이성을 가지고 배울 수 있는 것을 그 역시 많이 배웠고 상당히 영리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자신과 자기 생활에 만족하는 것은 배우지 못했다. 이 일만은 배울 수가 없었으니, 그는 만족을 모르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아마도 그가 마음속 깊이에서 언제나 자기는 본래 인간이 아니라 황야에서 굴러 들어온 이리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아니면 그렇다고 믿고 있거나).
-본문 61~62쪽에서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었다. 나의 개체는 소금이 물에 녹아 버리듯, 축제의 도취 속에 해체되고 말았다. 나는 이 여인, 저 여인과 춤을 추었다. 그러나 내가 품에 안고 머리를 스치면서 냄새를 맡고 있는 여인은 단지 한 여인만이 아니라 모든 여자, 즉 나와 같은 홀에서 같은 춤을 추고 같은 음악 속을 헤엄치며, 광채로 빛나는 얼굴을 하고 내 곁에 붕붕 떠다니는 다른 모든 여인들을 함께 의미했다. 모든 여인이 내 것이었고, 나는 모든 여인의 것이었다. 우리 모두 서로에게 소속되어 있었다. 그리고 남자들도 마찬가지로 함께 속했다. 그들 속에 내가 존재했고, 그들 역시 전혀 낯설지 않았다. 그들의 미소는 나의 것, 그들의 구애는 나의 것이었고, 내 것은 모두 그들의 것이었다.
-본문 274~275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