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대항공론장
2632호 | 2015년 6월 12일 발행
조선의 끝에 나타난 대항공론장 안내
원숙경이 쓴 <<조선 후기 대항공론장>>
지식인을 위한 거울
양반 정부가 지지부진하던 때,
민이 모이는 곳에서는 담론이 일어났다.
향회와 두레와 동학이 나타났다.
막힌 언로를 스스로 뚫고
외세의 압력에 자진해 맞섰다.
그때나 지금이나 민은 지식인의 거울이다.
“조선 후기 대항공론장도 마찬가지다. 제도화된 봉건공론장이 사실상 봉쇄되자 농민, 상인, 도시빈민을 비롯한 기층민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자 언로(言路)가 필요했다.”
‘조선 후기 대항공론장의 공간’, <<조선후기 대항공론장>>, 73쪽.
대항공론장이 뭔가?
보편적 공론장에 저항하는 공론장이다. ‘해방’의 의미를 담고 운동공론장을 지향한다.
뭘 하는가?
미숙한, 또는 변질된 보편적 공론장이 본래 역할을 하도록 돕는다.
언제 나타나는가?
공론장이 제 역할을 못할 때다. 자본주의적・권위주의적 체제에 대한 저항과 대항을 표명하는 활동이다. 68혁명을 계기로 학문 논의가 본격화되었다.
조선 후기 대항공론장의 등장 계기는 뭔가?
민의 굶주림이다. 외세에 의한 시장개방, 무능한 정부, 과다한 부세, 부정부패가 민의 생계 위기를 조성했다.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열강의 시장개방 압력과 싸우기 위해, 변하는 사회에 대응하기 위해 등장한다.
당시 상황에 대한 민의 대응 수준은?
본능적으로 위기를 인지했다. 울분을 토했다. 말과 글로 정부에 저항하고 행동으로 부패 관리와 외세에 맞섰다. 독립운동으로 발전했다.
어디에 있었는가?
삶의 담론이 형성되는 곳이면 어디든 가능했다. 빨래터, 장터, 산과 들과 같이 민이 모이는 곳, 그리고 향회, 두레, 동학 같은 사회 공간에서도 나타났다. 이들은 결사체로 발전한다.
향회가 뭔가?
사족층이 상호 결속을 다지고 향촌 질서를 유지하는 조직이었다. 18세기에 들어 수령의 자문기관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반상의 구분도 사라져 대소민제회(大小民齊會) 형식이 되었다.
활동은?
1740년 임천 대동계를 통해 향촌 문제에 적극 개입했다. 다수의 이익, 민의 공감 위에 활동했다. 대동의식을 기반으로 지역적으로 집단화·조직화되었다.
두레는?
농민만의 결사체다. 농업노동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고도의 조직성을 갖추었다. 자체 경제력으로 조직을 독자 운영하였다.
무엇을 했는가?
조선 후기 농민이 봉건 체제를 벗어나고 외세 반대 투쟁을 벌이는 데 큰일을 했다. 인적・물적 자원을 동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역 봉기에 두레가 기반이 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대항공론장으로서 동학은 어떤 조직인가?
겉은 종교단체다. 안은 사회운동단체였다. 농민을 중심으로 유민과 상인이 합세했다. 대동사상, 보국안민, 평등주의, 반외세를 기치로 세우고 안으로는 사회 부패와 싸웠고 밖으로는 척왜양운동을 펼쳤다. 사회변화와 체제변혁을 시도하는 이념적・운동적 공간이었다.
향회, 두레, 동학의 대항공론장은 어떻게 펼쳐지는가?
지도부의 약세로 크게 발전하지 못했다. 막힌 언로를 스스로 개척한 민의 지혜와 외세에 대응한 민의 자세가 역사의 거울로 남았다.
무엇을 비출 수 있는 거울인가?
침체된 시민운동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지식인은 민으로부터 반성하고 배워야 할 것이 많다.
이 책, <<조선 후기 대항공론장>>은 무엇을 다루나?
조선 후기 대항공론장이 형성되었던 정치·사회 배경과 이데올로기를 다룬다. 당시 대항공론장의 구성요소를 통해 장이 생성될 수밖에 없었던 배경과 활동을 소개한다.
당신은 누구인가?
원숙경이다. 동의대학교, 동명대학교, 부산교육대학교 외래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