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 육필시집 오늘도 그대는 멀리 있다
1
끝내 빈손 들고 돌아온 가을아,
종이 기러기 한 마리 안 날아오는 가을아,
내 마음까지 모두 주어 버리고 난 지금
나는 또 그에게 무엇을 주어야 할까 몰라.
2
새로 국화 잎새 따다 수놓아
새로 창호지문 바르고 나면
방 안 구석구석까지 밀려 들어오는 저승의 햇살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만의 겨울 양식.
3
다시는 더 생각하지 않겠다,
다짐하고 내려오는 등성이에서
돌아보니 타닥타닥 영그는 가을 꽃씨 몇 옹큼
바람 속에 흩어지는 산 너머 기적 소리.
4
가을은 가고
남은 건
바바리코트 자락에 날리는 바람
때 묻은 와이샤쓰 깃
가을은 가고
남은 건
그대 만나러 가는 골목길에서의
내 휘파람 소리
첫눈 내리는 날에
켜질
그대 창문의 등불 빛
한 초롱.
≪나태주 육필시집 오늘도 그대는 멀리 있다≫, 18~21쪽
가을도 갔다.
남은 건?
첫눈 내리는 날, 그대 찾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