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멤논
≪아가멤논≫은 어떤 작품인가?
아이스킬로스의 3부작 ≪오레스테이아≫의 첫 작품이다. 아가멤논의 죽음을 둘러싼 클리타임네스트라, 오레스테스, 엘렉트라 사이의 갈등을 다룬다. 그리스 비극의 정수를 보여 주는 수작이다.
어떤 이야기인가?
그리스군의 승전 소식으로 작품이 시작된다. 클리타임네스트라 왕비는 왕의 귀환을 반기는 듯하지만 코로스의 대사 곳곳에서 그녀에게 뭔가 비밀이 있음이 암시된다. 트로이의 사제 카산드라를 대동하고 나타난 아가멤논은 승리감에 도취돼 있다. 왕비는 자줏빛 융단을 깔아 왕의 허영을 만족시키면서 그를 맞이한다. 모든 게 순조로워 보이지만 카산드라는 아폴론에게 부여받은 예언 능력으로 비극이 닥칠 것임을 예언한다. 곧이어 안쪽에서 도움을 구하는 왕의 외침이 들려온다. 아이기스토스와 짜고 왕비가 욕실에서 남편 아가멤논을 살해한 것이다. 딸의 죽음에 대한 정당한 복수였다고 주장하는 그녀를 두고 코로스는 탄식하며 말한다. “죄를 범한 자, 대가를 치르고 고통 받으리라.”
포인트는?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아가멤논이 딸인 이피게네이아를 희생 제물로 바쳐 죽인 것을 복수하기 위해 남편을 살해한다. 다음 작품에서 오레스테스는 아버지 아가멤논을 살해한 데 대한 복수로 친모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살해한다. 친자 살해에 대한 복수로 남편을 살해하는 아내의 행위가 정당한가? 친부 살해에 대한 복수로 친모를 살해하는 행위가 정당한가? 이런 정의와 복수의 문제, 인간의 오만과 그에 따른 고통의 문제에 주목할 만하다.
아이스킬로스는 누구인가?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와 더불어 그리스 비극 3대 극작가로 꼽힌다. 고대 연극사의 첫 장을 장식하는 중요한 작가다.
그의 명성은?
기원전 484년에 개최된 드라마 경연 대회에서 최초로 우승한 이후 28년 동안 열두 번이나 우승하면서 그리스 연극의 원조로 군림했다. 그를 통해 그리스 고대극 전통이 확립되었고 이것이 로마를 거쳐 유럽 전체에 퍼져 서구 연극의 원류가 되었다.
연극에 대한 그의 기여는?
비극이란 장르를 통해 예술의 정수를 드러내고 극작술을 혁신했다.
무엇을 혁신했나?
제2배우를 도입하고 코로스의 역할을 확대했다. 이전까지는 코로스와 단 한 명의 배우만이 등장했다. 아이스킬로스는 한 명의 배우를 추가한다.
또 한 명의 배우는 뭘 하게 되는가?
대사를 대사답게 읊을 수 있게 된다. 또한 코로스가 극적 긴장과 극적 행위의 전개에 기여하게 한다. 무대에 스케일이 큰 장면과 스펙터클을 도입해 흥미를 고조시킨 것도 아이스킬로스의 공이다.
그 이전의 연극은?
배우 한 명이 가면을 바꿔 쓰거나 분장을 달리하면서 여러 인물들을 연기했다. 인물 간의 갈등이 효과적으로 전달되지 않았다.
그의 혁신은 어떻게 발전되었는가?
제2배우의 도입이 인물들 사이의 갈등을 드러내는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점이 검증되자 후대의 극작가들은 제3의 배우를 도입해 극을 한층 다양하게 구성했다.
아이스킬로스 비극의 주제는?
그의 비극은 늘 고통과 인식의 문제를 다루고, 신과 인간의 정의를 대립시킨다. 운명의 사슬에 묶인 인간의 모습 또한 그의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있다.
그의 작품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애도의 문학이자 고통의 문학이다. 애도의 중요성을 일깨울 뿐만 아니라 고통을 통해 인간이 좀 더 성숙한 시야를 갖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아가멤논>의 대립 구조는?
아가멤논은 아프로디테의 분노를 잠재우고 출병하기 위해 신이 요구한 대로 딸을 제물로 내놓는다. 신의 요구였지만 인간의 정의는 아니다.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이 일에 앙심을 품고 아가멤논을 살해한다. 인간적인 복수지만 나중에 신의 심판을 받아 오레스테스에게 살해당한다.
비극의 근원은?
아가멤논 가문에 내려진 저주 때문이다. 그의 증조부 탄탈로스는 아들 펠롭스를 죽여 그 살코기로 만든 음식을 신들 앞에 내놓았다. 신들을 시험한 것이다. 비극은 이런 탄탈로스의 오만에서 비롯되었지만, 가문에 저주가 내려진 건 펠롭스 때문이었다.
