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일러스 마너
세계 문학, 영국 소설 신간 ≪사일러스 마너≫
여자 셰익스피어
조지 엘리엇은 남자 이름이지만 그는 여자다. 메리 앤 에번스가 본명이지만 19세기 초반에 작가 활동을 위해서는 그런 이름이 필요했다. 사람들은 ≪사일러스 마너≫를 ‘돈보다 우월한 사랑에 관한 분명한 도덕적 표현이자 고립과 사회를 그린 두 가지 이야기’라고 했지만 작가 자신은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인간관계가 갖는 치유력’이라고 설명했다. 치유가 필요하다면 이 소설을 만나 보자.
누구의 작품인가?
영국 작가 조지 엘리엇이 1861년에 썼다.
조지 엘리엇은 누군가?
1819년에 태어나 1880년에 죽은 작가다.
‘4월은 잔인한 달’ 쓴 사람 아닌가?
그건 <황무지(The Waste Land)>라는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 시를 쓴 사람은 T. S. 엘리엇으로 20세기의 미국 남성 시인이다. 이것을 혼동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조지 엘리엇’은 본명인가?
아니다. 필명이다. 남성 이름이자만, 사실 조지 엘리엇은 여류 소설가다. 본명은 메리 앤 에번스다.
남성 필명을 쓴 이유는?
여류 작가에 대한 당대의 사회적 편견 때문이다. 등단 후 한동안 독자는 물론 평론가들조차 그녀를 남성 작가로 알았다.
여성 작가여서 문단 생활이 힘들지 않았을까?
≪웨스트민스터 리뷰(Westminster Review)≫라는 비중 있는 잡지의 부편집장을 지냈으며, ‘남성처럼 생각하는 여자 셰익스피어’라고 불렸다. 당대의 어떤 남성작가에 견주어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작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문단에서 주목받는 작가로 활동했다.
사일러스 마너는 누구인가?
주인공 이름이다. 18세기 후반부터 나폴레옹 전쟁 후인 19세기 초까지를 배경으로, 작가가 유년 시절에 보았던 등짐 진 리넨 직조공을 그린 작품이다. 본문은 332쪽이다. 분량이나 내용으로 볼 때 장편이다. 하지만 조지 엘리엇 작품 중에는 짧은 편에 속한다. 형식 면에서나 내용 면에서 매우 짜임새 있는 원숙한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예술적 완성도 면에서도 높이 평가 받고 있다.
어느 정도의 작품인가?
가난한 농민의 삶과 농촌 사회를 실감나게 그린 ‘레인보’ 술집 장면은 셰익스피어 작품에 비견될 정도로 격찬을 받는 부분이다. 평범한 마을 주민들이 마너의 도난사건을 해결해 보겠답시고 머리를 모으는 장면이 당대인들의 모습과 분위기를 잘 재현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태어난 소설인가?
엘리엇은 늘 깊이 고심한 뒤 작품을 쓰는 작가였다. 그런데 유독 ≪사일러스 마너≫만은 소설 ≪로몰라(Romola)≫를 구상하던 중에 갑작스러운 영감을 얻어 넉 달 만에 썼다고 한다.
워즈워스와 관련 있다는데?
엘리엇 본인이 이 작품의 주제를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인간관계가 갖는 치유력’이라고 언급한 바 있는데 이는 워즈워스적인 개념이다.
작가의 메시지는?
이 작품에 대해 ‘돈보다 우월한 사랑에 관한 분명한 도덕적 표현이자 고립과 사회를 그린 두 가지 이야기’라는 지적이 있다. 즉 돈을 잃어버린 충격에도, 혼자 남겨진 아이를 키우려는 마너의 순수한 마음과 그 아이가 자기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모른 척하는 마을 유지 고드프리의 태도가 상반된다는 것이다.
같은 주제를 다룬 작가의 다른 작품이 있는가?
≪사일러스 마너≫는 친구의 모함으로 세상을 등진 주인공이 래블로 마을에 편입되는 과정을 그렸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엘리엇의 다른 작품 ≪급진주의자 펠릭스 홀트(Felix Holt, the Radical)≫와 비슷하다고 하겠다. 이 작품 역시 개인과 사회의 유기적 관계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사일러스 마너가 사회에 복귀한 계기는?
