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백위군≫은 20세기의 도스토옙스키라 불리는 불가코프의 대표 희곡이다. 불가코프의 자전적 소설이기도 한 동명의 소설이 먼저 발표됐고 희곡은 이 소설을 각색한 것이다. 소설 ≪백위군≫이 동명의 희곡으로, 다시 <투르빈가의 나날들>로 개작된 것은 수차례에 걸친 검열과 상연 금지 처분이라는 당국의 압력 때문이었다.
불가코프는 작품을 통해 역사적 격변 가운데 인간의 굴곡진 ‘삶’을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동시에 당시 러시아 인텔리들의 비극적 운명과 인간 실존의 문제를 성찰하고자 했다. ≪백위군≫은 불가코프의 이런 작가 정신이 최초로 반영된 극작품이다. 검열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초기 창작 의도를 고스란히 드러낸 이 희곡의 두 번째 판본을 저본으로 삼아 완역함으로써 출간 의의를 더한다.
제1막
진격해 오는 페틀류라 이십 만 군대와의 전쟁을 예고한다. 그러나 험상궂은 시대적 분위기와는 걸맞지 않게 투르빈의 집은 저녁 손님들로 붐빈다. 니콜카의 노래를 배경 삼아 미실라옙스키의 한바탕 넋두리가 끝나면 라리오시키의 갑작스런 방문이 집안의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불행을 예고하는 것은 옐레나의 남편, 탈베르크 뿐이다.
제2막
페틀류라의 군대가 한발 가까이 다가왔다. 알렉세이와 스투진스키, 미실라옙스키는 각자의 위치에서 전쟁을 준비한다. 그러나 정작 그들이 지키려 했던, 그들의 수장 게트만은 독일군의 도움을 받아 몸을 피한다. 셰르빈스키가 상황의 반전을 목격하고 알렉세이에게 사실을 전한다.
제3막
알렉세이는 장교들과 어린 생도들을 집합시켜 해산을 명령한다. 이에 장교들이 반발해 내분을 조장한다. 알렉세이는 모두들 앞에서 게트만이 피신한 사실을 알리고, 우리에겐 우리가 지켜야 할 수장도, 믿고 따를 수장도 없음을 상기시킨다. 장교 및 생도들에게 집으로 돌아갈 것을 명령하고 자신은 남아 이들을 호위한다. 적의 습격을 받고 알렉세이는 결국 전사한다.
제4막
크리스마스 전야, 투르빈의 집에는 예전처럼 모두가 모인다. 주인집 부부인 바실리사와 반다도 함께한다.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이 방을 밝힌다. 페틀류라의 군대가 물러가고 소비에트 공화국이 들어설 거라는 소문이 돈다. 이들은 극이 처음 시작될 때와 같이 건배하고 노래 부르고 카드게임을 즐긴다.
내 아들들이여! 제군들에게 경고하건대, 제군들을 사랑하기에 집으로 돌려보낸다.
알렉세이가 장교와 생도들을 모아 놓고 해산을 명령하는 이 장면에서 비극적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한다. 그의 처절한 외침에서 우리는 한 나라의 파멸이 아니라 ‘고귀한 정신’, ‘인간 정신’의 파멸을 본다. 불가코프가 알렉세이의 인간적 비극에 초점을 맞춰 극을 전개해 나간 것도 이 때문이다. 알렉세이의 비극, 곧 그의 죽음이 러시아의 운명을 책임진 지식인들의 운명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희곡의 최종본인 <투르빈가의 나날들>에서는 총에 맞은 알렉세이가 회복돼 살아나는 것으로 설정된다.
200자평
20세기의 도스토옙스키, 불가코프의 ≪백위군≫을 희곡으로 만난다. 총 4막으로 구성된 희곡 <백위군>은 1918년에서 1919년 사이, 혁명 과정의 키예프를 배경으로 한다. 발표 이후 당국의 검열로 수차례 개작된 이 희곡은 결국 내용 수정을 거쳐 <투르빈가의 나날들>로 출간, 상연되었지만 지만지에서는 검열을 의식하지 않은, 작가의 의도가 가장 정확히 반영된 이 희곡의 두 번째 판본을 완역했다.
지은이
미하일 아파나시예비치 불가코프(Михаил Афанасиевичий Булгаков)는 1891년 5월 15일 키예프에서 신학대학의 교수인 아버지 아파나시 이바노비치와 어머니 바르바라 미하일로브나 사이에서 7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불가코프의 가정은 평범한 지방 소도시의 인텔리 가정이었다. 저녁마다 음악과 책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크리스마스 파티와 가족 공연으로 시끌벅적했던 그의 집은 미하일 아파나시예비치에게 있어선 언제나 따뜻한 세계로 기억되었다. 이 같은 풍경의 가족 분위기는 이후 그의 소설 ≪백위군≫과 희곡 <투르빈가의 나날들(백위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진로를 결정할 당시 불가코프는 문학과 예술로의 길에 대해 고민했지만 결국 의학의 길을 선택하게 된고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미하일은 전방의 의무병으로 발령 받아 전쟁터에서 외과 전문의의 지도 아래 수련을 받는 기회를 가진다. 이후 1916년 미하일은 우수한 성적으로 의대를 졸업하고 스몰렌스크의 작은 시골 마을 보건의로 발령 받는다. 갓 의대를 졸업한 신출내기 의사가 시골 벽지로 발령을 받아 크고 작은 수술을 집도하고 환자들을 진료했던 이 시절의 이야기들이 그만의 독특한 유머와 쓸쓸한 어조로 그의 단편집 <젊은 의사의 수기>에 잘 그려져 있다. 불가코프는 조국 전쟁 시절을 키예프에서 보내게 된다. 그는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키예프에서 14번의 정권이 교체되던 시기, 의사라는 이유로 볼셰비키에 의해서, 또 페틀류로프 정권에 의해서 전쟁터의 이곳저곳으로 동원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게 동원돼 갔던 블라디캅카스에 장티푸스가 도는 바람에 불가코프는 그곳에 발이 묶이게 된다. 단지 굶어 죽지 않기 위해 불가코프는 볼셰비키의 일을 돕게 되는데 그의 일은 볼셰비키적 관점에서 바라본 푸시킨과 체호프에 대한 강연을 준비하고, 지방 극장을 위한 희곡을 창작하는 작업이었다. 불가코프는 이곳에서 국외로 망명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만, 그는 러시아에 남게 되고 결국 모스크바에 정착하기로 결심한다. 모스크바는 이후 그의 작품 세계를 비롯하여 그의 일생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공간이 되고 그의 여러 작품들에서 중요한 모티프로 형상화된다.
