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합니다
갈대꽃
산 아래 시골길을 걸었지/ 논물을 대는 개울을 따라./ 이 가을빛을 견디느라고/ 한숨이 나와도 허파는 팽팽한데/ 저기 갈대꽃이 너무 환해서/ 끌려가 들여다본다, 햐!/ 광섬유로구나, 만일 그 물건이/ 세상에서 제일 환하고 투명하고/ 마음들이 잘 비취는 것이라면…// 그 갈대꽃이 마악 어디론지/ 떠가고 있었다/ 기구(氣球) 모양을 하고,/ 허공에 흩어져 어디론지/ 비인간적으로 반짝이며,/ 너무 환해서 투명해서 쓸쓸할 것도 없이/ 그냥 가을의 속살인 갈대꽃들의/ 미친 빛을 지상에 남겨 두고.
≪정현종 육필시집 환합니다≫, 106~107쪽
가을빛은
견디기 어렵다.
너무 환하고 투명하다.
미친 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