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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 한국근현대문학 / 초판본 이효석 단편집

초판본 이효석 단편집

z20121123-1

한국문학 신간, <<초판본 이효석 단편집>>

내 꿈꿀 권리
그는 도시보다 자연에, 조선의 현실보다 서구에 대한 동경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 문학이 더 이상 현실에 응전할 수 없을 때 그는 내면으로 침잠한다. 그곳에서 아직 더러워지지 않은, 빼앗길 수 없는 자신을 확인한다. 꿈꾸는 권리를 행사한다.

이효석은 누구인가?
침묵조차도 저항일 수 있는 암울한 시대에 한 개인의 꿈꿀 권리를 아름답게 직조해 한국 단편소설의 백미를 보여 준 작가다.

꿈꿀 권리란?
식민지 현실 너머를 동경하는 것이다. 그의 문학에 드러난 탐미성, 환상성 등은 문학의 꿈꿀 권리를 강조하는 데 기여한다.

작품 경향은?
초기에는 유진오, 채만식 등과 함께 ‘동반자 작가’의 경향을 띠었다. 그러나 이후 김기림, 정지용 등과 순수문학을 지향하는 ‘구인회’ 결성에 가담하기도 했다.

전환의 이유는?
카프의 쇠퇴와 일제의 탄압 속에서 대다수 문인들이 미래에 대한 전망을 상실했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 문학이 더 이상 시대 현실에 응전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개인의 내면으로 침잠해 ‘인간 본능 탐구’에 몰입하게 된 경우다.

문체는?
사실적 묘사보다는 장면의 분위기를, 섬세한 디테일보다는 상징과 암시의 수법을 이용한다.

그의 세계는 어디에 있었나?
도시 문명과 대비되는 목가적 전원의 세계를 형상화했다. 또 식민지 조선의 암울한 현실과 상반되는 서구 문명에 대한 동경을 표출했다.

식민지 현실과의 거리 두기는?
집요하게 유지한다. 그의 작품에는 시대 현실과 연관된 구체적 일상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문학’으로 침잠해 인간의 ‘꿈꿀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하고 있을 따름이다.

개인의 꿈꿀 권리가 사회적 주장의 대상이 되는가?
일제 말은 작가들에게 꿈꿀 권리를 앗아 갔기 때문이다. 그는 꿈과 몽상, 예술과 사랑을 옹호하며, 진부한 일상 속에서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인간의 꿈꿀 권리를 회복하고자 했다.

현실 의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그의 관심은 식민지 현실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는 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암울한 시대가 지워 버린 아련한 꿈을 되살리는 데 집중되어 있었다. 그에게 진정한 문학은 단순한 현실의 반영에 머물지 않고, 현실의 소재를 유기적으로 재구성한 미적 구조물이다.

그에게 문학의 효용은?
암울한 식민지 현실을 견디게 한 힘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문학이 그만큼 소중하다.

미적 구조물의 사례를 든다면?
이효석 산문의 한 봉우리라 할 수 있는 <낙엽을 태우면서>를 보자.

가제 볶아낸 커피의 냄새가 난다. 잘 익은 개금 냄새가 난다. 갈퀴를 손에 들고는 어느 때까지든지 연기 속에 우뚝 서서 타서 흩어지는 낙엽의 산데미를 바라보며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별안간 맹렬한 생활의 의욕을 느끼게 된다. 연기는 몸에 배서 어는 결엔지 옷자락과 손등에서도 냄새가 나게 된다. 나는 그 냄새를 한없이 사랑하면서 즐거운 생활감에 잠겨서는 새삼스럽게 생활의 제목을 진귀한 것으로 머리속에 떠올린다. 음영과 윤택과 색채가 빈곤해지고 초록이 전허 그 자취를 감추어버린 꿈을 잃은 헌출한 뜰 복판에 서서 꿈의 껍질인 낙엽을 태우면서 오로지 생활의 상념에 잠기는 것이다. 가난한 벌거숭이의 뜰은 발써 꿈을 배이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탓일가. 화려한 초록의 기억은 참으로 멀리 까마아득하게 사라져버렀다. 발써 추억에 잠기고 감상에 젖어서는 안 된다. 가을이다. 가을은 생활의 시절이다. 나는 화단의 뒷자리를 깊게 파고 다 타버린 낙엽의 재를 ― 죽어버린 꿈의 시체를 ― 땅속 깊이 파묻고 엄연한 생활의 자세로 돌아서지 않으면 안 된다.

