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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된 자들의 숲

z20130924-1

김정환이 뽑아 옮긴 리비우 레브레아누(Liviu Rebreanu)의 ≪교수된 자들의 숲(Pădurea spânzuraţilor≫

어두운 그림자
정말 가치 있는 것은 국가도 규칙도 아니다. 인간이다. 이제 깨달았다. 그래도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앎은 삶이 아니다. 어둠의 그림자가 여기 있다.

아포스톨 볼로가는 죄수의 얼굴에 조심스럽게 시선이 닿자 붉게 달아올랐다. 망치질하듯 고동치는 심장 소릴 들었고, 작은 것을 억지로 씌운 듯이 철모가 두개골을 조여 왔다. 이해할 수 없는 놀라움이 그의 뇌 속에서 들끓었다. 떨리는 손가락 사이로 종이를 쥔 채 집행관이 범죄를 열거하는 동안, 올가미 줄 아래 스보보다 소위의 얼굴에는 생명의 원기가 충만했고, 그의 동그란 눈동자는 마치 다른 세계까지 비추듯이 불타오르는 자부심으로 광채를 발했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이 광경은 볼로가를 두렵게 만들었으며, 또한 그의 감정을 자극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죄수의 눈에서 발하는 불꽃이 고통스러운 오명(汚名)처럼 그의 마음속에 조금씩 스며들고 있다는 것을 명확히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애써 다른 곳을 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기결수의 눈은 죽음에 대한 경멸의 시선과 거대한 사랑으로 미화되어 그를 반하게 만들었다. 첫 그리스도교 순례자들이 강요된 죽음의 순간에 놓인 예수 그리스도를 본 것처럼, 급기야 볼로가는 죄수의 입에서 구원의 소름 끼치는 탄식이 쏟아져 나오길 기다렸다….

≪교수된 자들의 숲≫, 리비우 레브레아누, 김정환 옮김, 39~40쪽

죽음을 앞둔 기결수의 얼굴에 생명의 원기가 충만한 이유는 무엇인가?
전쟁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죽음이 반가울 만큼 전쟁은 끔찍하다. 스보보다 소위는 광기와 살인으로 가득한 전쟁터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자유를 얻게 됐다.

≪교수된 자들의 숲≫은 어떤 이야기인가?
루마니아인 볼로가는 오스트리아-헝가리군 소속 군인이다. 스보보다 소위를 처형하기 위한 군사 법정에 참석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던 사람이다. 그러나 죽음을 앞둔 소위의 눈에 교차하는 분노와 자유를 본 후 충격을 받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 후 동료들의 잇따른 탈영과 죽음을 통해 전쟁과 질서, 그리고 인간에 대한 의미를 깨달아 간다. 결국 탈영을 시도하고 교수된다.

볼로가가 벗어나려던 전쟁은 어떤 것이었나?
1차 세계대전이다. 1914년 6월 28일, 세르비아 민족주의자가 오스트리아 황태자를 암살했다. 범슬라브주의를 내세웠던 러시아가 세르비아 편을 들자 오스트리아와 동맹 관계였던 독일은 러시아에 선전 포고했다. 잇따라 러시아와 삼국 협상을 맺었던 영국과 프랑스가 러시아를 지원하면서 전쟁은 점점 커졌다.

왜 오스트리아군이 아닌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인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이중 제국이다. 1867년 오스트리아 제국 황제와 헝가리 귀족들 사이의 타협으로 성립되었다. 오스트리아 황제가 헝가리 국왕을 겸임했고 헝가리는 자치권을 누렸다. 이 체제는 1차 세계대전에 패해 두 국가로 해체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교전이 일어나는 트란실바니아는 어떤 곳인가?
매우 복잡한 역사가 있는 지역이다. 12세기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헝가리와 오스만 터키, 합스부르크 그리고 오스트리아ᐨ헝가리 제국이 지배했다. 그 결과 오스트리아-헝가리군에는 다른 민족의 청년들도 징집되었다.