양녀로 들인 에피 덕분이다. 작품 초반부에서 마너는 친구의 모함과 도난 등 재앙으로 연속되자 정신이 피폐해진다. 하지만 마너는 잃어버린 대신 어린아이를 양녀로 받아들여 아버지 노릇을 하게 되면서 행복을 되찾는다. 즉 마너는 에피를 통해 이웃들, 즉 래블로 마을이라는 공동체와 관계를 맺음으로써 인간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회복하며 동시에 공동체와 관계를 회복한다.
어떤 식으로 마을과 관계를 맺는가?
구체적으로, 마너는 홀아비라 아이 키우는 법을 전혀 몰랐다. 이에 그는 이웃인 윈스롭 부인의 도움으로 아이를 키운다. 이런 식으로 그는 마을 사람들과 교류를 하기 시작한다.
마을 유지라는 고드프리는 어떤 사람인가?
술집 여자와 부적절한 관계로 에피를 낳았고, 에피의 생모가 급사하는 바람에 다른 사람들은 이 내막을 전혀 모른다. 고드프리는 에피가 친딸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이 사실을 숨긴 채 낸시라는 양갓집 규수와 결혼한다.
좀 파렴치한데?
작가의 권선징악 의식 때문에, 결혼 후 그에게는 아이가 없다. 몇 년 뒤 금화를 훔친 던스턴의 유골이 발견되자, 충격을 받은 고드프리는 본인이 에피의 친아버지임을 밝히고 죄를 뉘우치려고 마너의 집을 찾아간다. 하지만 에피를 데려다 키우려는 제안은 마너·에피 모두에게 거절당한다. 고드프리는 자신의 죄가 부(富)나 지위, 그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작품의 판본 역사는?
≪사일러스 마너≫는 1861년 영국 블랙우드 매거진(Blackwood’s Magazine)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이 책 번역에 사용한 판본은 1960년에 뉴 아메리칸 라이브러리(The New American Library) 출판사에서 나온 ≪Silas Marner≫다.
작품의 국내 소개 현황은?
창비사의 ≪싸일러스 마아너≫와 신아사의 ≪Silas Marner≫가 있다. 전자는 한글판이고 후자는 영문 주석판이다. 창비사의 한글 번역판은 오래전에 나와서 현재 시중에서 구하기가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다.
≪미들마치≫도 그의 작품인가?
1871년부터 1872년 12월까지 잡지에 연재된 ≪미들마치(Middlemarch)≫는 큰 인기를 얻은 작품이다. 약 5000파운드를 벌어들이는 성공을 거뒀다. 엘리엇은 총 여덟 편의 장편소설을 남겼다.
엘리엇 문장의 번역이 쉽지 않았을텐데?
엘리엇의 문체는 워낙 문장이 길고 현학적이라 번역이 쉽지 않을뿐더러, 매끄럽게 되지 않는다. 현대 한국어의 일상 표현을 기준으로 번역했다. 문장이 너무 길 경우 본래 의미를 손상시키지 않는 선에서 짧은 문장으로 나눠 번역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한애경이다.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다. 이화여자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코네티컷대학교, 예일대학교, 퍼듀대학교, 노스캐롤라이나(채플 힐)대학교에서 연구했다.
≪사일러스 마너≫에서 볼 만한 장면은?
작가가 스스로 말한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인간관계가 갖는 치유력’이라는 주제 의식과 가까운 대목이다. 사일러스 마너가 이웃인 돌리 윈스롭 부인과 에피의 양육 문제, 신앙 상담, 각종 충고 등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에피의 세탁물을 집에 가져온 날, 그녀가 말했다. “마너 씨. 당신 문제와 제비뽑기 문제로 머리가 아주 지끈지끈했어요. 앞을 보나 뒤를 보나 꼬여 있어서. 어느 끝을 잡아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하지만 자식들을 뒤에 남기고 죽은 불쌍한 베시 포크스 옆에서 밤샘하던 날, 모든 게 분명해졌어요. 대낮처럼 훤히 떠올랐어요. 하지만 제가 지금도 그 생각을 제대로 파악한 건지, 제대로 말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가끔은 마음속에 많은 말이 있지만 말을 잘못하기도 하니까요. 당신의 예전 고향 사람들은 기도문을 외우지도 않고 성경책을 보고 기도하는 것도 아니라니, 틀림없이 굉장히 똑똑한 모양이에요. 전 ‘주기도문’을 모르고, 교회에서 좋은 말씀을 듣고 와서 매일 밤 무릎을 꿇어도, 아무 말도 못하니까요.”
