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 천줄읽기
김현주가 엮은 김내성의 ≪초판본 마인 천줄읽기≫
피의자에 흔들리는 한국 탐정
홈즈나 뤼팽, 포아로는 흔들리지 않는다. 냉철한 계산으로 기만과 술수를 관통한다. 한국 탐정 유불란은 사랑에 약하다. 피의자 주은몽에게 향하는 감정을 감추지 못한다. 실패하지만 그래서 정겹다.
장안의 인심은 그야말로 글자 그대로 흥분과 렵기와 공포에 몸부림첫다. 그들은 한곳에 모히기만 하면 불가면의 이야기요 주홍마의 이야기로 해를 보냇다. 그들은 백영호 씨의 영혼을 애도하기보다 먼저 복수귀 해월의 기상천외한 재조를 찬양하엿다. 콩알만 한 가슴을 응켜쥐고 바들바들 떨고 잇는 은몽의 신세를 가련타 하기보다 먼저 순정을 짓밟히운 소년 승려 해월의 애끌튼 심정에 한숨짓기도 하엿다. 이리하야 백영호 씨 살해사건은 공포와 기적과 신비를 남겨노코 또다시 미궁으로부터 미궁으로 빠저들기 시작하엿다. 이처럼 사건이 다시 미궁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도회의 각 신문지는 명탐정 유불란 씨의 출마를 대서특서하야 부르짓게 된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니엇다.
≪초판본 마인 천줄읽기≫, 김내성 지음, 김현주 엮음, 70쪽
살인 사건인가?
그랬다. 백영호가 칼에 찔려 살해되었다. 주은몽도 다쳤다.
누가 죽였나?
해월이다. 승려 출신에 붉은 망토를 입고 탈을 썼으며 신출귀몰한다. 살인을 저지른 뒤 종적을 감췄다.
살해 동기는 무엇인가?
여주인공 주은몽에게 버림 받고 앙심을 품은 것으로 알려졌다. 백영호가 그녀의 남편이다.
주은몽은 어떤 인물인가?
절세의 미인이자 유명한 무용가다. 출세작 제목을 따 ‘공작부인’이라고 불린다. 갑부인 백영호와 결혼했다.
사건 현장은 어디인가?
주은몽이 개최한 가장무도회다. 명성 높은 예술가, 실업가, 변호사가 초청받았다.
해월은 검거되었나?
경찰은 그를 잡지 못한다. 그래서 명탐정으로 알려진 유불란이 사건에 개입했다. 오상억이란 이름의 청년 변호사도 사건을 해결하려고 동분서주한다.
미결 사건으로 끝나는 것인가?
아니다. 해월이 다시 나타난다. 이번에는 백영호의 아들 남수를 살해한다.
치정 사건이 아닌가?
살인의 진짜 동기가 밝혀진다. 해월은 백씨 일가에 오랜 원한이 있었다. 오상억은 그가 엄여분이란 여인의 아들일 거라 추측한다. 백영호는 30여 년 전 고향에서 엄여분을 능욕하고 아이의 아버지였던 사촌 형 백문호를 살해했다.
반전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탐정 유불란의 입에서 시작된다. 그는 엄여분의 아이가 확실히 사내였냐고 묻는다.
해월의 정체가 열쇠인가?
아직 알 수 없다. 과연 실재한 인물인지조차 의심스럽다.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유불란의 다음 착점은 어디인가?
해월이 여자일 수 있고 주은몽이 만들어 낸 허상일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은 해월이 주은몽과 동일인물이라고 선언한다.
여기가 종착점인가?
아니다. 주은몽이 죽는다. 사건은 다시 반전을 맞는다.
뭐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오상억과 유불란의 추리가 충돌한다. 마침내 2차까지의 살인 사건, 곧 백영호와 백남수의 피살 사건의 범인은 주은몽이라는 것이 유불란에 의해 밝혀진다.
주은몽은 누가 죽였는가?
그녀는 죽었다. 그러나 살해당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 자살했다는 말인가?
그렇다. 부모의 원수를 갚고 목숨을 버렸다.
이 소설의 매력은 무엇인가?
역동적 서사다. 범행 발발, 용의자 추적, 해결, 증거의 제시와 반전이 꼬리를 문다. 표면에 드러난 서사 맥락만 따라가다가는 잘못된 추론에 빠지지만, 작중 등장인물이 찾아낸 실마리가 결정적 추론의 계기가 되게끔 복선이 깔려 있다. 치밀한 구성 속에서 사건이 긴박하게 전개되며 반전이 연속되는 묘미를 느낄 수 있다.
서사에 힘을 주는 이야기 장치는 무엇인가?
유불란이라는 탐정의 캐릭터다. 셜록 홈스나 뤼팽이 철저히 이성적 사고에 기초한 탐정이라면 작가 김내성이 창조한 유불란은 감정의 동요와 그에 따른 추리의 실패를 그대로 드러낸다.
감정의 동요란 무엇을 말하는가?
유불란은 주은몽에게 연애 감정을 품어 정확한 사건 해결에 어려움을 겪는다.
스토리텔링은 어떤가?
과거의 일화와 현재의 사건을 교차시키면서 인물 관계나 사건 전개에서 아이러니를 반복해 드러낸다. 서사의 역동성을 배가시키는 또 다른 장치다.
≪마인≫이 인기를 끈 계기는 무엇인가?
김내성은 논리적 추론과 거듭된 반전을 통해 범인을 추적하는 서사 방식을 사용했다. 당대 독자들에게는 낯선 추리 기법이었다. 백영호와 오상억은 비윤리적인 방식으로 부를 쌓은 물질적 욕망의 화신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반면 주은몽은 백영호와 백남수를 살해했지만 부모의 원한을 풀기 위해 자신마저 희생한 인물로 인식된다. ≪마인≫은 근대의 경제적 기반인 자본과 근대적 지식의 소유자인 자본가의 비윤리성을 폭로했다. 결국 독자들은 이런 부조리를 지탱하는 것이 일본의 식민 질서와 가치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김내성은 한국 탐정소설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
그는 한국 탐정소설의 기원을 열었다. 일본 와세다대학 졸업 후 귀국해 탐정소설가로 등단했다. 본격적인 추리의 세계를 보여 주었을 뿐 아니라 소설 20편, 평론 5편을 발표해 양적으로도 당대 작가들을 압도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현주다. 한양대학교 기초·융합교육원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