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벨룽겐의 노래
독일 소설 신간, <<니벨룽겐의 노래>>
우리는 보았다
친구를 배신한 왕은 부하에게 살해를 명한다. 영웅은 암살되었고 군중은 그것을 목격한다. 모두 슬픔에 빠져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시신은 눈을 떠 말한다. “그대들이 자행한 일에 눈물 뽑지 말라!” 암살자는 군중을 설득하고 사람들은 대책을 숙의한다. 마침내 답을 찾은 한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보지 못했습니다.”
이 책은?
영웅서사시 ≪니벨룽겐의 노래≫를 개작한 소설이다.
작가 프란츠 퓌만은 어떤 사람인가?
동독 작가로 출발했다. 에세이스트, 아동문학 작가, 고전문학의 개작자로 활동했다.
성향은?
로흘리츠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국가사회주의, 다시 말해 나치의 이념 교육을 받았다.
파시스트인가?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사회주의 추종자가 되었다.
평판은?
하인리히 만 상과 숄 오누이 상 그리고 독일 비평가 상을 받았다.
청소년 문학을 썼나?
트로야의 멸망을 이야기하는 ≪목마≫, 거인족을 정복하는 ≪프로메테우스≫와 호머의 ≪오디세우스≫를 청소년 문학으로 개작했다. ≪니벨룽겐의 노래≫도 그중 하나다.
이 책이 청소년용인가?
의도는 그렇다. 그러나 중세 독일어의 고전적 느낌과 작품의 메시지는 청소년만의 것이 아니다.
서사시를 소설로 개작한 이유는?
중세 독일어다. 어려울 뿐만 아니라 문체가 세련되지 못하고 분량이 방대하다. 현대어로 쉽게 번역하기 위해 소설로 장르를 바꿨다.
중세 독일어가 어렵나?
현대인에게 낯선 언어다. 작품에 그 흔적이 남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번역과 함께 개작했다.
원작과의 차이는?
주제나 분위기 그리고 맥락은 그대로다.
언제 작품인가?
중세 독일어로 12세기에 쓰였다.
그것이 처음이었나?
그전에는 700년 동안 서사시 낭독자 다시 말해 가수가 구전으로 이어 왔다.
형태도 바뀌었나?
물론이다. 1180년에서 1210년경 사이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원작자는 누구인가?
의견이 분분하다. 옛 파사우와 빈에 대한 상세한 지리적 지식이 나타나고, 이 지역 관할 주교였던 볼프거 폰 헤를라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파사우 주교의 관할권에 속했던 지식인일 것이라 추정하는 정도다.
어느 정도의 작품인가?
볼프람 폰 에셴바흐의 ≪파르치팔≫, 고트프리트 폰 슈트라스부르크의 ≪트리스탄≫, 그리고 발터 폰 데어 포겔바이데의 ≪미네장≫과 더불어 독일 고전문학 전성기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형식은?
1·2부로 나뉜다. 4행 운문이 1연이 되는데, 총 2379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지막 연까지 탁월한 언어적 기교를 유지한다. 이 연들은 39개 장으로 나뉜다. 장마다 제목이 붙어 있다.
평가는?
계몽주의 시대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19세기에 이르러 국민 서사시로 승격되었다.
다시 주목받은 이유는?
독일인들이 이 이야기 소재에서 민족적 동질성 내지 국가의 본질을 찾게 되었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활용되었나?
나치가 이용했다. 니벨룽겐 영웅들의 투쟁 정신과 절대 복종을 게르만 민족 이념의 표상으로 사용했다.
바그너는?
악극으로 개작한 <니벨룽겐의 반지>가 대표 사례다. 작품의 소재와 게르만 신화 그리고 음악의 열광적이고 도취적인 분위기 때문에 바그너는 민족주의에 이용되는 듯했다. 당시에 그는 새로운 민족 신화의 대변자이자 예언자로 추앙되었다.
1945년 이후에는?
이 작품의 소재가 정치적 목적으로 남용되는 것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어났다.
그 후에도 개작이 많았나?