1921년 불가코프가 아내와 함께 모스크바에 왔을 때 사실상 그의 수중에는 돈이 거의 한 푼도 없었다. 그러나 스탈린의 신경제정책이 실시되면서 1922년 봄부터 불가코프는 <구독>, <붉은 신문>과 같은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의 신문 및 잡지들에 고정적으로 칼럼을 기고하게 된다. 1924년부터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해 중편 ≪악마의 서사시≫와 ≪비운의 달걀≫을 완성하고 이후 ≪개의 심장≫, 소설 ≪백위군≫과 이것을 개작한 희곡 <백위군>, 곧 <투르빈가의 나날들>을 창작한다. 모스크바예술극장에서 초연된 희곡 <투르빈가의 나날들>은 단번에 불가코프를 극작가로서 이름을 떨치게 하고 오랫동안 레퍼토리의 부재로 고심하던 예술극장이 체호프 이후로 다시 부활하게 되는 전환기를 맞게 해 주었다. 심지어 스탈린이 이 연극을 15번이나 보았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하지만 1930년대 불가코프는 어떤 작품의 출간 및 상연도 모두 금지되는 신세에 놓인다. 불가코프는 ‘국내 망명 작가’로서 굶주림과 죽음을 눈앞에 둔 채 1930년 3월 28일 소비에트 정부를 수신인으로 하는 편지를 보낸다. 스탈린이 직접 불가코프에게 전화를 하고 통화 이후, 그에게는 굶주림을 면할 수 있는 일자리가 주어진다. 그러나 1932년 희곡 <투르빈가의 나날들>의 무대 상연 허가가 난 것을 제외하고 이후로 그의 다른 작품들은 단 한 편도 이후 소비에트 무대에서 상연되지 못했고 한 줄의 글도 출판되지 못했다.
계속되는 상연 금지 명령과 출판 금지 등은 불가코프가 오랜 시간 투병해 오던 고혈압 신장경화증의 병세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미 1939년 중반부터 의사는 불가코프의 상태가 희망이 없음을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가코프는 자신의 마지막 작품인 <거장과 마르가리타>에 대한 창작을 계속했고 작업은 그가 죽기 3주 전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1940년 3월 10일 미하일 아파나시예비치 불가코프는 세상을 떠났다. 그는 모스크바의 노보데비치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옮긴이
강수경은 부산대학교 노어노문학과에서 학사, 모스크바국립대학교 인문학부에서 러시아 문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부산대학교와 인제대학교에서 강의 중이다. 관심 분야는 러시아 인형극과 고전의 무대화 및 불가코프 작품 등으로, 주요 논문에는 <러시아 인형극의 형성과 발전>, <“젊은 의사의 수기”: 꿈의 모티브와 웃음의 기능적 의미에 관한 소고>, <M. 불가코프의 희곡에 나타나는 서사적 특성: ‘투르빈가의 나날들’을 중심으로> 등이 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나오는 사람들
제1막
제2막
제3막
제4막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1.
알렉세이: 조용히! 자,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제군들은 여전히 제군들 앞에 놓인 무엇을… 누구를… 지키려는 과업을 수행할 것인가…? 한마디로 말해, 난 여러분들의 전투를 지휘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광대놀음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광대놀음 때문에 자신의 피를 흘린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마를 닦는다.) 내 아들들이여, 내 말을 들어라! 나는 상비군 장교로서 독일군과의 모든 전쟁을 치렀다. 이에 대해서는 스투진스키 장군과 미실라옙스키 장군이 증인이다. 나의 양심과 책임감으로 모든 것을, 모든 것을 받아들이겠다…. 제군들에게 경고하건대, 제군들을 사랑하기에 집으로 돌려보낸다.
2.
막심: 대령님, 제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국가의 재산을 지키지 않고 어디로든 물러갈 곳은 없습니다요. 교실 두 개에 있는 책상을 부수었습니다. 제가 말로 표현하지도 못할 그런 손실을 행했습니다요. 그리고 불은…. 아니 이제 전 어떡합니까? 예? 이건 정말 순전한 약탈 행위입니다. 많은 군대가 왔다 갔습니다, 그러나 이런 군대는 정말, 죄송합니다만….
3.
라리오시크: 만약 여러분들이 원하신다면 한 말씀 하도록 하지요. 단지 양해를 구합니다. 미리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가장 어렵고 끔찍한 시기에 만났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참으로, 참으로 많은 것들을 겪었지요….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아시겠지만, 삶의 드라마를 이겨 냈습니다. 그리고 나의 든든치 못한 기선은 오랫동안 조국 전쟁의 파도를 따라 흔들거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