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테스크의 정치학
2663호 | 2015년 7월 2일 발행
그로테스크, 불안정한 시대의 진단술
이창우의 <<그로테스크의 정치학>>
불안정한 시대의 진단술
확실한 대상에 대한 분석과 평가는 꽤 확실한 편이다.
그러나 해체와 혼종, 공황 효과, 지배질서의 일탈과 무질서 같은 사회변동기
고유한 아이러니를 잡아내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로테스크의 정치성에 물어볼 차례다.
“그로테스크의 정치학은 동시대 사회 성원들의 집단적 마음을 읽어 내는 것,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문화적 기호를 둘러싸고 정치적 태도들 사이의 경합과 연대를 해독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과거 시대의 예술이나 특정 예술가의 주관적 정신세계가 아니라 동시대 문화다. 또한 특정한 사회집단에 국한된 문화가 아니라 여러 집단의 목소리가 혼합된 대중문화다.”
‘추한 것이 즐거움을 주는 시대’, <<그로테스크의 정치학>>, xi쪽.
그로테스크가 뭔가?
낯섦, 추함, 익살스러움, 무서움을 복합적으로 느끼게 하는 미적 표현 양식이다. 정치의 대상이다.
어째서 정치의 대상인가?
미적 표현에 무질서와 질서가 병존하기 때문이다. 기존 질서를 위협하기도, 반대로 뒷받침하기도 한다. 정치적 변증법이다.
그로테스크의 변증법은 뭔가?
더러움·무작위성·해체·비천함 같은 무질서와 거대함·유기성·숭고함 같은 질서를 동시에 표현한다. 기존 질서를 와해하려는 힘과 이에 맞서는 법ㆍ제도 간의 다툼을 그로테스크 미학에서 읽을 수 있다.
무질서와 질서의 다툼은 어디서 확인할 수 있나?
신자유주의 시대 한국 대중문화에 종종 등장하는, 추하고 섬뜩한 ‘괴물’이다. 그로테스크의 전형으로, 사회 불안을 반영한다.
어떤 불안인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진행된 대량 해고, 비정규 노동의 상례화에서 야기된 불안이다. 대중문화에서 이것은 괴물의 이미지로 재현되고, 이에 맞선 피해자들이 등장한다.
괴물 이미지는 무엇을 가리키나?
괴물은 재앙에 맞서 함께 싸우는 피해자들 사이의 수동적 연대가 투영된 이미지다. 종종 익살맞기도 하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섬뜩함과 익살의 양가성은 무엇을 뜻하나?
‘희생자인 우리’가 만인이 만인에 대하여 경합 중인 ‘냉소적 군중’이라는 사실이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복수는 나의 것>의 등장인물들이 단적인 사례다.
<복수는 나의 것>이 보여 주는 섬뜩과 익살의 양가성은 어떤 모습인가?
이 영화는 희극과 비극이 겹친 텍스트다. 사회 성원이 집단적으로 모였을 때는 희극적이지만, 개별적으로 분산되었을 때는 비극적이다. 이들은 격투기를 관조하는 쾌락적 관객이면서, 동시에 서로를 죽이는 격투의 당사자다.
사회 비관인가?
그렇진 않다. 추함에는 두려움을 불결함, 익살스러움, 숭고함으로 변형하는 힘이 있다. 이러한 변형에 의해 두려움으로부터의 방어, 활력의 증대, 정의로운 실천이 주는 해방감을 얻을 수 있다. 여기에 그로테스크의 정치성이 있다.
그로테스크의 정치성을 사회분석 방법으로 사용할 때 무엇을 얻을 수 있나?
소비주의자, 탈식민주의, 여성주의 같은 안정된 지배 체제를 의미하는 ‘~주의’에 관한 분석은 많다. 그러나 정체성의 형성이 아니라 해체와 혼종, 공황 효과, 지배질서의 일탈과 무질서 같은 사회변동기 고유한 아이러니에 접근하려면 그런 분석은 한계가 있다. 그로테스크의 정치성 분석은 이 지점에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이 책, <<그로테스크의 정치학>>은 무엇을 말하는 책인가?
그로테스크에 관한 기존의 미학적 논의를 정치학 측면에서 종합했다. 그로테스크 스타일의 문학ㆍ미술ㆍ연극ㆍ영화ㆍ건축 영역의 창작과 비평, 동시대 생명관리정치에 관한 시사 비평, 성소수자ㆍ이주민노동자ㆍ비행청소년ㆍ노인 등 ‘괴물’로 재현되는 주류 담론의 문화정치를 비판한다.
문학 비평에서도 의미가 있는가?
장정일의 <요리사와 단식가>라는 시를 보라. 중산층 아파트 주민들 사이의 식인 사건을 이야기한다. 이 작품은 1990년대 호황기의 개인주의가, 자유롭고 풍요로운 겉모습과는 반대로 자기 계발의 강박과 소비주의의 탐욕이 융합하여 생겨난 것임을 해부한다.
메르스를 대하는 생명관리정치는 어떤가?
마당극의 꼽추 춤이 연상된다. 춤추는 꼽추는 관절이 따로 노는 산만한 몸짓과 분노한 채로 정지한 얼굴 표정을 결합시킨다. 무작위로 번식하는 바이러스의 유동성과 비밀주의를 고수하는 생명관리정책의 경직성이 만나면서 풍자적 그로테스크를 생산하고 있다.
비주류의 문화정치는 어떻게 보는가?
빈민가 엽기 범죄를 다루는 주류 언론을 들 수 있다. 대중매체는 빈곤한 동네에서 발생하는 토막 살인 같은 엽기 범죄를 정상세계 밖에 만연한 비정상세계의 사건 혹은 ‘산책길의 개 배설물’처럼 묘사한다. 여기서 추함은 도시 중산층이 느끼는 두려움을 주변인들에 대한 배제와 추방의 관념으로 전환한 것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창우다. 문화평론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