시대 흐름에 따라 여러 장르로 각색되었다. 최근에는 영화도 만들어졌다. 일일이 언급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인기의 연원은?
북유럽 신화 또는 게르만 신화와 깊이 연관된 고전 중의 고전이기 때문이다.
최근 유행과는 관계없을까?
외국에서 판타지 문학이 밀려든 것도 원인이 된다. 니벨룽겐 전설의 몇몇 요소들이 다양한 시각에서 새롭게 다루어지기 시작했다. 반지 모티프도 새로 추가되었다.
신화에서 나왔나?
게르만·켈트 신화에서 몇몇 모티프를 빌려 이야기의 근간을 이루었다.
예를 들면?
게르만 신화와 켈트 신화에는 깊은 산 속에 숨어 살면서 광물을 채굴하고 신기한 도구를 제작하는 난쟁이족과 거인족이라는 소재가 있다.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는 여기에 기초를 두고 있다.
지크프리트와 용의 이야기는?
12~13세기 북유럽 신화를 만드는 시와 노래, 서사시를 엮은 책 ≪에다(Edda)≫에는 지크프리트와 용 이야기의 원형적 요소를 볼 수 있다.
퓌만이 개작에서 고민했던 문제는?
구전 작품이 서사시로 정착되는 과정에서 모순적 내용은 상당히 제거되었지만 시대적·문화적 간격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뿐만 아니라 게르만 선사시대의 신화적 소재를 기독교 문화 영역으로 수용하는 것도 큰 문제였다.
주제는?
군주에 대한 충성과 복종, 남성들의 용기, 여인들의 아름다움, 사랑과 죽음, 신의와 배반이다. 인간 사회가 지닌 영원한 화제다.
역사 사실과 연관이 있는가?
크림힐트와 지크프리트의 이야기, 크림힐트가 훈족 왕의 왕비가 되어 부르군트족에게 복수한다는 줄거리는 역사 사실과 일치한다. 407년 민족 이동 시기에 부르군트족이 보름스를 정복하고, 437년에 훈족의 에첼 곧 아틸라 왕이 서유럽에 침입해 부르군트족을 굴복시킨 역사가 작품에 깔려 있다.
개작 소설의 포인트는?
퓌만은 이전 100년 동안 지속된 소재에 대한 이념과 해석을 허물고 다시 실제 이야기로 돌아가려 했다. 그래서 작품 속 영웅들의 형상을 보다 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묘사하고자 했다.
내용에서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동화적인 것들이 현실적인 것에 적당히 스며들도록 재현하고 있다.
주제는?
주인공 지크프리트가 품은 세계 지배에 대한 갈망을 정당한 것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왜 이 작품을 번역했는가?
원작은 너무 방대한 서사시이기 때문에 정독하기에 심히 부담된다. 또 중세 독일어로 쓰여 있기 때문에 해독이 쉽지 않다. 독자에게 그 어려움을 덜고 내용의 재미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번역의 난제는?
비교적 간단한 현대 독일어 문장으로 개작되었더라도 중세풍의 궁정 문화를 다룬 까닭에 중복되는 복합 문장과 옛날풍의 언어 표현이 많다. 말을 자연스럽게 바꾸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어떻게 극복했나?
재현 작품의 원전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복합문을 여러 개의 짧은 문장으로 만들었다. 중세풍의 궁정 언어 등 예스러운 어법들은 가능한 한 지금의 어법에 맞추었다. 그 잔재는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지만, 예스러운 어법과 분위기에서 고색창연함을 느낄 수 있다면 이 또한 고전을 읽는 묘미가 아닐까 생각된다.
지만지 희곡 <니벨룽겐>과 다른 점은?
극적 요소가 더욱 두드러진다. 희곡에서 미처 다 보여 주지 못하는 실감나는 상황 묘사, 등장인물 간의 첨예한 갈등을 맛볼 수 있다.
비교하면 어떨까?
지크프리트 이야기는 무수한 버전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작가들마다 조금씩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한 작품이 다른 작가를 만남으로써 얼마나 다른 옷을 입게 되는지 보기 바란다.
