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시앵 레짐과 프랑스혁명
프랑스 정치 역사 분석의 고전
≪앙시앵 레짐과 프랑스혁명(L’Ancien Régime et la Révolution)≫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 문제
자유의 문제가 아니라 물질의 문제 때문에 참여는 결핍되고 공공 정신은 위축된다. 누군가가 물질과 안전을 약속하면 대중은 순간 어린양이 된다. 토크빌이 쓰고 이용재가 옮긴 이 책은 독재와 파시즘 출현의 역사를 신통하게 예측한다.
대혁명은 결코 우연한 돌발 사건이 아니었다. 대혁명이 불시에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사실이지만, 오랫동안 계속되어 온 작업의 완성이었으며 적어도 열 세대에 걸친 사람들의 노고로 이루어진 작업의 갑작스럽고도 격렬한 결말이었다. 대혁명이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낡은 사회 구조는 빠르고 늦은 차이가 있을 뿐 어느 곳에서나 붕괴되었을 것이다. 단지 차이라고는 한꺼번에 붕괴되지 않고 계속해서 하나씩 와해되었을 것이라는 점뿐이다. 대혁명은 스스로 조금씩 마무리되어 갈 것을 폭발적이고 고통스러운 노력을 통해 어떤 중간 과정도 경고도 거리낌도 없이 한순간에 완성해 버린 것이다. 혁명이 이룩한 업적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앙시앵 레짐과 프랑스혁명≫, 알렉시 드 토크빌 지음, 이용재 옮김, 52쪽
모든 혁명이 그런 것 아닌가, 프랑스혁명은 다른가?
대혁명, 곧 1789년에 프랑스혁명이 발생했을 때 사람들은 우선 종교혁명이라 생각했다. 교회가 가장 많은 공격을 받았고 반종교적 열정이 워낙 강하게 타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혁명은 정치권력의 타도를 가져온 정치혁명이자 사회구조의 변혁을 원한 사회혁명이었다는 것이 이 책의 판단이다.
앙시앵 레짐은 어떤 체제인가?
원래는 대혁명 이전 근세 프랑스의 정치와 사회를 일컫는다. 계몽사상가나 혁명가는 비난조로 이 말을 즐겨 사용했다. 이 책이 나온 뒤에는 혁명으로 타도될 옛 체제 일반을 가리키는 용어로 굳어졌다.
타도의 대상이라는 오명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정치적 불평등과 빈부의 양극화는 점차 심해지고, 프랑스 왕은 전쟁을 치르기 위해 세수를 증대했다. 가톨릭 고위 성직자와 귀족을 제외한 제3신분의 가난한 평민에게 온갖 봉건적 제도는 특히 가혹했다. 이들은 도로를 건설하고 보수하기 위해 부역에 동원되었고, 특권 신분과 달리 국가가 부과하는 각종 명목의 세금을 내야 했을 뿐만 아니라 영주에게 각종 봉건적 부과조를 내야 했다.
≪앙시앵 레짐과 프랑스혁명≫은 어떤 시각의 책인가?
≪아메리카의 민주주의≫와 함께 토크빌의 양대 저작이라 부른다. 앙시앵 레짐 사회를 다각도에서 실증적으로 보여 주며 프랑스혁명에 대한 독창적 분석을 제시한다. 사실 앙시앵 레짐 시기 프랑스는 유럽 어느 나라보다 번영했으며 국왕도 일정 부분 개혁을 도모했다. 하지만 내부 개혁을 통해 사회적 평등이 조금씩 실현됨에 따라 남아 있는 불평등이 더욱 참을 수 없는 것으로 부각되었기 때문에 대혁명이 발생했다고 보았다.
대혁명의 원인이 앙시앵 레짐이 아니라는 것인가?
근본 원인은 앙시앵 레짐이지만 대혁명을 가능케 했던 원동력은 다른 데 있다고 본 것이다. 이를 통해 왜 유독 번영을 구가하던 프랑스에서 대혁명이 발생했는지를 설명한다. “부패한 정부에 가장 위험한 순간은 일반적으로 그 정부가 스스로 개혁을 시작했을 때”라고 토크빌은 말했다.
대혁명은 성공한 것인가?
