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임노월 작품집
2581호 | 2015년 5월 11일 발행
임노월, 조선의 유미주의자
임정연이 엮은 ≪초판본 임노월 작품집≫
연애를 연애하던 시절
1920년대 조선은 낭만과 열정의 시대였다.
문단은 유미주의, 아나키즘, 다다이즘의 세례를 받는다.
임노월에게 죽음은 찬미의 대상, 악마는 매혹의 존재다.
식민지에 현실은 없었다.
이것이 언제 발표된 작품인가?
1920년 ≪매일신보≫에 발표되었다. 임노월은 1920년 문단에 등장해 1925년 절필을 선언했다. 시대정신으로 ‘근대’가 지배했던 시기다.
병호는 왜 이 사회에서 벗어나려 하는가?
유부남의 몸으로 춘희와 사랑에 빠졌고 사회의 지탄을 받았다. 예술이나 예술가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박한 현실과 도덕의 속박에서 벗어나 ‘순아한 정서 세계’로 떠나려 한다.
떠나면 뭐가 있는가?
영원한 사랑과 예술을 성취하고자 한 것이다.
어쩌다 사랑에 빠졌나?
둘은 경성동양미술학교와 경성여자학원 음악과에 재학 중인 예비 예술가다. 춘희가 병호의 초상화 모델이 되면서 사랑이 싹텄다.
둘은 정말 “다른 세계”로 가는가?
춘희는 부모와 오빠에게 편지를 남기고 남대문에서 병호를 만난다. “두 람은 눈물 속에셔 奉天向 汽車을 타고 南大門을 등지엿다.”
어느 시절 연애담인가?
1920년대다. 연애열에 달떠 ‘연애를 연애’하던 맹목적 연애의 시대였다. 예술지상주의가 기치를 높인 열정의 시대였다.
연애를 연애하던 시절의 풍경은 어떤 것인가?
1920년대 조선은 ‘낭만과 열정의 시대’였다. ‘연애’가 청춘의 감각을 대변하며 유행어가 되었다. 문단은 유미주의, 아나키즘, 다다이즘과 같은 세기말 사상과 전위적인 문예사조의 세례를 받았다. ‘자유연애’와 ‘예술’은 근대의 기호였다.
낭만과 열정의 풍경에서 임노월은 어디쯤 서 있었나?
등장인물들의 연애 과정을 절대미를 추구하는 과정과 등치시켰다. 예술을 통해 연애는 현실의 속박을 초월하는 완전무결한 관념이 된다. 또 연애의 비극성은 예술의 비애와 동일시된다.
비애의 절정은 어디였는가?
죽음이었다. 죽음은 구극(究極)의 미(美)를 맛볼 수 있는 감미로운 경험이다. 그러므로 임노월에게 죽음은 찬미의 대상이고, 죽음으로 이끄는 악마 또는 마녀는 매혹의 존재다.
작품 속 악마, 마녀는 누구인가?
<악마의 사랑>, <악몽>, <처염> 등에 등장하는 여성들, 즉 팜 파탈(femme fatale)이다.
이들은 어떤 모습으로 등장하는가?
임노월의 작품 <악마의 사랑>에서 영희는 아내인 정순과 달리 “요염(妖艶)한 미모(美貌)와 살가운 표정(表情)과 상긋한 젓가슴의 향기(香氣)”를 지닌 유혹자다. <악몽>의 S도 “요부적(妖婦的)의 기질(氣質)과 복잡(複雜)한 성미(性味)”, “풍염(豊艶)한 몸매”의 여성으로 “여러 남자(男子)에게 사랑을 밧겟다는 허영심(虛榮心)”까지 지닌 인물이다. <처염>에는 “여러 사내에게 귀염을 밧는” “매운 독(毒)” 같은 여자가 등장한다.
팜 파탈은 예술에서 어떻게 기능하는가?
그들은 ‘나’의 정열을 자극하는 관능적 연애 대상이다. 악의 세계를 체현한 존재다. 절대미의 현현인 것이다.
그때 임노월은 무엇을 본 것인가?
예술지상주의, 탐미주의를 보았다. 그의 작품 경향은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살로메≫의 영향을 받았다. 그 결과 ‘죄악’과 같은 이단적인 행위도 ‘예술의 관능을 자극하는 수단’이 된다면 용인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작품에 대한 평가는?
문단의 제도와 권력에 의해 과소평가되기도 했고 그 당돌함과 선진성으로 인해 과대평가되기도 했다.
과소평가의 원인은?
예술지상주의라는 의식적 구호에 매몰되어 작품의 완결성과 서사의 필연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감상의 과잉으로 인한 잦은 영탄, 일본식 조어와 부자연스러운 한자어 남용 등도 과소평가의 근거가 되었다.
그럼에도 그를 인정해야 하는가?
참예술은 세속의 평가나 윤리적 잣대를 초월한다는 일관된 신념을 보라. 한국 근대문학에 유미주의라는 서구 사상의 주춧돌을 놓았다.
당신은 누구인가?
임정연이다.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강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