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뫼리 민중 발라드

이상동이 옮기고 우이바리 졸탄(Ujváry Zoltán)이 엮은 ≪괴뫼리 민중 발라드(Gömöri Népballadák)≫

비극적 세상과 우화적 인간의 노래
오랫동안 딸은 아버지의 소유물이었다. 사랑과 결혼과 출산과 가족은 모두 공동체의 명령이었다. 지킨 자에게 축복이 있고 어긴 자에게 형벌이 따랐다. 민중이 사랑, 행복, 과오, 용서, 죄와 속죄를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이다.

남우세스러운 처녀

보르처, 내 예쁜 딸아,
치마 앞이 왜 자꾸 짧아지누!
재단사가 재단을 잘못하고,
재봉사가 재봉을 잘못했죠!

자 가거라, 어서 가거라
저 캄캄한 감옥으로.
저 캄캄한 감옥에서
단두대 위로.

잠시만요, 엄마,
잠시만 기다려 줘요,
죈지바리 도련님께
편지 한 장만 쓰게 해 줘요 .

제비야, 제비야,
내 가장 빠른 제비야!
이 내 편지 전해 다오
죈지바리 도련님께!

저녁 무렵에 도착하면,
도련님 베개 위에 올려 주고.
정오 무렵에 도착하면,
도련님 진짓상에 올려 주렴.

읽고 또 읽어 보지만
눈물이 앞을 가려 볼 수가 없네.
떨어지는 눈물에
글은 젖어 번져 가네.

마차꾼아, 마차꾼아,
내 가장 빠른 마차꾼아:
어서 마차에 올라라!
힘껏 고삐를 당겨라!

화살처럼 재빠르게!
번개처럼 쏜살같이!
헌고디 보르발러를
살아서 만나야 하리!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친절하신 부인!
헌고디 보르발러,
따님은 어디 있나요?

수건 빨래하려고
냇가에 나갔다오.
죈지바리 도련님께
요렇게 둘러대네.

냇가를 둘러보았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죠.
헌고디 보르발러,
따님은 어디 있나요?

은방울꽃을 꺾으려
숲에 나갔다오.
죈지바리 도련님께
요렇게 둘러대네.

숲을 둘러보았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죠.
헌고디 보르발러,
따님은 어디 있나요?

내 더는 뭐라 둘러대겠소,
모든 걸 말해 줄밖에:
뒷방으로 들어가 보소,
침대로 가서 보소.

뒷방 침대 앞으로
열두 손수건 펄럭이네.
뒷방 침대 앞으로
열두 동무 곡(哭)을 하네.

방 안에 든 도련님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날카로운 칼을 내어
자신의 심장을 찌르네.

내 피는 그대 피와
한 냇물이 되어 흐르고,
내 심장은 그대 심장과
한 무덤이 되리라!

이 몸을 묻어 주소
예배당 앞에,
헌고디 보르발러는
예배당 한가운데.

아무 흠도 없는 태아는
제단 앞에.

≪괴뫼리 민중 발라드≫, 우이바리 졸탄 엮음, 이상동 옮김, 15∼19쪽

≪괴뫼리 민중 발라드(Gömöri Népballadák)≫란 무슨 뜻인가?
헝가리 괴뫼르 지역에서 오랫동안 전승된 구비 문학 작품이란 말이다.

위에 인용한 작품의 주제는 뭔가?
가부장 질서에 대한 비판이다. 자식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아버지가 딸의 소유권을 다른 남성에게 양도하는 것이 옛날 헝가리 사람들이 생각하는 결혼이었다. 농촌 사회의 엄격한 윤리적 규범을 어긴 죄로 무자비하게 희생된 처녀와 그녀를 따라 목숨을 끊는 애인의 이야기다.

현대에는 생각하기 힘든 콘텍스트다. 당시 헝가리에서는 가능했는가?
헝가리 발라드의 대표적 유형이다. 헝가리어 사용 지역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의 발라드 시 문학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연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 죽으면 다른 사람도 따라 죽는다는 모티프는 발라드 작품에서 광범위하게 되풀이된다.

