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과 사이버사회
저자와 출판사 2. 이재현 교수
믿는다, 오랫동안
1999년에 그의 박사 논문이 커뮤니케이션북스의 모노그래프로 출간되었다. 첫 책이었다. 그러고 나서 지금까지 7권의 저서와 8권의 번역서가 이어졌다. 방송 전문가는 인터넷 전문가로 변신하더니 이제는 이름이 짜한 뉴미디어의 이론가로 성장했다. KBS에서 충남대학교로 자리를 옮겼고 그곳에서 8년 동안 하루 8시간 지식노동의 다짐을 지킨 뒤 서울대학교에 자리를 잡았다. 안식년을 연구실에서 보낸 2005년에는 백과사전을 통째로 옮겼다. 매클루언과의 한 판을 준비하는 이재현에게 ‘그의 출판사’와의 인연을 묻는다.
커뮤니케이션북스의 느낌은?
저자에 대한 신뢰를 느끼게 했다. 피부로 느낄 만큼, 일시적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뭐가 맘에 들었나?
전문 출판사이기 때문에 일반 교양 출판사와 달리 전문서에 대한 이해가 높다. 특정 학문 분야 접근이 용이하다. 커뮤니케이션 분야만 집중해서 출판하기 때문에 해당 연구자들에게 노출 기회가 많다.
걱정은 없었나?
초창기 때다. 어렵게 책을 썼는데 홍보가 약해 노출이 안 되면 어떡하나 걱정했다. 이제는 완전 해소되었다. 완전 기우였다.
지겹지 않나?
원고를 안 자른다. 출판사의 적극적인 지지, 나의 원고에 대해 인정과 믿음, 편집부와 호흡, 커뮤니케이션북스를 다시 찾는 이유다. 표지나 레이아웃에 대한 테크니컬한 갈등은 있었지만 편집부와의 교감이 더 중요하다. 계속 내다보니 나의 출판사라는 정서적이고 감정적인 로열티가 생겼다.
첫 만남은?
내 박사 논문을 보고 출판사가 청탁을 했다. 논문의 일부를 지금은 안 나오는 모노그래프로 출판했다.
두 번째 책은 저자의 제안이었지?
내가 연락했다. 커뮤니케이션 전문 출판사를 지향한다고 했다. <<인터넷과 사이버 사회>>를 내려는데 자연스레 커뮤니케이션북스가 생각났다.
그 말을 믿었나?
시장도 작은데 이런 일을 한다니 도전 의식이 느껴졌다. 이미지가 좋았다. 이미 이 분야 출판이 구조화되어 있었는데 새로운 출판사가 생긴 것이 고마웠다.
혼자 낸 책이 9권인가?
처음 교수가 되어 보니 시간 여유가 많았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업이 무엇인가? 교수의 본업은 연구와 교육이다. 다른 직장인처럼 8시간은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8년 동안 8시간씩 연구하고 책을 썼다.
2000년에 인터넷의 사회과학 접근은 좀 이르지 않았나?
내가 가장 아끼는 책이 <<인터넷과 사이버 사회>>다. 인터넷에 대해 새로운 사회과학적 설명이 필요한 시기였다. 내가 아는 한 세계 최초로 인터넷을 사회과학적으로 접근한 종합적 이슈 해설서다. 이어서 <<인터넷과 사이버 사회>>, <<인터넷 연구 방법>, <<인터넷과 온라인 게임>>을 썼다. 인터넷 삼부작이 된 셈이다. 그러고 나니 방송 전문가가 아니라 인터넷 전문가가 되어있었다.
원래 방송 전문가다. 인터넷으로 넘어간 까닭은?
서울 중심 미디어 소재로는 연구의 지역성을 극복할 수 없다. 그러나 인터넷은 지역성이 없고 항상 내 가까이 있다. 공평하게 제공된다. 참고 자료는 온라인으로 연결되어 있다. 상대적으로 전 세계를 연결할 수 있는 연구 대상이다.
뉴미디어 삼부작은 어떻게 된 것인가?
<<인터넷과 사이버 사회>>, <<모바일 미디어와 모바일 사회>>, <<멀티미디어와 디지털 세계>>를 냈다. 학회에도 잘 안 나가고 서울에도 안 나타나는데 이재현의 이름으로 책이 자꾸 나오니 이재현이 두 명이냐는 얘기도 있었단다. 책으로만 나의 존재를 알렸다.
