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회시
2436호 | 2015년 2월 5일 발행
3세기 중국, 난해하지만 아름다운
심우영이 옮긴 완적(阮籍)의 ≪영회시(詠懷詩)≫
영회시, 극심한 심리 공황
그는 명사였지만 불의를 막지 못했다.
죽림칠현이 되고 신선을 동경했다.
감정이 복받치면 시를 지었다.
마음에 품은 바를 노래했다.
난해하지만 아름답다.
夜中不能寐 한밤중 잠 못 이루어
起坐彈鳴琴 일어나 앉아 거문고 타니,
薄帷鑑明月 엷은 휘장에 밝은 달 비치고
淸風吹我襟 맑은 바람 옷깃 스친다.
孤鴻號外野 바깥 들녘 외기러기 울부짖는 소리
翔鳥鳴北林 북쪽 숲 뭇 새들 우는 소리.
徘徊將何見 배회한들 무엇을 볼 수 있으리?
憂思獨傷心 깊은 근심에 마음만 상할 뿐.
<제1수 夜中不能寐>, ≪영회시≫, 완적 지음, 심우영 옮김, 23쪽
깊은 근심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위나라 명문귀족 출신으로 위진 교체기에 겪는 뼈저린 아픔과 고독이다.
아픔과 고독은 어떤 모습인가?
‘밝은 달’과 ‘맑은 바람’은 객관적 경물이긴 하나 시인의 고독한 형상과 고결한 태도를 부각하기 위한 의도적인 상관물 역할을 한다. 이어서 등장하는 ‘외기러기’와 ‘뭇 새’는 시인의 쓸쓸하고 처량한 처지를 형상화한다.
‘뭇 새’는 누구인가?
이전의 비평가들은 ‘외기러기’는 완적 자신을, 북쪽 숲속의 ‘뭇 새’는 사마씨(司馬氏) 세력에 아첨하는 위나라 군신(群臣)들을 비유했다고 주장했다.
요즘 해석은?
지나친 확대해석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새들의 등장 자체가 시인의 상상이므로 과거의 해석이 완전히 틀렸다고 보기는 힘들다.
완적과 사마씨의 관계는?
완적의 아버지 완우는 건안 문학을 선도한 건안칠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완적은 비록 가난하기는 했지만 명문가의 일원으로 위나라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249년 사마의가 일으킨 정변으로 위나라 왕실은 힘을 잃고 사마씨로의 권력 이동이 급물살을 탔다.
당시 완적의 심리 상태는?
완적은 당시 명사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하지만 정권 찬탈을 목적으로 하는 사마씨의 전횡에 불만이 누적되어 극심한 심리적 공황을 맞았다.
극심한 심리 공황을 어떻게 벗어났는가?
도피적 처세관으로 청담 현학을 일삼는 죽림칠현의 일원이 되었다.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도 은사와 신선을 동경하며 감정이 복받칠 때마다 시를 지었다. 그게 바로 대표작 ≪영회시≫다. 45세부터 53세로 사망하기 전까지 지은 작품들이다. 총 95수다.
‘영회시’가 무슨 뜻인가?
‘영회(詠懷)’란 ‘마음에 품은 바를 노래한다’는 뜻이다.
무엇을 영회했는가?
고통과 고독의 정회를 묘사했고 변절자를 풍자하는 한편, 노년기 인생 역정과 불안한 여생에 대해 서술했다. 은둔 생활과 신선 세계를 추구한 시도 있다.
시의 특징은?
난해하다. 비흥(比興), 상징, 용전(用典)의 수법이 자주 사용되어 시인의 의도를 한눈에 알기가 쉽지 않다.
난해해진 이유가 뭔가?
작품 자체의 시작 수법 때문일 수도 있지만, 복잡 미묘한 시인의 심리적 갈등이 상식을 뛰어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창작 배경이나 정황이 다른 문헌에 거의 나타나지 않고, 판본에 따라 다른 글자가 많아 정확한 해석이 힘들다.
작품 수준은?
비록 난해하긴 하지만 미의식과 철학, 뜻과 감정이 적절하고 풍부하게 포함됐다는 점에서 뛰어난 작품이다.
후대는 완적을 무어라 평가했나?
일찍부터 비평가들의 이목을 끌었고 후대에 큰 영향을 끼쳐 유사한 작품들도 많이 나왔다. 도연명, 진자앙, 이백의 작품에도 완적의 영향을 받은 시가 있다.
문학사에서 위치는?
선진 시대에 ≪시경≫이 탄생해 중국의 정통 시가 문학을 출발시켰다고 한다면, ≪영회시≫는 그로부터 8세기가 지난 위진 교체기에 5언 신시체로 등장해 최고의 서정시로 자리매김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심우영이다. 상명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