여기서 말하는 ‘발라드’란 무엇인가?
14~15세기 이후에 등장한 구비 문학 장르다. 용어 자체의 기원이 분명하지 않고 또 각기 다른 민족에게도 유사한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발라드를 하나의 통일된 개념으로 정의한 설명은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는다.

헝가리에서 ‘발라드’는 무엇인가?
‘곡조가 있고 이야기가 있으며 서정시보다는 긴, 구전을 통해 전해지는 노래’를 말한다.

언제부터 나타났나?
11세기부터 14세기 말에 프랑스인들이 많이 이주했다. 이때 유입된 프랑스 발라드가 바탕이 되었다.

유럽 발라드에서 헝가리 발라드는 어떤 모습인가?
발라드 장르는 중·동부 유럽에서 크게 유행했다. 헝가리는 터키 점령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합스부르크 압제에 저항했다. 그 결과 헝가리 발라드 작품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늦게 수집되었다. 신비하거나 종교적인 또는 기사에 관한 발라드가 유럽 발라드의 대종을 이루지만 헝가리에는 그 중심에 가족과 사랑의 비극을 그려내는 발라드가 있다.

민중에 대한 발라드인가?
민중에 의한 발라드다. 시인이 의도를 가지고 ‘창작’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민중’ 사이에서 구전되며 형성된 것이다.

민담이나 민요와는 어떤 차이가 있나?
비슷하다. 다만 민담이나 민요에 비해 확산 범위가 좁다. 주제도 역사적이거나 전설적인 중세 이야기, 낭만적 이야기로 한정된다.

민중 발라드에서 민중의 정서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농경 생활이 정착되면서 대가족적, 부족적 혈연관계는 느슨해진다. 화폐 경제와 시장의 출현, 사적 이해관계, 개인 갈등이 삶의 전면에 등장한다. 공동체는 와해된다. 그때부터 인간적 삶에 관한 의문, 곧 사랑, 행복, 용서, 인간적인 과오, 죄, 속죄가 표면에 떠오른다. 일부 희극적 발라드를 제외하면 헝가리 발라드의 주인공은 항상 비극의 주인공이다.

민중 전승이 어떻게 문학으로 발전했나?
헝가리에서 발라드 장르에 대한 관심은 계몽주의 시대부터 시작됐다. 수집이 시작된 것은 19세기 초반이다. 에르데이 야노시와 크리저 야노시의 모음집이 출간되자 발라드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민중 발라드를 통해 발라드의 미학적 아름다움에 눈뜬 시인들이 창작 발라드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시인은 어러니 야노시다.

발라드의 정서는 어떤 주제로 나타나는가?
대체로 비극적 서사 구조를 지닌다. 주인공의 불행한 이야기를 따라서 형성되는 비애나 슬픔의 감정이 주된 정서의 줄기가 되는 것이다. 발라드의 비극적 세계 속에서는 주로 여성이 불안정한 사회적 존재이며, 그들이 숙명으로 여겨야 했던 부당한 세계의 횡포들이 비극적인 세계 가운데 나타난다.

발라드를 드라마틱하게 만드는 스토리텔링 문법은 무엇인가?
독자에게 일어난 사건을 현재 시점에서 직접 보여 주면서, 그 행위에 대한 강한 정서적 집중을 이끈다. 스토리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만을 선택, 집중, 요약한다. 일반적인 세부 묘사는 없다. 가장 극적이고 신나는 것만 묘사하고 생략된 부분은 청자가 상상력으로 보충하게 둔다. 심리 묘사도 없다. 발라드는 주인공의 상황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위해 투쟁하고 부끄러움에 빠지고, 방해받은 인간의 전형적인 태도와 정신적 갈등을 보여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 비극이나 서사시의 사실적이고 사적인 묘사와는 다르다.

발라드의 특별한 형식을 살려내는 언어 장치가 있는가?
일상어를 사용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기 때문이다. 운율도 단순하다. 구연자와 청자가 기억하기 쉽도록 반복 구조를 사용한다.

