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헌정
빅토리아 시대, 영국 헌정 체제 신간, ≪영국 헌정≫
민주주의의 왕
그곳에서 시작되었고 발전되었으며 지금도 명성을 잃지 않고 있으므로 우리는 영국을 민주주의의 나라라고 말해 왔다. 그러나 그 나라에는 왜 왕이 있는지, 헌법이 없는지,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는지 그리고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왜 그곳에서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잘 설명하지 못했다. 왕의 피로 세워지는 인민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의 왕이 된 나라, 영국은 어떤 현실을 살아왔을까?
≪영국 헌정≫은 어떤 책인가?
현재 영국 헌정 체제를 이해하기 위한 “불가피한 출발점”이다.
누가 그런 말을?
옥스퍼드대학에서 영국 근대사를 강의하는 명예교수 해리슨이 영국 정치사를 논하는 책에서 그렇게 말했다.
책은 무엇을 말하나?
빅토리아 시대의 헌정 체제를 분석했다. 내각, 국왕, 귀족원, 평민원 등 헌정 기관의 본질과 상호 관계, 내각 교체, 의회 해산, 귀족 서임을 통한 귀족원의 변경이 주제다.
어떤 질문에 답하는 책인가?
17세기 명예혁명 이래 영국 정치는 많은 칭송을 받았다. 의회가 헌정의 중심축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18세기 말부터는 프랑스혁명의 과격성을 비판하고 영국 체제를 찬양한 에드먼드 버크의 논설이 권위를 지녔다.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영국의 정치 담론은, 한편으로 버크의 개괄적 찬양과 다른 한편으로 급진주의 진영의 의회 개혁 주장으로 양분되었다. 당시 헌정 제도의 실제 운영에 관한 명료한 해설서는 없었다.
대답에 성공했는가?
1867년 출판 직후부터 고전의 지위에 올랐다. 명료한 분석과 설명 때문이다. 초판 성공에 힘입어 1872년에 초판 분량 4분의 1에 해당하는 긴 서문을 붙여 제2판을 발간했다.
빅토리아 시대는?
독일계 하노버 왕조의 여섯 번째 계승자인 빅토리아 여왕이 재위한 기간이다. 1837년부터 1901년까지다.
어떤 시간이었나?
세계 최고의 번영과 국제적 위세를 누렸다.
대처가 꿈꾸었던 나라?
20세기 말에 와서 ‘강력한 영국’을 꿈꿨던 대처 수상은 ‘빅토리아 시대 가치관으로의 복귀’를 역설했다.
어떤 가치를 추구한 시대였나?
근면, 자립, 절약, 청결, 자긍심, 이웃과의 정의, 애국심 등 도덕적 가치를 추구했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 헌정 체제는?
여왕, 귀족원, 평민원이 핵심 기관이다. 이 세 기관 사이에 권력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여 영국이 다른 나라보다 더 많은 자유를 향유했다는 분석이 전통적 견해다.
배젓의 분석은?
핵심 헌정 기관으로서 내각을 추가하고, 헌정 원리가 권력 균형이 아니라 권력 집중이며, 최고 권력이 평민원과 그 “집행위원회”인 내각에 있다고 지적했다. 여왕이 주목은 끌지만 실제 통치자는 내각과 수상임을 간파한 것이다.
반기를 든 것인가?
당시의 정통적 설명에서 벗어났다.
배젓은 결국 빅토리아 시대 헌정 체제 찬양자인가?
그렇다. 평민원과 내각에 권력이 집중된 당시 헌정 체제가 빅토리아 시대의 효율적이고 강력한 정치의 원천이라고 주장한다. 내각제에 대한 고전적 옹호론을 제시했다.
어떤 논리로?
당시 영국 의회를 “이제까지 세상에 알려진 것 가운데 가장 위대한 조사 기구이며 가장 위대한 토론 기구”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수상이 관장하는 내각은 그런 현명한 의회 의원들이 출중한 인물들을 선출하여 구성되므로 훌륭한 정치가 가능했다고 파악했다. 당시 영국 내각제와 미국의 대통령제를 비교하며 그러한 입장을 공고히 했다.
대통령제에 대한 견해는?
대통령제에서는 영국 내각제처럼 효율적이고 유능한 정치가 불가능하다고 판정했다.
대통령제의 약점은?
대통령제는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사이 권력 분립과 견제 원리에 입각하고, 판단 능력이 떨어지는 일반 선거인에 의해 대통령이 선출되며, 대통령의 임기가 고정되어 있다는 점 등을 들었다.