우리는 이 책에서 무엇을 만나게 되나?
아득한 옛날이야기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다양한 감정, 도덕, 신앙심 그리고 심리를 만날 수 있다. 궁정의 정치적 모략과 술수, 이에 맞서는 교활한 정치와 인간을 다루는 지혜로운 능력들을 보아라. 오늘날 우리 사회와 인간의 삶에 그대로 반영되지 않는가?
당신은 누구인가?
박신자다. 독일 쾰른대학교에서 철학부를 졸업하고 독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성신여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 교수다.
인상적인 한 구절을 맛볼 수 있을까?
짧은 아래 글을 보라.
물은 맑고 차갑게 솟아났다. 드디어 군터 왕이 보이고 뒤이어 하겐이 나타났다. 왕이 샘에 엎드려 물을 마셨다. 그다음 지크프리트가 마셨다. 순간 하겐은 영웅의 화살집에서 활과 칼을 꺼내 덤불에 놓고, 창을 그의 어깨 사이에 있는 표적에 찔러 심장까지 관통시켰다. 이때 지크프리트의 피가 하겐의 옷에 튀었다.
지크프리트는 뛰어올랐다. 하겐은 목숨 걸고 뛰어 도망갔다. 지크프리트는 활과 칼 발뭉을 찾았으나 이 둘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때 발 앞에 놓여 있던 방패를 들었다. 가슴에 창이 꽂힌 채 하겐을 따라 뛰었고 그에게 미치자 방패를 던졌다. 이때 금으로 된 돌이 튕겨 풀밭에 수천 개의 무지개처럼 반짝였다. 하겐은 무릎을 다쳤다. 지크프리트는 한 번 더 내리치려 했다. 하지만 얼굴이 벌써 창백해져 꽃 속에 넘어졌고 상처에서 피가 멈추지 않고 흘렀다. 그는 소리쳤다. “그대는 나의 충성을 이렇게 갚는구나! 나는 그대들에게 신실했다! 그대는 이것에 대한 보답으로 살인을 하는구나! 그대는 그대의 이름을 영원히 수치스럽게 했도다! 그대는 기사 세계에서 욕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때 사방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들 가운데 명예와 신의를 지키는 사람은 크게 한탄하고 이날을 저주했다. 부르군트 왕도 영웅의 죽음을 한탄했다. 이때 지크프리트는 한번 눈을 뜨고 입을 열어 말했다. “그대들이 자행한 일에 눈물 뽑지 마라!” 이때 하겐이 말했다. “여러분, 왜 그대들이 한탄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우리를 근심하게 했던 한 사람의 힘에서 그대들을 해방했소이다. 그대들이 숨을 쉬고 있다면 나에게 감사하시오!” 지크프리트가 말했다. “그렇게 자만하지 마라! 내가 그토록 순진하지만 않았더라도 생명을 보존했을 것이다! 이제 크림힐트가 걱정된다. 군터 왕이여, 아직 한 줄기의 명예와 신의가 그대의 몸속에 남아 있다면, 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아 주시오! 그녀는 그대의 여동생이오! 오, 맙소사, 사랑의 고통을 결코 더 이상 겪지 않아도 되는군!”
그가 죽음에 이르러 몸을 비틀거릴 때, 모든 꽃이 그의 피로 붉어졌다. 이때 사람들이 그를 황금 방패에 실었다. 그런 다음 어떻게 살해 사건을 감출지 상의했다. 누군가가 말했다. “그를 죽인 자들은 도둑 떼입니다! 우리는 보지 못했습니다!”
이때 하겐 폰 트로녜가 말했다. “내가 보름스로 가져갈 것이다. 크림힐트가 사실을 알더라도 나는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감히 나의 왕비님을 아프게 했다. 그녀가 다치는 것에 나는 개의치 않겠다! 나는 내 의무만을 행했을 뿐이다.”
≪니벨룽겐의 노래≫, 프란츠 퓌만 지음, 박신자 옮김, 119∼12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