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끝줄 소년
2423호 | 2015년 1월 28일 발행
작가는 어디에 앉는가?
김재선이 옮긴 후안 마요르가(Juan Mayorga)의 ≪맨 끝줄 소년(El chico de la última fila)≫
작가의 자리
그는 줄의 맨 끝에 앉은 학생이다.
모두를 볼 수 있지만 아무도 그를 볼 수 없다.
연극은 갈등에서 출발한다.
답을 찾는 배우처럼 관객은 자신을 찾기 시작한다.
작가는 맨 끝에 앉아 있다.
헤르만: (읽는다.) “토요일에 나는 테레비를 봤다. 일요일에는 피곤해서 아무것도 안 했다.” 끝. 30분을 줬어. 두 문장이야. 열일곱 살짜리 삶에서 48시간. 토요일은 테레비, 일요일은 아무것도 안 하기. (종이에 0점을 기록하고 후아나에게 준다, 다른 종이를 집는다.) 11음절로 된 찬미시를 지으라고 한 것도 아니야. 자기가 보낸 주말에 대해 이야기하라고 했어. 문장 두 개를 연결해서 쓸 수 있는지 보려고 말이야. 그랬더니, 모르더라고. (읽는다.) “난 일욜이 실타. 토욜은 좋다. 하지만 이번 토욜에는 아버지가 나가지 못하게 하고 핸드폰을 빼섰다.” (종이에 0점을 크게 쓰고 오른쪽 더미에 놓는다.)
≪맨 끝줄 소년≫, 후안 마요르가 지음, 김재선 옮김, 4∼5쪽
헤르만은 무엇을 읽는가?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제출한 작문 과제다. 그는 절망에 빠진다. 맞춤법, 구두법을 틀리는 것은 물론, 문단 하나를 제대로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말 잘 쓰는 학생이 한 명도 없는가?
클라우디오의 작문을 발견한다. 틀린 데도 없고 어휘 사용도 나쁘지 않다. 세르반테스 정도는 아니지만 다른 애들과 비교하면 훨씬 낫다. 10점 만점에 7점을 매긴다.
무슨 얘기를 썼는가?
같은 반 친구 라파의 집을 방문한 얘기다. 오래전부터 그 집에 들어가 보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라파의 수학 공부를 도와준다는 핑계로 드디어 라파의 집을 방문한다. 그 집과 가족에 대해 은밀하고 세밀하게 묘사한다.
클라우디아의 작문은 어떻게 끝을 맺는가?
미완이다. 라파가 수학에서 낙제하지 않으려면 자신의 도움이 많이 필요할 거라는 말까지 쓰고는 “계속”이라고 끝냈다.
선생님의 반응은?
클라우디오의 글에 점점 빠져든다. 작가의 길을 포기했던 헤르만은 클라우디오와 따로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며 그를 작가로 만들려고 한다.
이제 이야기는 어디로 가나?
클라우디오는 라파 부자와 친해진다. 하지만 라파 엄마는 그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 남편에게 라파의 수학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클라우디오가 집에 드나들지 못하게 해야겠다고 말한다. 클라우디오는 헤르만에게 도움을 청한다.
무엇을 도와달라는 것인가?
수학 시험지를 빼돌려 달라고 한다. 그래야 라파 집에 계속해서 드나들 수 있기 때문이다. 헤르만이 청을 들어주고 라파의 수학 성적은 크게 오른다.
헤르만의 부정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라파 집에 가야만 글이 써진다는 클라우디오의 말 때문이다. 그는 이 글의 출판까지 생각한다. 하지만 숨은 독자인 아내 후아나는 이런 헤르만을 못마땅해한다.
후아나는 뭐가 불만인가?
클라우디오가 라파 엄마를 대하는 태도다. 친구네 가족 사생활을 은밀히 관찰하며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클라우디오와 그를 지도하는 남편 헤르만이 부도덕하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강하게 비난하지만 자신도 글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어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한다.
이야기는 어디서 끝나는가?
클라우디오는 라파 부부가 자고 있는 침실에 숨어들기도 하고 라파 부자가 외출할 때를 노려 라파네를 방문하기도 한다. 라파 엄마에게 시를 전하고, 그녀와 키스한다. 라파가 클라우디오의 시를 발견하고 그에게 경고한다. 이 일로 글쓰기는 중단된다. 어떻게든 결말을 내라고 다그치는 헤르만에게 클라우디오는 가능한 네 가지 결말을 들려준다.
네 가지 결말이란?
라파 부자가 클라우디오를 죽인다, 클라우디오가 라파 부자를 죽이고 그 집에 남는다, 라파 엄마가 세 남자와 집을 불태운다, 라파 엄마가 클라우디오와 함께 떠난다. 클라우디오는 헤르만에게 넷 중 하나를 택해 직접 결말을 쓰라고 하고 떠난다.
클라우디오의 글은 사실인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상상인지 구분은 명확하지 않다. 헤르만과 후아나도 이 글을 각자 다르게 상상하고 해석한다. 독자들도 같은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읽는 사람마다 다른 견해를 가질 수 있다.
왜 “맨 끝줄 소년”인가?
클라우디오가 맨 끝줄에 앉은 학생이기 때문이다. 헤르만에 따르면 맨 끝줄은 모두를 볼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은 아무도 그를 볼 수 없는 가장 좋은 자리다. 한마디로 맨 끝줄은 작가의 자리다.
작가의 메시지는?
문학이란, 나아가 예술이란 무엇인가? 문학과 예술이 우리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가? 가족이란? 중산층이란? 지식인이란? 우리는 무엇을 보고, 보이는 것에 대해 어떤 상상을 하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며 관객이 연극을 통해 철학하게 한다.
연극을 통한 철학인가?
후안 마요르가 극작의 특징이다. 그는 연극이 철학처럼 갈등에서 출발하며, 철학자들이 아직 답을 얻지 못한 질문들을 관객에게 던질 수 있다고 본다. 그에 따르면 위대한 연극, 가장 좋은 연극은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후안 마요르가는 누구인가?
현재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극작가다. 마드리드 왕립드라마예술학교에서 교수를 지냈고, 현재는 극작은 물론 1년에 한 번씩 작품을 직접 연출해 무대에 올리고 있다. 카를로스 3세 대학에서 무대 예술 강좌를 총괄하고 있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재선이다. 스페인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이화여대와 한국외대에 출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