오늘날 영국은 달라지지 않았나?
배젓이 빅토리아 시대 헌정 체제의 핵심 기관으로 선정한 국왕, 귀족원, 평민원, 내각은 현재도 주요 헌정 기관으로서 기능하나, 각 기관의 위상이 변했다.
어떻게 변했나?
국왕의 권력은 더욱더 상징적 성격을 띠게 되었고, 평민원이 귀족원에 대해 더욱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이런 변화 경향은 배젓이 선구적으로 간파한 바였다.
보통선거제는?
20세기 초 평민원이 보통선거제를 통하여 민주적 성격을 확보한 것이 가장 큰 변화다.
최근의 변화는?
20세기 말부터는 전에 없던 규모로 헌정 개혁이 진행되고 있다.
개혁의 초점은?
이미 정치권력을 상실한 국왕제와 달리 상당한 권력을 유지해 온 귀족원이 주요 개혁 대상이 되었다.
보수당과 노동당의 태도 차이는?
대처 정부는 그런 변혁 요구에 저항했으나 1997년에 집권한 블레어 노동당 정부는 귀족제에 기반한 귀족원과 사법부를 상당히 개혁하고 웨스트민스터 의회 권력을 스코틀랜드와 웨일스 등에 일부 이양했다. ≪헌법전≫을 구비하자는 주장도 제기된 상태다.
영국은 정말 헌법이 없는가?
17세기에 ≪헌법전≫을 제정하려던 시도가 실패한 이래 영국에는 공식적으로 규정된 헌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의회가 제정하고 폐지하지 않은 법률들의 집적만 존재할 뿐이다. 그 가운데 어떤 법률들이 헌법에 해당되는지 구분할 공식 기준이 없는 것이다.
그럼 뭘 기준으로 국정을 판단하나?
어떤 법률이나 똑같이 평민원 의결 정족수인 40인 이상의 의원(귀족원의 경우 3인)이 모여 한 표라도 더 많은 쪽으로 결정된다.
영국에서 헌법의 의미는?
‘국가의 기본 규범’으로 폭넓게 정의한다면, 성문화된 법률들과 입법화되지 않은 관행들 가운데 실제 정치에서 ‘헌법적’ 사안이라고 대체로 암묵적 합의를 본 것이라고 규정된다.
암묵으로 결정이 가능한가?
실제 정치 운영에서 헌법의 내용이 결정되며, 매우 가변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월터 배젓은 누구인가?
경제학자이자 정치학자, 언론인, 문필가, 은행가 등 다방면에서 뛰어난 활동을 했다.
뭘 했나?
29세에 ≪내셔널 리뷰≫를 공동 창간했다. 30대 중반 이후에는 약 20년간 ≪이코노미스트≫ 편집장을 지냈다. 오늘날 ≪이코노미스트≫는 약 150년 전 배젓의 업적을 기려 주간 평론난의 제목을 “배젓”이라고 쓴다. 배젓의 저술 전집은 1915년 편집에서는 총 10권으로, 1986년 편집에서는 총 15권으로 발간되었다.
정치학자의 경력은?
헌법 해설가로서는, 영국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헌법학 입문≫의 저자이며 옥스퍼드대학의 법학 석좌교수였던 다이시(A. V. Dicey) 다음에 자리한다.
대표 저술은?
≪영국 헌정≫과 진화론을 선구적으로 채용해 정치 발전의 기제를 구명한 ≪자연학과 정치학≫(1872)이다.
한국에선 낯설다.
런던의 금융시장을 분석한 ≪롬바드 스트리트≫(1873)는 번역 지원 사업에 힘입어 2001년에 번역서가 출판되었다. 그러나 옮긴이들이 배젓의 이름을 “바지호트”라고 잘못 표기했다. 우리나라에서 배젓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표지일 것이다.
정치서로는 이 책이 처음인가?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정치론은 대표적 내각제 옹호자로서 ≪영국 헌정≫의 몇 페이지가 수록된 책을 번역한 것이 전부였다.
배젓 서술의 특징은?
당시 정통 이론에서 벗어나 헌정 제도의 실제 운영에 초점을 맞추는 경험주의적 접근을 통해 영국 헌정에서 내각의 본질과 의회주권 원리를 밝혀냈다.
베젯 정치학의 특징은?
인간의 감성과 성향, 국민성 등 비이성적 요소를 주요 설명 인자로 삼았다는 점이다.
민주주의자인가?
당시 영국의 번영과 위세에 만족하며 그 근원으로서 빅토리아 시대 정치체제를 찬양하고 유지를 역설했으므로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그리고 반민주주의로 요약된다.
