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생의 비애와 불안으로 꽃피운 예술 정신
중당(中唐) 시기의 시인 이하는 병약한 몸으로 태어났으며, 뛰어난 재능을 갖고도 벼슬길에도 오르지 못했다. 그는 27년의 짧은 생애를 사는 동안 끊임없이 절망과 공포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의 불우했던 삶은 험괴한 표현이 유행하던 당시의 풍조와 맞물리면서 기이하고 독특한 미감을 형성했을 것이다. 때문인 지, 그의 시에서 느껴지는 탐미적인 미의식은 오늘날의 독자들에게도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하의 시가 중국문학사에서 개척한 독자적인 영역은 인생의 비애와 죽음에 대한 공포를 놀라울 정도로 집요하게 묘사했다는 점이다. 이하를 시귀(詩鬼)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하의 시에 표현된 서정 자아의 형상은 천하를 호령하는 장수의 모습과 시간의 흐름을 두려워하는 쇠약한 정신의 청년이다. 이 두 가지 형상은 상반된 모습으로 이하의 마음속에 공존한다. 그는 끝까지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그만큼 현실에서 받아야 하는 고통이 컸을 것이다. 천상과 영혼의 세계를 동경했던 것도, 저무는 청춘을 슬퍼했던 것도, 행락을 즐기는 소년들을 조롱했던 것도 실현될 수 없는 욕망 때문이었던 것을 우리는 안다. 병약한 신체로 자신에게 다가올 죽음을 두려워했기에 그가 표현한 시간은 중국 문학사의 유례없는 현상이 되었다. 시간을 대하는 중국 문인들의 일반적인 태도는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거나 자신의 노쇠를 한탄하는 방식으로 표현된다. 생명을 자연의 일부분으로 인식하여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철학자의 모습도 있었다. 그러나 이하는 용의 다리를 잘라 살을 씹어 아침과 밤이 다시 순환되지 않게 하겠다고 말한다.(<고된 낮은 짧아(苦晝短)>) 목숨을 걸고 태양과 경주했던 신화 속의 거인처럼 질주하는 시간을 두려워하고 저주하면서 생명의 영원을 갈구했다. 또 시간의 흐름과 인간의 유한한 생명을 대비시키기도 하고, 영원히 순환하는 시간 앞에서 무기력하게 체념하기도 한다. 신선 세계의 황홀함을 동경하면서도 이하는 시간의 흐름을 느끼고 다가오는 생명의 영멸을 예감하면서 불안과 초조에 흔들렸다. 이하 시의 허무와 염세적인 정서는 시간을 극복하지 못하는 인간의 숙명으로부터 온다. 이 허무와 염세적인 정서는 이하 시의 아름다움을 구축하는 또 하나의 재료다. <술을 올리다(將進酒)>에서 쓴 것처럼 붉은 비처럼 쏟아지는 복숭아꽃 잎은 저무는 이하의 가엾은 청춘이기도 하고 쇠약한 생명이 추구했던 매혹적인 예술 정신이기도 하다.
독창적인 표현과 시 형식을 추구
이하는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어휘의 선택, 표현의 독창성에 매우 공력을 기울인 시인이다. 그의 시는 인공적인 미감에 가깝다. 떠오르는 시상을 메모했다가 나중에 고치고 다듬어 한 편의 시로 완성했다는 일화를 보면 그의 창작 방식을 알 수 있다. 즉흥적으로 단숨에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는 스타일이 아니라 더 뛰어난 표현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말을 고치고 다듬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가을이 오다(秋來)>에서 가을의 분위기를 묘사하면서 “어스름 등불 아래 귀뚜라미 차가운 울음 하얗게 울린다(衰燈絡緯啼寒素)”고 표현한 구절을 보면 귀뚜라미 소리를 차갑다는 말과 하얗다는 말로 표현했다. 이러한 기법으로 인해 독자들은 귀뚜라미 소리를 연상하면서 차갑고 하얀 이미지가 주는 다양한 감각을 체험하게 된다. 희미한 등불 아래 귀뚜라미 소리를 듣고 있는 시인의 마음이 고통으로 가득 차 있음을 시각으로, 청각으로, 촉각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또 “찬비에 혼령들은 이 가엾은 서생을 조문한다(雨冷香魂吊書客)”는 구절은 벗이 없어 혼령들의 위로를 받는다는 말이지만, 일반적인 위로가 아니라 죽은 이를 조문할 때 사용하는 조(吊) 자를 사용하여 시인의 고독과 절망을 공포에 닿을 정도로 몰아가고 있다. 병적인 심리 상태에서 표현된 말이기도 하지만, 한 글자의 언어가 만들어내는 감정의 증폭을 추구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빙의 공후인(李憑箜篌引)>에서 음악을 언어로 표현하기 위해 동원된 여러 기괴한 묘사들, 예를 들면 “돌은 깨지고 놀란 하늘은 가을비를 내린다”거나 “늙은 물고기 물결 위로 펄쩍이고 야윈 용은 춤춘다”는 등의 구절들 역시 언어의 미감에 대한 이하의 집요한 추구를 보여준다. 언어의 일반적인 규칙을 비트는 이러한 기법들은 이하의 독특한 문체로 평가받으며 ‘장길체(長吉體)’라고 불리게 된다. 그가 당시에 유행하던 근체시(近體詩)를 피하고 주로 고시(古詩)나 악부(樂府)의 문체로 시를 쓴 점도 평범함을 벗어나고 싶었던 그의 개성을 짐작하게 한다.