<낙엽을 태우면서> 중에서 이효석 지음, 고인환 엮음, ≪이효석 단편집≫, 150~151쪽

낙엽 타는 냄새에서 갓 볶아낸 커피의 냄새와 잘 익은 개암 냄새를 교차시키는 감각을 보라. 또 낙엽을 꿈의 껍질로, 나아가 낙엽의 재를 죽어 버린 꿈의 시체로 전유하는 감수성은 어떤가? 그 어떤 작가보다 단연 돋보인다. 그는 낙엽 타는 향기로운 냄새를 맡으며 별안간 맹렬한 생활의 의욕을 느낀다.

그에게 생활은 무엇인가?
생산 활동과 연관된 노동을 의미하기보다는, 꿈을 잃은 허무한 가을을 견디는, 죽어 버린 꿈의 시체를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되살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현실과 환상은 어떻게 병존하나?
긴장으로 존재한다. 그의 소설은 도시를 배경으로 하든, 농촌을 배경으로 하든 현실과 이상의 긴장으로 직조된다. 도시와 농촌을 배회하면서 이국적이고 낭만적인 취향과 향토적 정서가 혼융된 모습을 보여 준다. 도시에서는 목가적 자연을 그리워하고 농촌에서는 도시를 꿈꾼다.

무엇이 긴장을 만드는가?
지옥과 같은 현실을 벗어날 탈출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모밀꽃 필 무렵>에서 긴장의 모습은?
장돌뱅이 허 생원의 삶은 양면적이다. 낮의 시장터 모습에 대한 묘사는 허 생원의 고달픈 현실의 모습을 암시한다. 그러나 밤의 산길은 허 생원이 꿈꾸는 꿈의 길이요, 환상의 세계다. 이는 산문적 현실과 운문적 세계의 긴장이며, 고통의 현실과 꿈의 세계의 공존이다. <모밀꽃 필 무렵>의 문학적 진실성은 이러한 양면적 세계의 팽팽한 긴장에서 유래한다.

긴장의 매개물은?
인간의 근원적 욕망인 ‘성’이다.

성의 지향은?
고통의 현실과 환상의 세계 사이의 화해다. 성은 고달픈 현실 속에서도 대상과 하나 됨을 추구하는 순수한 내면적 욕망을 상징한다. 성은 인간의 생물학적, 유희적 본능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개인의 가장 내밀한 욕망이다.

<모밀꽃 필 무렵>에서 성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허 생원과 성 서방네 처녀의 우연한 만남과 단 한 번의 정사는 인간의 원초적 삶과 본능의 세계를 상징한다. 이러한 낭만적 추억은 진부한 현실 속에서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인간의 꿈꿀 권리를 표상한다.

이효석 문학의 ‘서정성’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성과 자연 친화의 속성에서 유래한다. 이효석의 성에 대한 탐색은 인간의 원초적 삶과 본능의 세계를 추구함으로써 자연과 합일점을 발견한다. 여기에서 그는 인간의 참된 모습을 발견하려 한 것이다.

<모밀꽃 필 무렵>은 어떻게 서정성을 획득하는가?
허 생원의 과거 추억에 대한 회상은 달밤의 낭만적 분위기 속에서 자연으로 확장된다.

핵심 구절을 뽑는다면?
이즈러는 젔으나 보름을 가제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흔붓히 흘니고 있다. 대화까지는 칠십 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녀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즘생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니며 콩 포기와 옥수수 닢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왼통 모밀밭이여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곰을 뿌린 듯이 흠읏한 달빛에 숨이 막켜 하얗었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모밀꽃 필 무렵> 중에서 이효석 지음, 고인환 엮음, ≪이효석 단편집≫, 12쪽

그의 문학에서 우리는 무엇을 찾을 수 있는가?
이효석의 문학은 인간의 근원적 속성인 꿈꿀 권리가 아름답게 직조되어 있는 한 편의 비단과도 같다. 그의 문학이 격변의 근현대사 속에서 우리 문학이 소홀히 해 온 결손 부분을 보충해 주고 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당신은 누구인가?
고인환이다.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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