충남대학교에서는 뭘 했나?
대전에서 공부하고 책 내며 인터넷과 뉴미디어 전문가로 인정받은 것 같다. 정말 지방 대학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책을 열심히 쓰는 것이었다.
논문 때문에 책을 쓰지 못한다는 교수들의 주장은 사실인가?
연구 성과를 발표하는 형식은 논문과 책이다. 현재는 책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책을 쓴다는 건 의미가 큰데 논문만 평가한다. 안타깝다. 책은 담론을 형성하는 깊이가 논문이 기여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남들 꺼리는 번역에 과감했던 까닭은?
좋은 책을 번역하는 것은 중요하다. 번역하면서 공부도 한다. 그러나 번역만 한다는 이미지가 싫어 저술과 번역 작업을 번갈아 했다.
이론 개발에 집착하는 모습인데?
우리나라는 사회과학 이론서나 교과서가 부족한 상황이다. 사회과학 이론의 빈곤을 극복하고 싶었다. 그러나 논문은 단편적이다. 사고의 깊이를 제공하는 이론서가 필요하다 생각했다. 뉴미디어 분야도 상대적으로 산업, 정책 연구가 많고 이론 연구가 부족했다.
책 쓰는 나름의 노하우가 뭔가?
책은 지속적인 작업이기 때문에 아무리 잘 써져도 밤 12시면 멈췄다. 그리고 글이 잘 써지는 지점에서 멈춘다. 자신감을 앞두고. 꼬이는 부분에서 멈추면 다시 자리에 앉아 쓰기 싫어진다. 잘 써지는 그 느낌, 그 분위기를 이어가며 써야 한다.
저술 준비는 어떻게 하나?
일단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공부는 필요한 부분만 보는 리서치가 아니다. 머리가 비었다 싶으면 학생처럼 공부를 한다. 교수에게 안식년이란 공부를 위한 시간이다.
교수가 공부할 땐 어떻게 하는가?
학생들이 공부할 때처럼 포괄적으로 읽어야 한다. 논문이나 프로젝트를 위한 리서치는 자기가 필요한 부분만 읽게 된다. 읽지 않고 쓰기만 하거나, 토론을 빙자하여 필요한 부분만 읽으면 지적인 유산이 쌓이지 않는다. 교수도 다른 사람의 책을 읽으며 무릎 꿇고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책은 저자의 독창적인 통찰력을 심도 있게 담고 있다. 깊이 넓게 읽지 않으면 연구자는 끝이다.
책 쓰고 싶은 내일의 저자들을 격려한다면?
성실함이 중요한 건 누구나 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용기라 생각한다. 같은 주제로 길게 쓰려면 남들이 인정할 만하다고 자신을 다독이며 견디는 용기가 필요하다.
언제 출판사를 가장 가깝게 느꼈는가?
<<뉴미디어 백과사전>> 번역을 청탁 받았을 때다. 세이지출판사가 한국 출판을 권유했는데 커뮤니케이션북스에서 나를 인정하고 번역자로 선정한 것이다. 영광스럽게 생각했다. 하지만 번역은 정말 힘들고 어려웠다.
앞으로는 뭘 할 건가?
<<미디어의 이해 2.0>>. 50살까지 쓸 계획이다. 미디어에 대한 통찰을 매클루언에게 바칠 수 있는 수준으로 쓰는 것이 목표다. 가까운 계획은 미디어 콘셉트 북 시리즈다. 최신 뉴미디어 현상을 이론적 측면에서 그것이 갖는 의미를 이론가로서 순발력 있게 심도 깊게 다루고 싶다. 특히 고전적 사회이론으로 하이테크 현상을 해석하고자 한다. 분량은 적지만 누구든 잡으면 2시간 안에 읽어내면서 뚜렷한 통찰과 에지를 주는 책이면 좋겠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재현이다.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다. “디지털 에크프라시스”, “인터넷, 전통적 미디어 그리고 생활시간 패턴”, “DMB의 인터페이스, 시공간성 그리고 모바일 상호작용” 따위의 논문을 발표했다. 인터넷, 모바일 미디어 등의 디지털 미디어와 문화, 소프트웨어 연구, 그리고 미디어 수용자 조사 분석이 주요 연구 분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