자유주의, 보수주의, 반민주주의가 같은 말인가?
구체적으로 하층민들의 특성을 “무지”와 “가난”이라는 두 단어로 규정하면서 그들에게 평민원 의원 선거권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허황된 “위대한 것”과 “쇼”에 현혹되는 하층민들의 욕구를 만족시키면서 그들을 실제 정치에서 배제하는 “위장” 역할을 여왕의 주요 기능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우리가 그의 주장을 들어야 하는 이유는?
현대 민주주의 이념과 제도들이 어떤 반론들을 헤치며 발전되어 온 것인지 이해할 수 있으며 민주주의 확충에서 필요한 요건들을 파악할 수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가?
민주주의를 성공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고려할 필수 사항들에 관한 인식을 확대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약점을 이해한다는 뜻인가?
민주주의를 확충한다는 일반적 목표에 입각하여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헌정 체제를 ‘제왕적 대통령제’로 규정하고 내각제가 대안이라는 주장이 등장했다. 이 논란에 내각제 옹호론의 고전으로 꼽히는 배젓의 주장은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대통령제와 대비된 내각제의 장점, 의회의 작동에서 관건들, 여론과 언론의 기능, 국민의 정치의식 및 성향과 정치제도의 관계 등에 관하여도 유익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당신은 누구인가?
경희대학교 사학과 교수 이태숙이다. 서양사를 강의한다.
왜 배젓을 번역했는가?
다이시의 ≪헌법학 입문≫과 배젓의 ≪영국 헌정≫은 영국 헌정에 관한 가장 영향력 있는 저서다. 전자는 번역되었으나 배젓의 책은 내각제 옹호론으로서 극히 일부만 발췌되어 알려진 것이 안타까웠다.
번역은 어떻게 했나?
김종원이 초고를 작성하고 이태숙이 필요한 작업을 더했다. 따라서 번역에 대한 최종 책임은 이태숙에게 있다.
어려움은?
이 책이 가지는 흥미진진함을 제대로 살려 내는 것이었다.
어떤 재미가 있는가?
배젓은 출중한 문필가이자 언론인으로서 경쾌하며 예리한 문장을 구사했다. 게다가 가상의 입헌군주와 신참 장관을 등장시켜 발언하게 하고 평민원 “검투사”들의 공격에 대응하는 수상과 각료의 대화들을 재기 넘치게 묘사함으로써 ‘매우 재미있는 고전’을 만들어 냈다. 옮긴이들은 만일 독자들이 때때로 폭소를 터트리지 않는다면 자신의 무능을 한탄하며 슬퍼해야만 할 판이다.
책을 조금만 보여 준다면?
다음 구절을 보라.
영국 헌정의 특징적 장점을 간략하게 말하면, 그 위엄 부문이 매우 복잡하고 당당하며 아주 오래되었고 존경스럽다는 것이다. 반면 능률 부문은 중대하고 결정적인 행동을 할 때만큼은 매우 단순하며 현대적이다. 우리는 여전히 두 가지 중요한 장점을 지니는 헌정−갖가지 부수적 결점들로 가득 차 있고, 세계의 헌법 가운데 주변적 사안들에서는 최악의 솜씨를 보이지만−을 만들어 냈다. 아니, 그런 헌법과 우연히 맞닥뜨렸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즉 영국 헌법은 때때로 원할 때 지금까지 시도된 어떤 정부 기구보다 더욱 단순하고 쉽게 그리고 더 잘 작동할 수 있는 단순한 능률 부문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역사적이고 복잡하며 위엄 있는 연극적 부문을 지녔는데, 그것은 오랜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것−대중을 사로잡는것−이며, 무의식적이지만 전능한 영향력을 지니고 신민들의 결합을 인도하는 것이다. 영국 헌법의 핵심은 현대적 단순성의 힘 때문에 강력하며, 외관은 더욱 위압적인 시대의 고딕식 웅장함을 지니므로 위엄이 있다. 필요한 부분을 변경하면(mutatis mutandis), 영국 헌법의 단순한 핵심은 아주 다양한 나라에 이식될 수 있지만, 위엄 있는 외부−대부분의 사람이 영국 헌정 자체라고 생각한다−는 유사한 역사와 비슷한 정치적 재료를 지닌 나라에만 한정된다.
영국 헌정의 능률성의 비결은 행정권과 입법권의 밀접한 통합, 거의 완전한 융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영국 헌정≫, 월터 배젓 지음, 이태숙·김종원 옮김, 96∼9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