프랑스인들이 믿었던 만큼 성공하지는 못했다고 말한다. 대혁명이 반드시 앙시앵 레짐과 절대적 단절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단절보다 연속성을 강조한 것이 바로 토크빌 분석의 특징이다.
혁명이 단절이 아니라면 무엇을 연속했다는 말인가?
앙시앵 레짐을 파괴하도록 대혁명을 이끈 습성이나 이념 따위는 앙시앵 레짐에서 물려받은 것이다. 예를 들어 토크빌이 대혁명의 가장 뚜렷한 결과로 내세우는 중앙집권화 경향도 앙시앵 레짐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대혁명은 무엇을 했는가?
대혁명은 자유의 깃발을 들고 압제를 타도했다. 하지만 자유의 도움으로 평등이 점차 실현됨에 따라 대혁명 이후 탄생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유 자체는 더욱 확보하기 어려워졌다고 토크빌은 말한다.
혁명이 자유를 더욱 억압했다는 주장인가?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 문제는 정치 참여의 과잉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물질 향유와 이익 추구에 따른 참여의 결핍과 공공 정신의 위축에서 나온다. 자유롭지 못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선량한 가장, 정직한 상인, 존경받는 지주, 착한 기독교인은 찾을 수 있으나 공적 미덕을 갖춘 위대한 시민은 찾을 수 없다. 평등은 확대된 반면 참여 의식과 공공 정신으로 충만한 자유의 미덕은 오히려 위축되었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아메리카의 민주주의≫와 논지를 같이한다.
토크빌에게는 자유가 최고의 가치였나?
그는 유서 깊은 귀족 가문 출신이다. 배경 탓에 그가 평등보다는 자유를 더 중요시하고, 혁명의 원인을 탐색하면서 경제적 차원을 경시하고 정치적 차원에만 치중했다고 비판받기도 한다.
귀족 출신이라는 계급 구속에서 자유롭지 못했나?
계급적 배경에서 벗어나 현대사회의 추세를 정확히 진단했다. 토크빌은 자유 앞에 ‘민주주의적’이라는 형용사를 붙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 점에서 그 스스로 말하듯이 “새로운 유형의 자유주의자”로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수용하면서 장단점을 정확하게 포착했다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단점으로 그는 무엇을 주목했는가?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는 자유와 평등이다. 프랑스는 급격한 혁명을 거치면서 민주주의를 일구어 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중앙 권력은 무소부지의 권능을 행사한 반면 시민들은 물질적 탐욕과 이기주의에 빠진 무기력한 개인이 되었다. 이렇게 되면 국민에게 물질적 혜택과 안전을 제공하면서 국민을 마치 어린 양처럼 다스리는 특이한 형태의 독재가 출현할 수 있다. 시민들이 공공의 책무를 저버리고 자유보다는 평등만을 탐닉할 때 민주주의의 탈을 쓴 독재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탈을 쓴 독재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정치적 자유의 복원이라고 말한다. 이는 시민이 국가의 공공 사안에 적극 참여하고, 책임 의식을 갖고 권력을 감시할 때 비로소 회복할 수 있다.
알렉시 드 토크빌은 누구인가?
19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사상가다. ≪아메리카의 민주주의≫를 내놓아 세인의 주목을 끌고 ≪앙시앵 레짐과 프랑스혁명≫으로 역사가로서 인정받았다. 1848년 2월혁명 직후 제헌의회 의원으로 선출되고 1849년부터 외무장관을 지내는 등 정치가로서도 활약했다.
그는 보통의 역사 연구자와 어떤 점이 달랐는가?
단순히 앙시앵 레짐과 프랑스혁명의 경과를 보고하지 않았다. 프랑스혁명 이후 60여 년간 혁명과 반동의 세월을 되풀이하며, 자유와 평등이 조화를 이룬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가 실현되지 못했다고 진단한다. 따라서 프랑스혁명으로 되돌아가 그 원인을 탐색하고 앞길을 전망하려는 시도로 이 책을 썼다. 현재와 대화를 통해 적극적으로 재구성하고 재해석해야 할 소재로서 역사를 본 것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용재다. 전북대학교 인문대학 사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