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에 대해
연극 이론 신간, 프세볼로트 메이예르홀트의 ≪연극에 대해≫
침묵, 들릴 때까지 기다려
숙청된, 가장 사회주의적인 연출가이자 배우이며 연극 이론가의 연극 이론서. 연극은 일상의 재현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회화여야 한다고 믿었다. 실제를 넘어서는 세계, 영원하고 초월적인 세계, 연극이 아니고서는 포착할 수 없는 내적 세계의 구현을 추구한 예술가. 그는 연극에 대해 무엇을 이야기했을까?
어떤 책인가?
구성주의 연극, 극장주의 연극, 배우 메소드로서의 생체역학 등으로 잘 알려진 메이예르홀트의 초기 연극관을 잘 보여 주는 책이다. 상징주의 연극과 양식화 연극을 실험했던 1905년부터 1912년까지의 작업이 바탕이 되고 있는데, 1913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처음 출간되었다. “연극의 본질에 대한 나의 관점의 발전 양상을 보여 주고 있는” 책이라고 저자 스스로 그 의미를 밝히기도 했다.
메이예르홀트는?
연출가이자 배우이며, 연극 이론가, 연극 교육자다. 스타니슬랍스키의 대중적인 사실주의 연극에 반기를 든 가장 대표적인 연출가이자 20세기 연극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연극인이기도 하다. 1917년 이후 혁명의 시기, 공산당에 입당한 최초의 연출가였으며 10월 혁명의 이상을 연극을 통해 구현하기를 주장했던 가장 사회주의적인 연출가였다. 1920년대 들어 구성주의 연극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실험하는 한편, 자신의 배우 시스템이라 할 ‘생체역학’을 정리한다. 이 시기의 연극을 그는 사회주의 이념에 입각해 설명하는데, 노동은 예술과 유사한 것이라 이야기하기도 한다. 스탈린 시절 예술의 형식주의를 금지하는 정책에 맞서다 1940년경 숙청당했다. 그 후 오랫동안 소비에트 러시아에서 금기시되다가 스탈린 사후 해빙기에 이르러 해금되었다.
스타니슬랍스키는 익숙한데 그는 낯설다.
우리의 연극 관습이 사실주의 전통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아울러 스타니슬랍스키의 ‘시스템’이, 연극뿐 아니라 영화, 텔레비전 연기 등 심리적 연기가 주류인 이 분야의 기초가 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둘은 뭐가 다른가?
스타니슬랍스키가 심리적이고 사실적인 연극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면, 메이예르홀트는 반(反)사실주의 연극, 실험적인 아방가르드 연극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것이다. 전자의 배우술의 시작이 배우의 개인적 체험, 배우의 내면으로부터 역할을 이끌어 내고 구현하는 것이라 한다면, 후자의 배우는 신체 훈련을 통한 외적이고 예술 테크닉적 형식을 통해 연기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갈라선 이유는?
그는 스타니슬랍스키의 모스크바 예술극장 배우였으며, 체호프의 <갈매기> 공연에서 트레플료프 역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예술극장 식의 ‘재현의 연극’은 연극 본연의 세계도 아니며 예술의 본령도 아니라 생각하게 되어, 상징주의 연극 실험, 양식화 실험을 하게 된다.
왜 상징주의인가?
상징주의는 유럽의 반사실주의 연극 중 가장 먼저 대두된 것이다. 사실주의가 가시적 현실, 일상적 현실에 집중한다면, 상징주의는 보이지 않는 세계, 영적인 세계, 신화적인 세계에 관심을 갖는다. 메이예르홀트는 사실주의 연극이 제시하는 일상적 현실의 무대적 재현이 연극예술의 본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상징주의 연극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이후 그 관심은 상징주의를 넘어선 ‘연극적 연극’으로 발전한다.
상징주의 연극 실험은 어떤 것인가?
1905년에는 스타니슬랍스키가 만든 모스크바 예술극장 산하의 스튜디오에서, 1906년부터 1907년까지는 당시의 유명한 여배우 베라 코미사르젭스카야의 초대로 페테르부르크에서 상징주의 예술가들과 교류하면서 실현해 나갔다. 대표적 작품으로는 마테를링크의 <탱타질의 죽음>, <성 안토니오의 기적>,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하웁트만의 <슐륙과 야우>, 입센의 <헤다 가블레르>, 솔로구프의 <죽음의 승리>, 알렉산드르 블로크의 <발라간치크> 등이 있다.
왜 실험이 필요했나?
본격적으로 상징주의 연극 실험을 한 것은 모스크바 예술극장을 떠난 지 3년 후인 1905년 스타니슬랍스키의 요청으로 다시 모스크바로 돌아오면서부터다. 상징주의 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비물질성, 영적인 분위기, 존재의 비밀스러운 느낌, 미묘한 음악성 등을 기존의 연극 메소드로는 쉽게 무대화할 수 없다고 깨달은 스타니슬랍스키가 상징주의 연극 실험을 위해 그를 부른 것이다.