발라드의 구연은 어떻게 진행되나?
구연자는 개인일 때도 있고 공동체일 때도 있다. 곧고 바른 자세와 엄숙한 표정으로 오른쪽 손을 오른쪽 귀 옆으로 들어 올린 채 유지한다. 구연자는 작품 속 등장인물과 완전히 동화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듯 전달한다.

곡이 있는가?
발라드는 운문이지만 텍스트와 똑같을 정도로 곡조가 중요하다. 헝가리 발라드 곡조는 기본적으로 헝가리 민속 음악 전체를 포괄한다. 아시아, 슬라브 음악과 서유럽의 기독교 음악의 영향을 받았다. 책에도 악보를 함께 실어 독자들이 발라드의 맛을 느낄 수 있게 했다.

괴뫼리란 무슨 뜻인가?
‘괴뫼르 지역의’라는 뜻이다. 괴뫼르는 헝가리 북부에서 슬로바키아 남부에 걸친 뷔크 산악지대 내의 분지를 말한다. 이 지역의 헝가리인들은 오랫동안 전통적인 방식으로 농업과 축산에 종사했다. 헝가리 민속학 연구의 주요 관심 대상이다.

괴뫼르 지역이 발라드 연구에서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헝가리 발라드는 헝가리 전역에 분포하고 있었다. 하지만 초기 헝가리 민요 수집가들은 주로 트란실바니아 자료에만 의존했다. 헝가리 대평원 지역에는 상당히 많은 편수의 발라드 작품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측하지만 그 지역에 대한 관심이 겨우 19세기에 가서야 시작되었고, 터키 점령 시절부터 이 지역 인구가 현저하게 감소해 구전이 단절되었다. 덕분에 많은 수의 텍스트와 곡조가 사실상 복구 불가능해졌다. 하지만 대평원의 북부 지역에 속하는 괴뫼르 지역은 뷔크 산맥 산속에 위치하기 때문에 외부와 격리되어 밖으로는 특수성이 있으며, 안으로는 동질성이 있다. 상대적으로 격리되어 살아오며 외부 침략 피해를 적게 당한 이 지역 사람들은 오랜 전통을 잘 보존하고 있었다.

괴뫼리 발라드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은?
뷔크 고원 지대와 마트러 산에서 활약한 무법자들을 노래한 무법자 발라드다. 대표적인 무법자 비드로츠키, 야게르 요슈커, 로저 샨도르 등이 민중 영웅으로 등장한다. 그 외에도 여성의 불행을 노래한 ＜남우세스러운 처녀＞ 유형, 동화적인 발라드인 ＜옛날에 한 왕자님＞ 유형, 해학적인 작품인 ＜기만당한 남편＞ 등 여러 유형이 있다.

괴뫼리 발라드는 사실주의 문학인가?
이 책은 다수 민중의 사고와 정서의 솔직한 표현물로서 당대 헝가리 생활상과 역사 현실을 보여 준다. 헝가리 민중이 삶의 현장에서 생활과 밀착된 언어 예술로 향유해 온 발라드는 역사적으로 민심을 살피는 자료로 활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문학적으로는 기록 문학의 원천적인 모형이나 소재를 제시하는 근거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발라드는 헝가리 근대 사실주의문학의 한 원류로서 높이 평가할 수 있으며, 사회비판적 성격과 표현의 해학성은 민중의 문학이 근대 국민 문학으로 발전해 나가는 데 귀중한 유산이 되었음을 입증할 수 있다.

우이바리 졸탄은 누구인가?
헝가리 민속학자로 데브레첸대학교 민속학과 명예교수다. 민속시가, 풍습, 민속 드라마, 문학과 민속학의 연관성, 문화, 신화 등 폭넓은 분야를 연구한다.

삽화는 누가 그렸나?
헝가리 민족의 역사와 민중의 삶을 그려 온 홀로 라슬로다. 코슈트 상을 수상했다. 이 책의 삽화는 단순히 에피소드를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발라드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도록 정서 고양과 감정 이입을 돕는다.

당신은 누군가?
이상동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강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