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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누키노스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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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분이 옮긴 ≪사누키노스케 일기(讃岐典侍日記)≫

호리카와 천황이 죽음을 만났을 때
법화경을 읽었다. 희귀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다. 다정하고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마지막 순간에도 정신을 놓지 않았다. 염불 소리가 점점 잦아들더니 끝내 멈추고 말았다.

승정을 부르고 수도승 12명을 불러 가지기도를 올리게 하자 그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이도노 삼위가 손에 물을 적셔 천황님 입술에 대 드렸다. 천황님께서 그렇게까지 온 힘을 다해 염불을 외우시는 모습은 이제까지 본 적이 없었다. 잠시도 쉬지 않고 “대신궁이시여. 부디 이 몸을 구원해 주소서” 하며 간절히 기도를 올리셨다. 하지만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고 천황님의 눈언저리는 점점 변해 갔다. 바로 대령을 못한 승정께서 급하게 납셨다. 평소 휘장을 사이에 두고 앉지만 지금 무슨 격식을 차리겠는가. 승정, 삼위 두 명, 천황님, 내가 서로 뒤엉켜서 한 덩어리가 되었다. 승정께서는 모든 정성을 다해 눈도 뜨지 않고 기도를 올리셨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든든하고 안심 되었다. 병이 났을 때는 별것 아닌 스님이라도 기도를 올려 주면 마음이 놓이는 법이다. 덕이 높으신 분이 지성으로 “부처님을 모신 지 60년이 넘었나이다. 이미 말법 세상에 들어갔다고는 하나 불법 세상이 아직 끝나지 않았나이다. 부디 천황님 눈이 다시 돌아오게 해 주시기를 비나이다”라고 하시니 나 또한 잠시 희망을 가졌다. 그러나 승정께서 “너무 늦나이다. 어서 빨리 효험을 보여 주시길 바라나이다” 하고 마치 사람에게 하듯이 다급하게 외치는 중에 아무 효험도 없이 천황님 입은 염불 외우시기를 멈추고 말았다.

≪사누키노스케 일기≫, 정순분 옮김, 64∼65쪽

당신은 왜 ≪사누키노스케 일기≫를 번역했나?
이 작품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뒤에도 현세를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이 죽음을 품은 채 조금씩 재생되는 과정을 명료하게 보여 준다. 상대가 천황이라는 고귀한 존재이기에 그 사랑과 그리움은 더욱 애틋하고 절박하다.

역사 사실인가?
헤이안 시대 여방(女房)이 쓴 일기다. 위의 인용은 천황이 승하하는 긴박한 장면이다.

그 여방이 누구인가?
사누키노스케(讃岐典侍)다. 본명은 후지와라노 나가코(藤原長子)다.

왜 본명을 쓰지 않았나?
헤이안 시대 일반 여성은 이름이 없거나 있어도 잘 쓰지 않았다. 궁중에 출사해 여방으로 일하게 되면 남자 가족의 이름이나 관직명을 따서 지은 ‘여방명(女房名)을 사용한다.

사누키노스케는 어떻게 비롯된 이름인가?
작자가 호리카와 천황(堀河天皇)에게 출사했을 때 쓴 여방명이다. 작자 아버지가 사누키 지방 수령을 지냈다.

여방은 무엇을 했는가?
우리나라 상궁과 비슷했다. 귀인을 옆에서 보좌했다. 궁중 여방은 천황의 비서 격이었다. 천황을 가까이서 보좌하며 주청(奏請)과 선전(宣傳), 궁중 예식 등을 주관했다. 학문과 궁중 예법에 뛰어난 유능한 여성들이 주로 임명되었다.

이 책은 무엇을 적었는가?
상권은 호리카와 천황이 발병해서 임종에 이르기까지를, 하권은 호리카와 천황 사후 그 아들 도바 천황에게 재출사한 작자가 매사에 죽은 천황을 그리워하는 내용을 썼다.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천황의 이야기인가?
헤이안 여성 일기 문학은 자신과 관련 있는 귀인을 주인공으로 서술한 작품이 많다. ≪청령 일기≫는 최고 권력자인 관백 후지와라노 가네이에와의 결혼 생활을 그렸고, ≪마쿠라노소시≫는 세이쇼나곤이 모시던 중궁 데이시를 중심으로 한 일상을 그렸다.

헤이안 시대에 일본 여성들은 일기를 많이 썼는가?
8~12세기에 주된 문자가 한문에서 가나로 바뀌면서 여성이 글을 쓰기 쉬워졌다. 궁중 문화가 꽃피면서 여방으로 일한 재능 있는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문예 활동을 했다.

이 작품의 개성은 무엇인가?
천황의 죽음을 다뤘다. 고대의 천황은 인간이 아니라 신으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천황의 죽음을 자세히 다루는 것은 불경한 일이었다.

그녀는 어찌 그리 불경한 짓을 한 것인가?
작자에게 천황은 주군일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이 글은 궁중 여방이 공적으로 남긴 기록이 아니다. 사랑하는 이가 병상에서 괴로워하는 모습과 그에 대한 애끊는 추모의 정을 그린 사적인 글이다.

여방과 천황의 관계는 공과 사가 어떻게 나뉘는가?
헤이안 중기부터는 고위 궁중 여방이 후궁 역할을 했다. 사누키노스케도 주변 사람들이 한집안 사람 같다고 인정할 정도로 깊이 총애받았다.

남성의 기록과는 많이 다른가?
훨씬 더 세심하고 인간적이다. 관백 후지와라노 다다자네의 일기 ≪전력≫를 보자. ‘인시쯤 주상이 관을 쓰시고 법화경을 읽으셨다. 희귀한 일이다.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진시쯤 염불과 경보호를 실로 능숙하게 읊조리시며 붕어하셨다’고 썼다. 공적이고 사무적이다.

≪사누키노스케 일기≫가 묘사한 호리카와 천황은 어떤 모습인가?
아픈 중에도 더위로 고생하는 대신들을 위해 얼음을 내릴 만큼 자애롭다. 수라를 받는 중에 대령한 신하에게 혀를 내밀고 도망하는 장난기도 있었다. 주변의 정황을 보고 스스로 죽음이 가까이 왔음을 깨달을 만큼 냉철하고 영민했다. 무엇보다, 작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자상하고 따뜻한 연인이었다.

작자가 가장 소중히 여긴 추억은 무엇인가?
대신이 대령하면 여방은 자리를 피해야 한다. 그러나 작자가 병간호 때문에 자리를 뜨지 못하자 천황은 아픈 와중에도 무릎을 세워서 그 모습을 가려 준다. 작자는 이 일화를 일기에서 세 번이나 언급한다.

헤이안 문학을 더 만나고 싶으면 어디로 가야 하나?
≪청령 일기≫, ≪마쿠라노소시≫, ≪무라사키시키부 일기≫, ≪사라시나 일기≫를 순서대로 만나 보라. 그곳에 헤이안 시대의 여자가 있다.

당신은 누군가?
정순분이다. 배재대학교 일본학과 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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