200자평
당나라의 시인 이하는 불우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토대로 자신만의 독특한 미의식을 구축했다. 현실 세계의 고통을 보상하기라도 하는 듯 그의 시세계는 더없이 화려하고 섬세한 표현과 시어들을 추구하고 있다. 하지만 자연의 서정을 노래하는 순간마저도 닿을 수 없는 현실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인해서 비애는 사라지지 않는다. 시귀(詩鬼)라는 음울한 별호가 그의 시세계를 단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지은이
이하(790∼816)는 자가 장길(長吉)이고 고향이 창곡[昌谷, 지금의 허난성(河南省) 이양(宜陽)]이라 이장길, 이창곡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당나라 황실의 후손이지만 그의 성장기는 이미 가문이 몰락한 후였다. 재능이 뛰어났고 입신양명에 대한 포부도 컸지만 봉례랑(奉禮郞)이라는 작은 벼슬을 3년간 했을 뿐이다. 후인들은 그가 남긴 시를 높이 평가하여 시귀(詩鬼)라는 별호로 부르기도 하고 뛰어난 시인이었던 이백, 이상은과 함께 삼이(三李)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려서부터 학문과 창작에 뛰어나 신동으로 명성이 자자하여 7세 때 방문했던 한유와 황보식 앞에서 즉흥적으로 시를 지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아버지 이름이 진숙(晉肅)이었는데 그가 진사(進士)가 되는 것은 예에 어긋나는 일이라는 탄원 때문에 결국 과거도 치르지 못했다. 진숙의 진과 진사의 진이 같은 발음이라는 이유였다. 그의 재능을 아꼈던 한유가 특별히 <휘변(諱辯)>이라는 문장을 지어 그를 변호했지만 결국 과거에 응시하지 못했다. 그를 시기했던 사람들이 모함했다는 이야기도 전하지만, 관직에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막히면서 평생을 절망과 괴로움 속에서 살았다.
이하는 체격이 마르고 왜소했으며 병을 많이 앓아 그의 집에는 약 달이는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고 한다. 용모도 특이하여 코가 매우 크고 눈썹은 이어져 있으며 손톱이 길었다. 시에서 나이 스물에 벌써 백발이 되었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면 그의 병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하는 또 일생 동안 결혼하지 못했다고 한다. 스스로의 외모와 처지에 대한 강박증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의 교유도 많지 않았고 이성과의 접촉도 어려웠으리라. 이러한 사정은 이하가 더욱 깊이 자신의 내면세계에 빠져들게 되는 배경이 되었다. 아름다운 여인에 대한 환상을 누차 시 속에 표현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사라진 후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시 쓰기에 몰두하는 것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나귀를 타고 다니다가 우연히 시상을 얻으면 적어서 비단 주머니에 넣어두고 저녁에 가다듬어 시로 완성했다. 크게 취하거나 문상을 가는 날이 아니면 항상 이러했는데 모친이 그의 마음을 짐작하여 슬퍼했다고 한다. 이런 일화는 그가 얼마나 창작에 몰두하고 심취했는지 알 수 있는 단서가 되기도 하지만 작품의 특징과도 관계가 있다. 그의 시는 정경을 묘사할 때 화려한 색채미나 감각적인 표현을 선호했는데, 이러한 특징은 언어와 문자에 대한 집착과 고민의 산물이다. 예를 들면 이백 같은 시인은 시상이 생겼을 때 일필휘지로 단숨에 시를 적었는데, 이하의 작품은 글자의 선택 과정에서 신중하게 고민을 하고 완성 후에도 계속 새로운 표현으로 고치고 다듬은 흔적이 보인다. 또 한 작품 안에서 빛나는 한 구절의 표현을 추구하는 면도 있는데, 이런 특징들은 비단 주머니에 시상을 모았다가 나중에 정리하는 습관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이하는 평생을 불우하게 살다가 27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이하의 너무나 불행한 일생과 그가 남긴 시의 기이하고 독특한 스타일 때문에 후대의 많은 사람들은 이하에 대해 특별한 환상을 갖고 있었다. 시귀(詩鬼)라는 그의 별호도 그러하다. 이하의 시는 모두 240여 편이 전하는데, 철저한 고독과 고통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섬세하고 정교하게 그려낸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작품 세계 역시 아름다움과 기괴함, 신비로움과 슬픔, 차가움과 황폐함이 교차되는 매우 독특한 형태인데, 수많은 중국 시인들 중에서도 아무도 가지 않았던 곳을 향해 걸어간 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역시 자신이 원하여 자신의 의지로 선택했던 길이 아니라 그의 천재적 재능이 불행한 운명과 만나며 빚어낸 비극의 산물이었으므로 후대의 독자들은 더욱 감동적으로 그의 작품을 대하게 된다.