배우에게 무엇을 요구했나?
‘침묵’과 ‘휴지(pause)’다. 배우들의 대화는 인물 상호 간의 대화라기보다는 운명에게, 혹은 신에게 말을 건네는 듯했으며, 이를 통해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의 존재감이 느껴지도록 의도했다. 배우들의 목소리가 어딘지 멀리서 들리는 것과 같이 울리기를 원했다. ‘소리는 깊은 우물에 떨어지는 것 같아야 한다. 소리는 구체적이어야지, 공중에서 울리는 그런 것이어서는 안 된다. 피아노 소리 같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바이브레이션이 있어서는 안 된다’라는 것이 연출가가 배우에게 요구한 것이었다.
성과는?
연극 고유의 특징, 연극 고유의 공간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우슬로브노스티 연극에 대한 개념을 확고히 정리한다. 그런 아이디어 중 하나로 <헤다 가블레르>나 <베아트리체 수녀>를 공연하면서, 상징주의 연극은 사실주의적 공간의 재현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회화’여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에 따라 만들어진 무대는 전체가 하나의 그림이었다. 이러한 시도를 통해 성취한 것은 현실 모사적이거나 가시적 세계만을 반영하는 무대가 아닌, 실제를 넘어서는 초월적이고 영원한 세계, 산문적 감각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내적 세계의 구현이라는 이상이었다.
우슬로브노스티란?
연극성, 조건성 등으로 해석되는 단어로 사실주의 연극, 재현적 연극, 심리적 연극과 대척점에 서 있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메이예르홀트 연극론을 이해하는 데 핵심어이기도 하다. 이 이론은 그의 극장주의와 양식화 실험 시기부터 강조되기 시작해 그의 전 생애에 걸쳐 실험된다. 연극적 연극성, 연극적 약속성, 연극적 조건성 등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성공했나?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다.
무엇 때문에?
첫 번째 실험에서는 스튜디오의 주인인 스타니슬랍스키를 만족시키지 못했고, 두 번째 시도에서도 그를 초청한 베라 코미사르젭스카야를 비롯한 상징주의자들의 반발을 샀기 때문이다.
상징주의를 추구했는데 왜 상징주의자의 반발을 산 건가?
러시아 상징주의의 대표적 시인 알렉산드르 블로크와 함께 만든 공연 <발라간치크> 때문이다. 블로크의 드라마 <발라간치크>를 상연하면서, 상징주의 예술가들에게 가장 중요했던 이상들을 풍자하고 조롱하게 된다. 죽음, 미스터리 등 세계의 비밀이라 여겼던 여러 개념들이 이 작품 안에서는 꼭두각시 인형들의 장난스러운 세계 속 무의미한 놀이거리로 전락한 것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심각함이 익살로 전복되는 세상, 망토를 두르고 낫을 걸머진 ‘죽음’의 알레고리가 별안간 마분지로 된 꼭두각시 인형 콜롬비나로 변하고, 봄빛 찬란한 ‘황금의 창’은 종잇장이 되어 찢겨 나가며, 광대는 죽어 가면서 피 대신에 붉은색 주스를 쏟는 세상, 그리하여 눈앞에서 벌어지는 모든 심각하거나 비극적인 것이 우스꽝스럽게 되고, 뒤둥그러지고, 왜곡되고, 뒤바뀌어 버리는 세상, 이것이 그가 추구한 <발라간치크>의 세상이자 그 안에 담긴 그로테스크의 미학이었다.
그로테스크란?
음악, 율동적 예술, 문학에서 조야하게 희극적인 장르다. 메이예르홀트는 이것이 가시적 영역에만 국한되어 있는 우리의 인식의 한계를 깨부수고 초월적 세계에 대한 인식으로 데려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삶에는 우리가 볼 수 있는 것 외의 예측할 수 없는 거대한 영역이 있다고 말한다. 초자연적인 것을 탐구하는 그로테스크는 모순들의 결과를 종합적으로 연결하고, 현상의 그림을 창조하고, 관객을 이해하기 어려운 수수께끼를 푸는 경험으로 이끈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의미는?
연극이 단순히 우리의 일상적 삶을 무대에 재현하고 가시적인 세계의 단면을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고 믿는 사람들, 연극예술이란 그 기원에서부터 더 초월적이고 더 존재론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 오늘의 연극은 바로 그 정신을 무대에 구현하고 사람들에게 일깨워 주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메이예르홀트가 선구자이자 스승이 된다.
번역 계기는?
메이예르홀트는 현대 연극사, 현대 연출사, 현대 배우론에서 언제나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 그러나 막상 그가 쓴 글이나 그의 이론 자체에 대한 번역 소개는 거의 없다. 특히 그의 구성주의 연극과 생체역학 이전의 초기 실험들에 대한 소개는 전무하다. 그의 생체역학은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가 연극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생각들, 연극에 대한 근원적 질문들로부터 나온 것이며 또한 이 역시 완성이 아닌 연극 세계의 한 부분일 뿐이다. 때문에 연극에 대한 근원적 질문들을 담고 있는 초기 경험으로부터 나온 그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당신은 누군가?
