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밀한 학문으로서의 철학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이 쓰고 이종훈이 옮긴 ≪엄밀한 학문으로서의 철학(Philosophie als strenge Wissenschaft)≫
더 이상 근거가 필요 없는 판단
자연주의와 역사주의의 편견으로부터 벗어나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을 온전히 인식한다. 오로지 사태 그 자체로 부단히 접근한다. 관계로서의 인간에게 괄호 치기는 가능한 것일까?
그러므로 우리 시대가 성취해야 할 가장 위대한 발걸음은 올바른 의미에서 철학적 직관으로 ‘현상학적 본질 파악’의 무한한 연구 영역을 열고, 간접적으로 기호화하거나 수학화하는 어떤 방법도 사용하지 않고 추론과 논증의 장치도 사용하지 않은 채, 가장 엄밀하고도 ‘모든’ 장래의 철학에 대해 결정적인 풍부한 인식을 획득하는 학문의 길을 여는 것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엄밀한 학문으로서의 철학≫, 에드문트 후설 지음, 이종훈 옮김, 145쪽
후설이 자연과학의 탐구 방법을 거부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자연과학은 모든 존재를 수량화하고 의식과 이념을 사물화한다. 후설은 이를 전제와 결론, 근거와 주장에 차이가 없는 정밀한 학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엄밀성의 토대 없이 정밀성만을 강조하면 단편적인 사실만을 인식하는 사실학을 넘어서지 못한다.
왜 우리는 사실학을 넘어서야 하는가?
사실학은 인간성의 위기를 불러온다. 수학과 자연과학에서 학문의 전형을 찾는 근대 실증주의는 객관적 인식만을 추구했다. 자기반성의 주체인 이성을 제거하고, 이성이 존재에 부여하는 의미 문제를 외면한 것이다. 규범적 이성의 거부는 진정한 학문과 인간성의 위기를 가져왔다.
진정한 학문과 인간성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후설의 대안은 무엇인가?
엄밀한 학문으로서의 철학을 제시했다. 모든 학문의 타당한 근원과 인간성의 목적을 철저히 반성함으로써 철학의 참된 출발점으로 돌아갈 것을 촉구한 것이다. “참된 단초와 근원, 곧 ‘만물의 뿌리(rizomata panton)’에 관한 학문”이라는 철학의 이념을 실현하면 인간성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엄밀한 학문이 무엇인가?
“최고의 이론적 욕구를 충족시키며, 윤리적·종교적 관점에서도 순수한 이성의 규범에 의해 규제된 삶이 가능한 학문”이다. 엄밀한 학문으로서의 철학은 고대 그리스부터 오늘날까지 많은 철학자가 추구했지만 실현하지 못한 이념이었다.
많은 철학자가 엄밀한 학문으로서의 철학에 실패한 이유는 무엇인가?
실증주의에 입각한 자연주의와 역사주의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두 특정 분과 학문을 철학의 토대로 삼는다.
자연주의와 역사주의를 비철학이라고 비판한 후설의 주장은 무엇인가?
첫째 각각 자연과 역사를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다양한 사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무시한 채 특정한 파악 방식만 옳다고 주장하는 오류를 범한다. 둘째 모든 것을 경험 사실로 환원해 설명하면서 이성적 규범의 존재를 부정한다. 참다운 규범을 찾고 그것을 이성적으로 정초하는 철학의 이념을 거스르는 것이다.
후설이 주장하는 엄밀한 학문으로서의 철학은 무엇인가?
현상학이다. 엄밀한 학문으로서의 철학이 탐구하는 주제를 “‘무엇에 대한 의식’이라는 지향성”으로 규정하고, 지향성을 탐구하는 철학을 현상학이라 불렀다. 그의 현상학적 이념은 이론적 앎의 자기 책임과 실천적 삶의 의지 결단을 아우른다.
현상학적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 곧 방법론은 무엇인가?
기존 철학과 모든 편견에서 벗어나 의식에 직접 주어진 사태 자체를 직관해야 한다. ‘사태 자체로!’ 부단히 접근하는 것이다. 명증적 토대가 없는 판단을 거부하고 더 이상 근거가 필요하지 않은 판단을 찾아냄으로써 사태 자체로 돌아갈 수 있다. 후설은 이를 ‘현상학적 환원’, ‘판단 중지’, ‘괄호 치기’ 등으로 불렀다.
이 책은 누구를 위해 썼는가?
제자들에게만 알려진 자신의 현상학에 대한 구상을 일반 대중에게 간명하게 전달하고자 했다. 오랫동안 검토와 수정을 거듭했던 다른 저술과 달리 1910년 크리스마스 휴가부터 다음해 2월까지 원고를 쓰고 3월 ≪로고스(Logos)≫ 창간호에 실었다.
이 책의 철학사적 가치는 무엇인가?
초기 ≪논리연구≫부터 중기 ≪순수 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을 거쳐 마지막 저술 ≪유럽 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까지 후설의 현상학이 발전해 가는 가운데 일관되게 유지한 논지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다.
현상학이 현대의 우리에게 여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지금의 학문은 실증적 객관성과 과학적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사실과 가치가 분리되었다. 첨단 정보과학과 산업 자본주의 물결에 인격적 주체의 자기 망각은 더욱 심해지고 책임은 잊고 말았다. 과학 문명에 대한 철저한 비판과 궁극적 근원에 대한 탐구 정신이 앎과 삶의 위기에 치료제로 작용할 것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종훈이다. 춘천교육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