펠롭스가 궁금하다.
나중에 신들은 펠롭스를 가마에 쪄서 되살린다. 그는 히포다메이아와 결혼하기 위해 그녀의 아버지인 오이노마오스와 목숨을 건 전차 경기를 치르게 된다. 이 경기는 사위 손에 죽으리라는 예언 때문에 오이노마오스가 제안한 것이지만 펠롭스는 왕의 측근을 매수해 왕의 수레에 미리 손을 써 놓아 위기를 모면한다. 경기 도중 전차에서 떨어진 왕은 결국 예언대로 펠롭스에게 죽임을 당한다. 일이 뜻대로 되었지만 그는 왕의 측근과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피사의 왕국 절반과 히포다메이아와의 하룻밤 동침을 대가로 약속한 것이다. 펠롭스는 심지어 그를 바다에 던져 죽이는데 이 일로 저주를 받아 그의 자손들이 불행해진다.
무엇을 말하고 있나?
인간으로서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인 힘, 즉 운명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이런 운명이 인간의 삶을 끊임없이 위협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특히 아가멤논은 운명의 ‘그물’에 걸린 인물이다. 그는 운명의 멍에를 쓰고 클리타임네스트라가 쳐 놓은 덫과 함정에 빠져 비극적으로 죽는다.
아가멤논의 종말이 의미하는 바는?
그는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 딸을 제물로 삼았고, 전쟁 중에도 지나친 교만과 애욕을 보인다. 과한 성격과 행동이 그의 파멸을 재촉했다. 운명의 힘은 강하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인간이 판단하고,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은 있다. 무작정 운명에 끌려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행해야 하는, 인간에게 주어진 몫이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는?
<아가멤논>은 오만성에 대한 경고인 동시에 모든 지나침에 대한 경고다. 명예와 명성도 지나치면 화를 부른다.
그리스 비극에 끌리는 까닭은?
인간의 오만과 고통을 처절하게 그려 보여 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고통을 통한 지혜의 체득’이다. 고통의 문제를 지혜의 체득과 연결하는 아이스킬로스와 소포클레스 등의 그리스 비극 작가의 시각이 매력적이다. 현대극과 구별되는 그리스 비극의 장중한 문체 또한 흥미롭다.
그리스 비극에서 오늘날 독자들이 읽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운명, 오만, 고통, 지혜, 인식은 그리스 비극을 구성하는 키워드다. 모든 비극과 문제의 출발이 인간의 오만이라는 지적은 오늘날에도 유의미하다.
번역 과정의 문제점은?
이 작품은 그리스어로 되어 있다. 지식을만드는지식 고전 시리즈는 중역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국내에서 그리스어 번역이 쉽지 않아 이 책은 영어본을 번역했다. 원전 언어의 생생한 맛을 살리지 못하는 아쉬움은 있으나 독자들이 작품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번역본들과의 차이는?
가독성을 염두에 두었고 공연에 적합한 대본이 될 수 있도록 번역했다. 특히 호흡 단위에 신경을 쓰면서 행을 배치했다. 또한 각주를 통해 그리스 비극에 생소한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종환이다. 계명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다. 셰익스피어 작품 번역에 주력했으나 지금은 그리스 비극 작품 번역에 몰두하고 있다.
이 작품의 한 장면은 골라 본다면?
다음 대목을 추천한다.
p.26
인간을 지혜로 인도하시는 제우스 신,
“고통을 통한 지혜의 체득”을
그분의 법으로 삼으셨네!
잠을 자려는 우리들 가슴속에
고통의 기억과 함께
번민이 스며들어 우릴 어지럽히네!
그러나 인간들,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고통과 싸우면서 절제와 중용을 배우네!
이는 왕좌에 앉아 계신 신들께서
“고통을 통한 지혜의 체득”이란
가혹한 은총을 베푸시기 때문이네!
P.48
지금 우리 분명하게 본다네.
가문의 부(富)가 도를 지나쳐
자화자찬하며 뽐내는 자들을,
무모한 교만을 드러내는 자들을
신께서 재앙을 내려 심판하는 것을….
충분한 부를 소유하고 있으나
그것을 사려 깊게 쓰는 자,
불행의 나락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부자라고 거드럭거리면서
위대한 정의의 제단을 걷어차 버리는
거만하고 교만한 자,
그 어떤 안전한 곳도 허락하지 마소서!
그런 교만한 자는
어리석은 행동을 책동하는
심술궂은 외고집을 억누를 수 없으니,
그 어떤 치유책도 없다네!
그의 사악한 행동, 감춰지지 않고
빛나는 불빛처럼 선명하게 드러나네!
문지르면 색이 변하는 더러운 놋쇠처럼….
죄지은 자 또한 이와 같으니
더러운 모습 만천하에 드러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