이진아다. 숙명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현대희곡문학을 전공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연극원에서 연극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숙명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연극평론가로 활동한다.
이 책의 한 대목을 맛보려면?
아래의 내용을 추천한다.
탐색의 연극과 그 연출가들은 우슬로브니 연극의 창립을 위해 작업하며, 이는 ‘친밀성의 연극’으로 분화되어 가는 것을 멈추고 ‘전일의 연극’을 부활시키기 위한 것이다.
우슬로브니 극장은 마테를링크와 함께 베데킨트를, 안드레예프와 함께 솔로구프를, 블로크와 함께 프시비솁스키를, 입센과 함께 레미조프를 공연하는 가능성을 제공하는, 그런 단순화된 테크닉을 제안한다.
우슬로브니 극장은 배우에게 삼차원의 공간을 만들어 주고 그에게 자연스러운 조상적(彫像的) 율동성이라는 가능성을 제공함으로써 배우를 무대장치로부터 해방한다.
무대 테크닉의 우슬로브니 연극적 방법에 힘입어 복잡한 연극적 장치들은 붕괴되었다. 특별히 극장의 풋라이트에 맞춘 무대장치나 대소도구, 또는 여러 외면적인 요소들에 배우가 의지하지 않고 무대에 나가 그곳에서 자신의 작품을 연기할 수 있게 된 그러한 단순성에 공연들이 도달하게 되었다.
그리스의 소포클레스나 에우리피데스의 시대에 비극 배우들의 경연은 배우의 독립적인 창작 활동이었다. 그러던 것이 무대 테크닉의 발전과 더불어 배우의 창조적 힘은 추락했다. 당연하지만, 테크닉의 복잡함 때문에 우리 배우의 독립성도 추락했다. 체호프가 옳게 지적한 것처럼, “탁월한 재능이 오늘날 매우 적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중간급의 배우들은 확실히 더 좋아졌다”(<갈매기>에서). 배우를 이유 없이 던져 놓은 불필요한 대소도구들로부터 해방하면서, 가능한 한 최소한으로 테크닉을 단순화하면서, 우슬로브니 연극은 배우의 창조적인 독립성이라는 첫 번째 계획으로 다시 나아가려고 한다. 모든 작업을 비극과 희극의 부활(첫 번째에서는 운명을, 두 번째에서는 풍자를 드러내면서)로 향하게 하면서, 우슬로브니 연극은 배우를 창조적 측면에서 미약한 훈련을 시키는 수동적 경험들로 이끌어 가는 체호프 연극의 ‘분위기’로부터 탈출하고자 한다.
우슬로브니 연극은 풋라이트를 제거해 무대를 객석의 레벨로 낮추고, 또한 리듬 있는 배우의 발성과 움직임을 만들어춤의 부활 가능성에 다가선다. 그리고 이러한 연극에서 언어는 음악적인 외침과 음악적인 침묵으로 쉽게 넘어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우슬로브니 극장의 연출가는 자신의 임무를, 배우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제시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마이닝겐식 연출가와는 반대로). 그는 단지 작가의 영혼과 배우의 영혼을 연결하는 다리의 역할을 한다. 배우는 연출의 창조를 자신의 안에서 실현해 홀로 면 대 면으로 관객과 마주하게 되며, 배우의 창조와 관객의 창조적 상상력이라는 두 개의 자유로운 근원의 마찰로부터 진실한 불꽃이 타오르게 된다.
배우가 연출가로부터 자유로운 것처럼 연출가도 작가로부터 자유롭다. 연출가에게 무대 지시문은 희곡이 창작되었던 그 시대의 테크닉을 떠오르게 하는 필수요소일 뿐이다. 내면의 대화를 감지해 연출가는 작가의 무대 지시문을 기술적인 필요성으로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것 정도로 생각하면서, 자유롭게 그것을 배우의 발성의 리듬과 율동의 리듬으로 드러낼 수 있다.
우슬로브니 메소드는 결론적으로 작가, 연출가, 그리고 배우에 이은 연극의 네 번째 창조자를 고려하는데, 그것은 바로 관객이다. 우슬로브니 연극은 그 안에서 관객이 자신의 상상력으로 무대에 주어진 암시를 창조적으로 완성하게 하는, 그러한 공연을 만든다.
우슬로브니 연극에서는 관객이 ‘단 한순간도 자신 앞에 배우가 있어 그가 연기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며, 또한 배우는 그 앞에 객석이 있으며, 다리 밑에는 무대가, 옆으로는 무대장치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그림 속을 들여다보면서, 단 한순간도 이것이 물감이고, 캔버스고, 붓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서도 그와 함께 삶의 고양되고 순정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과 같다’(안드레예프가 나에게 보낸 편지에서).
≪연극에 대해≫, 프세볼로트 메이예르홀트 지음, 이진아 옮김, 92~9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