탈영병이 많았나?
수많은 체코인이 징집되었다. 탈영을 시도하다 체포되어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 국경 뒤 숲에서 탈영과 반역죄로 교수되었다. 그 숲이 ‘교수된 자들의 숲’이다. 스보보다 소위 역시 징집된 체코인이었다.

“1917년 루마니아 전선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의해 처형된 나의 동생 에밀을 추모하며”는 무엇인가?
작품 머리에 등장하는 글이다. 에밀은 루마니아인이었으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장교였다. 자기 정체성과 모순되는 삶을 살아야 했다. 탈영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교수되었다.

실존 인물 에밀을 등장시킨 이유는?
끔찍한 일이 실재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기 위해서다. 독자는 그것이 단순한 허구가 아닌 현실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전쟁은 낯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든 겪을 수 있다는 것을 알림으로써 전쟁이라는 사건과 독자의 거리감을 줄인다. 소설 속 인물들의 비극에 한층 더 가깝게 다가가도록 한다.

이 작품에서 볼로가의 탈영 사유는 무엇인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군인이라는 이유로 같은 민족인 루마니아인을 죽여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처했다. 그는 두 번 탈영을 결심한다. 한 번은 사단이 루마니아 전선으로 이동하려 했을 때, 또 한 번은 루마니아인 탈영병에 대한 재판을 주관할 집행관이 될 것을 명령받았을 때다. 그러나 처음에는 부상 때문에 실패하고 두 번째로 시도했을 때는 옛 동료인 바르가 중위에게 붙잡힌다.

볼로가는 죽음 앞에서 어떠한가?
담담하다. 참전을 통해 볼로가는 죄 없는 자들끼리 서로를 죽여야 하는 부조리한 상황에 처한 자신의 처지를 인식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국가를 위해 싸우는 군인이었지만 스보보다 소위의 표정에서 인간이 추구해야 할 길을 자각한 순간부터 그의 삶은 바뀐다. 볼로가에게 교수형은 전쟁에서, 인간이 인간을 살육하는 광기의 상황에서 벗어나는 탈출구가 되었다. 이러한 깨달음이 그를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했다.

리비우 레브레아누는 이 작품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인간이 만든 법이나 규칙보다 인간의 존재와 삶이 궁극적으로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2의 스보보다 소위가 된 볼로가의 죽음에서 국가와 민족을 초월한 인간주의적 확신과 함께 어두운 그림자를 볼 수 있다.

‘어두운 그림자’란 무엇인가?
볼로가는 인간이 살육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깨달았다. 정말 가치 있는 것은 국가도 규칙도 아닌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 깨달음으로 세상을 바꾸지는 못했다. 전쟁은 계속됐고 자신은 부조리한 세계 안의 작은 인간일 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슬퍼하지 않고 죽음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아도 삶은 변할 수 없다는 것, 어두운 그림자는 여기 있다.

어떻게 원본의 30%를 뽑아 옮겼나?
전체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서사 전개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발췌했다. 작가가 처음부터 의도한 전쟁과 죽음, 국가와 민족의식 사이의 갈등, 종교적 깨우침에 대한 심리 분석을 원전 그대로의 느낌으로 옮기려 노력했다.

리비우 레브레아누는 어떤 작가인가?
1885년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에서 태어났다. 군사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소위로 임관했으며 헝가리 줄러에서 장교로 2년간 군 생활을 했다. 이 기간은 작품 창작에 필요한 영감과 경험을 얻은 시기였다. 1909년 단편들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말년에는 죽음을 예감하고 삶에 대한 연민을 그린 ≪1885∼1944, 주르날≫을 발표했다. 1944년 9월 1일 세상을 떠났다.

자연주의 심리분석으로 사실주의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는 맞는가?
사실이다. 트란실바니아의 정황과 민족 정체성에 대한 번뇌를 기반으로 자연주의적 심리 분석을 시도해 사실주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주로 농민과 토지를 중심으로 한 사회 문제와 전쟁의 참상, 그 앞에 내몰린 인간의 비극을 다루었다. 덕분에 루마니아 문학사에서 사실주의와 전쟁 문학의 대가로 평가받는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정환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루마니아어과 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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