옮긴이
이규일(李揆一)은 강원도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국민대학교를 졸업한 후, 베이징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국민대학교 중국학부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중국 고전문학 전공으로 위진 남북조 수당 시기의 시가, 문학사, 문학 이론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한시, 마음을 움직이다−중국의 한시 외교≫, ≪한시 교양 115≫ 등이 있으며 <문선 수록 잡의시 창작 유형>, <시인옥설에 나타난 송대 시안론>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차례
이빙의 공후인
가지 끝에 걸린 거미줄 한 올
회계에서 돌아오다−서문과 함께
아우에게
칠석
마음을 읊다−둘
안문태수의 노래
대제의 노래
소소소의 묘
꿈속 천상에 올라
당아(唐兒)의 노래−당아는 두빈공의 아들
푸른 종이에 적어 봉한 글−오 도사(吳道士)의 심야 제사를 돕다
천상에서 부르는 노래
크게 노래하다
가을이 오다
남원−넷
남원−다섯
남원−여섯
까마득한 세월
말을 노래함−하나
말을 노래함−넷
말을 노래함−다섯
말을 노래함−열
말을 노래함−열여덟
옥 캐는 늙은이
상심하여 노래하다
남산의 밭두둑
면애행(勉愛行) 두 수를 지어 여산(廬山) 가는 아우를 전송함−하나
술을 마시며
장가(長歌)에 이어 단가(短歌)를 부르다
그대 검무를 추지 마오−서문과 함께
창곡 북원에 새로 올라온 죽순을 읊다−하나
창곡 북원에 새로 올라온 죽순을 읊다−둘
창곡 북원에 새로 올라온 죽순을 읊다−셋
창곡 북원에 새로 올라온 죽순을 읊다−넷
느낀 바를 풍자함−하나
느낀 바를 풍자함−둘
느낀 바를 풍자함−셋
느낀 바를 풍자함−넷
느낀 바를 풍자함−다섯
하손(何遜), 사조(謝朓)의 시에 화답하여 ‘동작기(銅雀妓)’들을 추모함
창곡에서 글을 읽다 파촉의 동자에게 보여주다
파촉의 동자 답하다
나무를 심지 마라
떠남에 즈음하여
왕준(王濬)의 무덤가에서 짓다
나그네 길
숭의리(崇義里)에서 비 내려 머물다
나비 날다
뒤뜰에서 우물을 파다
수심을 떨치려고−꽃 아래에서 쓰다
규방의 그리움
고된 낮은 짧아
동타(銅駝) 거리의 슬픔
사나운 호랑이의 노래
해가 뜨다
한밤에 홀로 앉아
공후의 노래
무산은 높아
신에게 부르는 노래−하나
신에게 부르는 노래−둘
신에게 부르는 노래−셋
고관의 수레가 찾아오다−원외랑 한유와 시어사 황보식이 방문하시어 명을 받아 짓다
술을 올리다
소년을 비웃다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술을 올리다
유리 술잔
호박처럼 짙은 빛
술통에 떨어지는 방울방울은 진주처럼 붉다
용을 삶고 봉황을 구우니 옥 같은 기름이 떨어지고
둘러친 비단 휘장은 향기로운 바람을 감싼다
피리를 불고 북을 치며
하얀 이로 노래하고 가는 허리로 춤을 춘다
청춘은 곧 저물어가는데
어지럽게 떨어지는 복숭아꽃 잎은 쏟아지는 붉은 비 같아라
그대에게 권하노니 종일 거나하게 취하게나
유영(劉伶)이라도 무덤에 가져갈 수 없는 술이라네
將進酒
琉璃鍾, 琥珀濃, 小槽酒滴眞珠紅.
烹龍炮鳳玉脂泣, 羅幃繡幕圍香風.
吹龍笛, 擊鼉鼓, 皓齒歌, 細腰舞.
况是靑春日將暮, 桃花亂落如紅雨.
勸君終日酩酊醉, 酒不到劉伶墳上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