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팔 저울
송주란이 옮긴 타오란(陶然)의 ≪양팔 저울(天平)≫
사랑과 일상의 무게
오른쪽과 왼쪽에 하나씩 얹어 보라. 현재와 미래, 감동과 약속, 인간과 돈, 기억과 욕망, 상상력과 계산력 그리고 사랑과 일상. 어느 쪽으로 당신의 몸이 기울어지는가?
그가 내게 청혼했을 때 난 이것저것 따져 보았다. 그가 사촌 오빠보다도 그리고 위시보다도 조건이 더 좋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사촌 오빠도 미국 시민이긴 했지만 그는 뉴욕의 차이나타운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고 있어 경제력이 그렇게 좋다고 할 수는 없었다. 위시는 홍콩에 살고 있어 미국으로 이민 갈 여지가 아예 없었다. 난 벌써 스물일곱 살이나 되었다. 모두 여자 나이 서른이면 쓸모없는 차 찌꺼기나 마찬가지라고들 말했다. 최종 정착지를 찾을 생각이 없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그를 꽉 잡아 진행해 나가야 했다. 누구에게 시집을 갈 것인가? 사촌 오빠, 훵위시 그리고 린퍽췬. 그들 모두는 이미 준비되어 있는 후보자였다. 그중에 그나마 린퍽췬이 가장 이상적이었다. 난 꿈꿀 나이가 이미 훨씬 지났다. 시집을 간다면 미국으로 시집을 가야지. 지금 가지 않으면 언제 갈 수 있겠는가? 그때는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을 것이다. 미국으로 이민을 갈 것이라면 린퍽췬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양팔 저울>, ≪양팔 저울≫, 타오란 지음, 송주란 옮김, 334~335쪽
스물일곱 처녀 이야기인가?
주인공 웬족옝이 배우자 선택의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이다. 마치 양팔 저울로 무게를 재는 것 같다.
왜 미국으로 이민 가려는가?
이 작품은 1997년에 발표됐다. 1997년 홍콩 반환을 앞두고 홍콩인들 사이에서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이민 열풍이 불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이민이 그들에게 유일한 출구처럼 보였다.
양팔 저울은 어디로 기울어지는가?
잡지사에서 편집 일을 하는 훵위시는 사장의 심부름으로 광고 회사에서 일하는 웬족옝을 만나 그녀를 좋아하게 된다. 그녀도 휭위시에게 끌리지만 결국 성공한 사업가인 린퍽췬과 결혼을 약속하고 미국으로 이민 간다.
순수의 상실인가?
순수해야 할 젊은이들의 사랑이 변질되었다는 것이 작가의 메시지다.
이 소설은 무엇을 하는가?
젊은이들의 애정관과 결혼관을 통해 홍콩 사회의 모습을 예리하게 그린다.
작가 타오란은 누구인가?
인도네시아 화교다. 중국 베이징에서 유학한 뒤 홍콩으로 이주했다. 그의 작품 배경은 주로 인도네시아, 베이징 그리고 홍콩이지만 이 세 곳 가운데 홍콩이 가장 많이 등장한다.
무엇을 쓰는 작가인가?
홍콩인의 사랑이다. 당시 홍콩 젊은이들의 사고방식과 삶의 형태를 포착한다.
어떻게 쓰는가?
시공을 넘나들며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방식으로 스토리를 엮는다. 기억과 상상, 추측이 작품 속에 스며들어 하나의 연결 고리를 이룬다.
이 책에 실린 세 편은 무엇인가?
중편 <미로를 빠져나오며>, <먼 하늘가 노랫소리에 묻어 있는 눈물>, <양팔 저울>이다.
<미로를 빠져나오며>는 어떤 행로인가?
한 디자인 회사에서 박렝엥은 지유셍틴의 조수로 입사한다. 둘은 연인 사이가 된다. 그러나 갑자기 박렝엥이 회사의 사장이 되면서 그의 태도는 표변한다.
메시지는?
박렝엥을 통해 홍콩 사회의 배금주의를 지적한다. 금전과 자리, 부와 권력의 획득으로 변하는 인간성을 씁쓸하게 묘사했다.
<먼 하늘가 노랫소리에 묻어 있는 눈물>은 어떤 이야기인가?
촬영 기자인 시우왕셍이 출장길에 비행기가 지체되어 여섯 시간 동안 공항에 갇힌다. 대기 시간에 그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상상과 환상 그리고 과거로의 여행 이야기다.
상상 속에서 누구를 만나는가?
윤우메이와 홍지하다. 전에 우연히 미모의 화가 윤유메이를 만났다. 그녀는 미국에 남편이 있고 딸도 있지만 2년간 그와 아름다운 사랑을 나눈다. 그 뒤 둘은 헤어진다. 1997년이 되기 전 그녀는 미국으로 떠나 버리고 그도 평범한 여자 이깜과 결혼한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잊지 못한다.
홍지하는 누구인가?
가상의 인물이다. 마치 꿈속에서 본 낯선 사람과 같다. 그녀는 소설의 긴장감을 더욱 북돋아 주는 역할을 한다.
뭘 이야기하는 작품인가?
시우왕셍의 독백을 통해 현실과 허구 사이의 괴리와 모순을 교차해 보여 줌으로써 도시인의 불명확하고 모순적인 사랑과 심리 상태를 그려 낸다.
당신은 누구인가?
송주란이다. 부산대 현대중국문화연구실 연구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