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제비치 시선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함께 떠나는 유럽 여행 12.
폴란드 오시비엥침 또는 아우슈비츠
폴란드 오시비엥침, 바르샤바에서 남남서쪽으로 300km쯤 내려가면 독일말로 아우슈비츠라고 부르는 땅에 서게 된다. 유대인과 로마인, 러시아인, 정신장애인과 동성애자, 그리고 특정 정치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죽임을 당한 곳이다. 2차 대전 시기, 유럽에 살던 유대인의 80%가 여기서 도륙되었다. 타데우시 루제비치는 오늘 우리를 이곳으로 안내한다. 목격자이면서 희생자인 폴란드의 특수성은 비극의 역사를 스스로 지양해 미학을 증류하는 기적을 행하게 되었다.
생존자(Ocalony)
내 나이 스물넷
나는 살아남았다
내 앞에 직면했던 대학살로부터
이것은 모두 텅 빈 동의어:
인간과 짐승
사랑과 증오
적과 동지
어둠과 빛
인간이 인간을 짐승처럼 죽이는 광경을
똑똑히 보았다:
구원받지 못해 갈기갈기 찢긴 사람들로
가득 찬 거대한 수레를
모든 개념들은 단지 표현 수단에 불과할 뿐:
미덕과 악덕
진실과 거짓
아름다움과 추함
용기와 비겁
미덕과 악덕이 똑같은 무게라는 걸
똑똑히 보았다:
악하면서 동시에 선했던
어떤 사람을.
나는 스승과 현자(賢者)를 찾고 있다.
내게 시각과 청각과 언어를 되돌려 주기를
모든 사물과 개념을 다시금 명명해 주기를
어둠에서 빛을 분리해 주기를.
내 나이 스물넷
나는 살아남았다.
내 앞에 직면했던 대학살로부터.
<<루제비치 시선>> 타데우시 루제비치, 최성은 옮김, 9~1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