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교육의 힘: 라틴아메리카 혁명의 현장
데이비드 아처·패트릭 코스텔로(David Archer & Patrick Costello)가 쓰고 김한수·김경래가 옮긴 ≪문해교육의 힘: 라틴아메리카 혁명의 현장(Literacy and Power: The Latin American Battleground)≫
학습자의 현실에서 출발하는 배움
어디서 무엇을 가지고 언제, 누가, 누구에게 가르치고 배울 것인가? 프레이리는 대답한다.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학습자의 삶, 그의 공간과 시간의 조건과 가능성이다.
문해교육은 새로운 교육의 핵심이었다. 그들은 문해를 중립적인 기능학습이 아니라 공동체의 임파워먼트를 향한 첫걸음으로 여겼다.
≪문해교육의 힘: 라틴아메리카 혁명의 현장≫, xxi쪽.
이 책은 라틴아메리카 문해교육운동의 무엇을 말하는가?
1980~1990년대 라틴아메리카가 민주화, 반제국주의, 사회주의 운동의 한복판에 있던 때의 문해교육운동 상황을 말한다.
운동은 무엇을 이루었는가?
민중의 개인 변화와 사회 변화는 맞물려 있고 변화를 이해하려면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 정세는 어떠했는가?
1910년 멕시코혁명은 완성되지 못했다. 1959년 쿠바혁명, 미국의 정치적 개입 심화, 아옌데 정부 전복, 니카라과혁명 좌절의 결과 친미 군사정부가 대륙을 지배한다. 멕시코는 IMF구제금융을 받아 경제 주권을 상실했고 사회 최하층을 구성하는 인디오들은 국가 공동체로부터 지원을 거의 받지 못했다.
극도로 열악한 당시 사회경제 상황에서 교육이 의미가 있는가?
교육은 급선무가 아니었다. 생존을 지키는 것이 더 우선이었다. 그러나 변화를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교육은 해방의 방법론이었는가?
교육을 통해 억압에서 벗어나려 한 것이 아니라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교육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교육받은 민중이 얻은 것은 무엇인가?
니카라과는 53%였던 비문해율이 12%로 내려갔다. 40만 명이 넘는 성인들이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되었다. 글을 읽고 쓰면서 민중들은 서로의 경험을 나눌 수 있었다. 스스로 기술을 발전시키고 자신의 권리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을 얻은 것인가?
민중은 스스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열악한 상황에서 어떻게 문해교육이 이뤄졌나?
파울로 프레이리의 영향이 컸다. 그의 방법에서 중요한 것은 학습자의 현실이다. 그 현실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교재, 인력, 모임 형태는 선결 조건이 아니었다. 배움은 난민수용소, 도시, 농촌, 가정집 등 주민들이 모일 수 있는 모든 곳에서 일어났고, 교재는 주민들의 삶에 대한 조사와 언어에서 만들어졌다. 교육 방법도 민중의 삶을 담은 교재, 라디오, 비디오 등 접근할 수 있는 여러 매체를 사용했다. 문해교육의 기반이 되는 인력과 재원을 만드는 일에 다양한 현장 조직들이 함께하려고 했다.
현장조직과 교육운동은 어떻게 만났는가?
니카라과는 문해교육을 국가적 과제로 삼고 문해십자군운동을 벌였다. 라틴아메리카의 혁명 상황은 문해교육을 필요로 했고, 문해교육 역시 삶의 변화를 위한 운동이 필요했다고 할 수 있다.
문해교육에 대한 국가의 입장은 무엇이었나?
공교육은 지배체제의 공고화 수단이었다. 그래서 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와 성인들을 위한 문해교육은 거의 실시하지 않았다.
라틴아메리카의 문해교육운동의 추동력은 무엇인가?
프레이리의 문해교육 모델이 있었고 민중의 저항운동, 혁명운동이 있었다.
혁명을 위해 교육이 활용된 것은 아닌가?
교육은 중립적이지 않다. 이 책도 “혁신적인 교육체제는 혁명정부에 맞설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즉, 비판적 교육은 특정 이데올로기를 반영하기도 하지만, 그것 자체를 성찰할 수 있는 힘도 가지고 있다.
그때 라틴 아메리카에는 어떤 문해교육이 있었나?
세 가지 유형의 사례가 있다. 국가중심형, 사회운동결합형 그리고 문화갈등형이다.
국가중심형은 어떤 문해교육인가?
니카라과와 멕시코가 그랬다. 니카라과는 문해십자군운동을 통해 혁명과 교육을 접목시키려고 했다. 멕시코는 프레이리 방법을 맹목적으로 적용해 해방적 교육을 도리어 후퇴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사회운동과 결합한 문해교육은 어떻게 진행되었나?
사회운동 조직과 문해교육이 결합했다. 엘살바도르, 칠레, 온두라스, 에콰도르가 그랬다. 엘살바도르는 지배세력에 의해 쫓겨난 난민캠프에서 문해교육이 이뤄진다. 칠레는 독재자 피노체트에 대한 반대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미디어운동과 문해교육이 결합한다. 에콰도르는 인권운동으로서 땅, 주택, 일할 권리를 알아가는 과정, 온두라스에서는 농민조직과의 결합을 통해 농민문제, 땅의 문제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 문해교육의 내용이 되었다.
문화갈등형은 어떤 대립 요인이 작용한 것인가?
원주민의 언어, 문화와 강대국이 이식한 언어와 문화가 복잡하게 갈등한다. 볼리비아와 과테말라가 그랬다.
오늘날 라틴아메리카 문해교육운동의 사정은 어떤가?
쿠바를 비롯한 몇몇 나라를 제외하면 문해율이 아직도 60~70% 정도다. 농촌, 빈민 밀집 지역, 원주민 중심 지역들은 과거와 비교해 크게 나아지지 않았을 것이다. 규모와 형태는 다르겠지만 여전히 문해교육운동은 진행되고 있다.
이 책이 다루는 10가지 실례는 지구촌 문해교육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이 책은 파울로 프레이리의 문해교육 방법론이 라틴아메리카에서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보여 준다. 데이비드 아처는 프레이리 문해교육 방법론을 발전시켜 REFLECT를 만들었다.
REFLECT가 뭔가?
REGENERATED FREIREAN LITERACY THROUGH EMPOWERING COMMUNITY TECHNIQUES의 준말이다. 문해교육 모델인데 지금 여러 대륙에서 시행되고 있다.
이 책이 한국 문해교육, 민중교육 현장의 오늘에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민중교육은 철 지난 담론이 되었지만 평생교육의 확장과 함께 문해교육은 국가의 지원, 제도화를 통해 양적으로 확장되는 추세다. 사회운동과 교육이 함께 실천한 결과를 찾는 일, 현실을 가슴과 머리로 분석하는 일, 새로운 미래를 만드는 일, 이것이 이 책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한수는 난곡사랑의집 사무국장이다. 김경래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인연수팀에 근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