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꽃이 그려진 부채
2441호 | 2015년 2월 9일 발행
어우양위첸의 ≪복숭아꽃이 그려진 부채≫
김종진이 옮긴 어우양위첸(歐陽予倩)의 ≪복숭아꽃이 그려진 부채(桃花扇)≫
사랑보다 민족
사랑했으나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천신만고 끝에 다시 만난 청춘.
남자는 민족의 배신자로 돌아왔다.
사랑을 위해 타협했지만 여자는 실망하고 목숨을 끊는다.
그때는 사랑보다 민족이었다.
이향군: (후조종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추우세요?
후조종: (고개를 저으며) 아니. (이향군의 손을 잡고 함께 앉는다.) 어떻소?
이향군: 당신은요?
(서로 마주 보며 미소 짓는다. 두 사람 모두 사랑의 달콤함에 푹 빠진 모습)
이향군: 당신과 맺어질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어요.
후조종: 이미 맺어졌잖소. 상상도 못하다니, 한 번 맺어졌으니 영원히 떠나지 않겠소.
이향군: 사람 앞일을 어떻게 장담하나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행복할 수만 있다면 그 시간이 아무리 짧은 한순간이라도 감사하다고, 하지만 불행하다면 주어진 시간이 아무리 길다 해도 아무 의미가 없다고요.
후조종: 내 맹세는 경박한 소년의 것이 아니라오.
이향군: 저도 마냥 철없는 아가씨가 아니에요.
후조종: 설마 이 세상이 아무리 거칠어도 내게 소중한 사람 하나마저 허락하지 않을까?
≪복숭아꽃이 그려진 부채≫, 어우양위첸 지음, 김종진 옮김, 83∼84쪽
어떤 인연인가?
후조종은 명말 문장으로 이름 높았던 유생이다. 이향군은 아름다운 용모와 뛰어난 노래 실력으로 유명한 기생이다. 후조종은 이향군을 마음에 두고도 돈이 없어서 어쩌지를 못하고 있었다. 이때 양문총이 나섰다. 둘의 혼례를 치러 주고 혼례 비용 3000냥을 부담한다.
양문총이 누군가?
명말 관료다. 완대성이나 마사영 같은 간신들을 추종하면서 한편 복사의 유생들과 친분을 유지한다.
3000냥의 속셈은?
간신 완대성의 돈이다. 후조종이 완대성에게 빚을 지고 그 밑으로 들어갔다고 소문을 내는 것이 목적이다.
복사가 무엇인가?
명말 부패한 환관과 관료를 비판한 결사다. 아직 관직에 나아가지 않은 젊은 유생들의 조직이었다. 완대성이 관직과 재산으로 이들을 회유하려다 실패하자 계략을 꾸민 것이다.
후조종이 덫에 걸린 것인가?
뒤늦게 사실을 알고 해명과 대책을 위해 동료들을 찾는다. 이향군은 양문총을 비난하고 원망하며 옷과 장신구를 벗어 던진다. 길에서 술장사를 해서라도 당장 빚을 갚겠다고 한다.
위기는 넘긴 것인가?
더 큰 위기가 닥친다. 간신배가 남경에 새 황제를 옹립해 세를 얻는다. 복사의 선비들을 본격적으로 박해한다. 화를 피하려 후조종은 북방으로 피신한다.
이향군은 어떻게 되나?
간신배에게 팔려갈 뻔하다 어머니의 희생, 동료의 도움으로 벗어난다. 연회에서 춤과 노래를 거부하고 간신배를 비난하다 고초를 겪는다. 전쟁통에 생활고도 심하다.
둘은 다시 만나는가?
후조종이 이향군을 찾아온다. 그녀의 남루한 차림을 보고 외투를 벗어 준다. 쓰고 있던 모자를 벗자 변발이 드러난다.
청나라 사람이 됐나?
맞다. 청나라 과거에 합격했다. 살아서 이향군과 다시 만나기 위해 타협한 것이다. 이향군은 크게 실망한다. 나라와 동료를 배신했다고 비난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렇다면 후방역과 이향군이 등장하는 공상임의 <도화선(桃花扇)>과 이야기가 같지 않은가?
그렇다. 어우양위첸이 1946년 타이완 순회공연 중에 부족한 레퍼토리를 채우기 위해 공상임의 원작을 급히 화극(話劇)으로 각색한 것이다.
어우양위첸 화극본의 특징은 무엇인가?
극적 갈등을 효과적으로 증폭했다. 결말에서 이런 특징이 두드러진다. 공상임은 남녀 주인공이 이별한 뒤 종교에 귀의하도록 했다. 어우양위첸은 이 장면에서 극적 갈등을 최대로 끌어올려 이향군이 자살하는 것으로 결말을 맺었다.
어우양위첸은 누구인가?
근대 중국의 극장 어디에서나 만나게 되는 이다. 화극과 전통극, 영화가 공존했던 중국 근대 극장에서 화극 배우, 화극 연출가, 극작가, 연극 잡지 편집인, 영화배우, 시나리오 작가, 영화감독, 전통극 배우, 전통극 작가로 활약한 거인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종진이다. 영동대학교 중국어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