“하지만 아주머니는 대부분 제가 알아들을 수 있게 얘기하시잖아요?” 사일러스가 말했다.
“글쎄, 마너 씨.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전 제비뽑기나 그 제비뽑기 답이 틀렸는지 맞았는지 그런 건 잘 몰라요. 아마 목사님이 말씀해 주시겠죠. 어려운 말로 우리에게 말씀하시겠죠. 하지만 대낮처럼 훤히 제게 떠오른 생각은요, 그건 불쌍한 베시 포크스를 돌보며 걱정할 때였어요. 늘 사람들이 불쌍한데 한밤중에 일어나도 그들을 도와줄 힘이 없다고 생각할 때, 그런 생각이 머리에 떠오르곤 해요.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저보다 훨씬 더 친절한 마음을 가졌을 거라는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어요. 어쨌거나 제가 저를 만든 하나님보다 더 착할 수는 없으니까요. 어떤 일이 어려워 보인다면, 그건 제가 잘 모르는 일들이 있기 때문이죠. 그 문제로 말하자면, 제가 모르는 일이 많은 것 같아요. 전 아는 게 거의 없으니까요. 정말이에요. 그래서 제가 그 일을 생각하는 동안, 맘속에서 당신 생각이 나는 거예요, 마너 씨. 그러면서 생각이 막 쏟아지는 거예요. 제 마음에 당신에게 무엇이 옳고 정당한지 느끼고, 그 나쁜 놈만 빼고 기도하고 나서 제비뽑은 사람들, 할 수만 있다면 그들이 당신에게 올바른 일을 했다면요. 우리를 만들고, 우리보다 더 잘 알며, 더 선한 뜻을 지닌 하나님이 계시잖아요? 그게 제가 확신하는 거예요. 그 밖의 모든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제겐 큰 수수께끼 같아요. 열병이 돌아 다 큰 어른들을 데려가서 불쌍한 애들만 남기기도 하고, 팔다리가 부러지기도 하니까요. 착한 일을 하고 술도 마시지 않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 때문에 고생을 하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이 세상에는 고통도 많고, 뭐가 옳은지 알 수 없는 일도 많답니다. 그러니 마너 씨, 우리가 할 일이란 그저 믿는 거죠. 우리가 아는 한 올바른 일을 실천하면서, 나머지 시간엔 그저 믿는 거예요. 그렇게 조금밖에 모르는 우리가 착하고 옳은 일을 좀 안다면,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 큰 착하고 옳은 일이 있다고 확신해도 좋겠죠. 전 마음속으로 틀림없이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마너 씨, 당신도 계속 믿을 수 있었다면 친구들로부터 도망쳐서 그렇게 외롭게 살진 않았겠죠.”
“하지만 그건 어려웠을 거예요.” 사일러스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땐 믿기 어려웠을 거예요.”
“그랬겠죠.” 돌리는 거의 뉘우치면서 말했다. “행동보다 말이 쉬우니까요. 이런 말을 해서 부끄럽군요.”
“아니에요, 아닙니다.” 사일러스가 말했다. “당신 말이 맞아요. 윈스롭 부인. 당신이 맞아요. 이 세상에는 좋은 일이 있지요. 저도 요즘 그렇게 느낀답니다. 고통과 악이 있지만, 사람이 볼 수 있는 것보다 선이 더 많다고 느끼게 되네요. 그 제비뽑기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제게 아이가 왔어요. 우리에게 섭리가 있어요. 섭리가 있다고요.”
≪사일러스 마너≫, 조지 엘리엇 지음, 한애경 옮김, 263~26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