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태 육필시집 형제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슬퍼하지 말라
절망하지 말라
좌절하지 말라
그리고 꿀꺽꿀꺽 먹어라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강물이 흐르고 새가 날으던
아득한 옛날부터
장미꽃에
물방울이 맺혀 구르듯
이 세상천지 모든 것들은
그렇게 둥그러이 그렇게
완벽한 꿈으로 젖어 있나니
사라진다는 것 부서진다는 것
구멍이 뚫리거나 쭈그러진다는 것
그것은 단지 우리에게서
다른 모양으로 보일 뿐
그것은 깊은 바다 속의 물고기처럼
지느라미 하나라도 잃지 않고
이 세상 구석구석을 살아가며
때로는 파아란 불꽃을 퉁긴다
오늘 슬퍼하지 말라
오늘 절망하지 말라
오늘 좌절하지 말라
펼쳐진 하늘을 바라보면서도
주룩주룩 슬퍼하는 자는
벼락을 맞아 죽으리라
하늘과 땅을 보면서도
절망하는, 좌절하는 자는
악마와 돼지가 돼 버리라
오오, 이세상은
아이에게 젖을 빨리는
어머니와 산봉우리로 가득하고
밭고랑에 씨앗을 놓는
아버지와 봄비와 하느님으로 가득하다
오오, 하늘 아래
빈틈없이 꽃피어 있는
사람의 사람다움!
사람의 눈물과 앞가슴!
그리고 사람의 따스운 두 손!
김준태 육필시집 ≪형제≫, 112~117쪽
서른세 해 전 오늘 남도의 한 고을에서 큰일이 있었습니다.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부서졌습니다.
하지만 시인은 단지 다른 모양으로 보일 뿐이라고 노래합니다.
시인이 맞았습니다.
‘부서지지 않으리’라는 노래로도 한 번 들어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