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김남천 단편집
정호웅이 해설한 ≪초판본 김남천 단편집≫
한반도에서 1942년이라는 시간
그로부터 3년 뒤에 일본은 패망하고 조선은 독립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영원의 시간이었다. 민족과 역사와 일상에 대한 모든 생각이 달라진다. 그것이 순간인지 영원인지, 별이 없다면 인간은 알지 못한다.
“잡지는 순조로히 잘 나오게 됩니까.”
“그저 어떻게 꾸여매듯 하여 간신히 종이를 변통해 대고 있지오. 종이만큼 원고도 귀합니다, 국어 원고에 비해서 조선말 원고가 얻기가 더 힘듭니다, 소설들을 통 안 쓰니까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해 보며, 신 형은 필시 소설 쓰기를 그만둔 나를 비대고 하는 말일 께라고 생각해 보며, 나는 그대로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덤덤히 앉었습니다.
“쓰는 분들은 대체로 어떤 것들을 주제로 삼고들 있는지.”
나는 오랫동안 잡지에 나는 동료들의 작품을 구경하지 못한 때문에 그러한 미안스러운 질문을 하였습니다.
“소극적인 인생 태도를 가지고 오든 분은 역시 애조나 실의(失意)나 소멸의 정조 같은 것을 그전처럼 취급하고 있지만 그것으로 어느 때까지 쓸 수 있을런지오, 또 시대적인 감각을 가졌다는 분들은 모두 시국 편승이라고 욕먹어 마땅할 천박한 테마로 일시를 호도하는 현상이지오. 가장 딱한 것은 내선일체의 이념을 작품화한다고 곧 내선 인간의 애정 문제나 결혼 문제를 취급하는 태돕니다. 이런 주제는 퍽 흔합니다, 되려 일상생활에서 출발하는 편이 자연스럽고 시국으로 보아도 좋을 것인데. 그러니까 아직 시대와 겨누어서 하나의 확고한 작품 세계를 발견했다고 볼 작가는 없는 셈이지오.”
“시일이 짜른 탓이겠지오.”
≪초판본 김남천 단편집≫, <등불>, 김남천 지음, 정호웅 엮음, 129~130쪽
이것이 우리 역사에서 언제 이야기인가?
일제강점기 끝 무렵이다. 전시 체제의 종이 배급제, 우리말의 위기 현상을 볼 수 있다. ≪문장≫에 관여하던 이태준이나 ≪인문평론≫의 최재서나 작품 속 ‘신 형’이나 모두 비슷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나’는 소설 쓰기를 그만둔 작가 자신인가?
<등불>은 화자와 작가의 이력이 거의 일치한다. 1942년 무렵의 작가 내면을 사실적으로 그린 것으로 보인다. 절필 뒤 일반 회사에 취직한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문학 활동에 대한 회고, 어쩔 수 없는 생활 때문에 붓을 놓은 데서 오는 고독감, 생활신조 등을 담담한 목소리로 고백한다. 지문에 나오는 “~습니다”는 내면 드러내기에 어울리는 문체다.
일제의 전시 체제에 경향파 문학가의 대응은 어떤 것이었나?
“새로운 환경과 운명 앞에 선 것을 깨달었을 때엔 거기에 대응할 만한 마음의 태세를 정비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한 일”이라고 인식한다. 화자는 ‘숙련의 아름다움’을 칭송하고 업무나 대인 관계에 서툰 자신을 부끄럽게 여긴다. 이념 실천의 적극성을 상실하고 소시민적 삶을 택한 자신을 한사코 합리화하려 애쓴다.
‘전향 작가’는 당시 어떤 모습이었나?
강인한 정신이 무너지고 소시민적 삶으로 완전히 돌아섰다. 체제 전복을 향하던 정신이 체제 안으로 굽히고 들어와 지배 질서를 따른다. 이는 당대 전향자들의 삶이자 전향소설의 기본적인 형식소다. 일제 말기에 전향소설이 많이 나왔다. 힘든 현실 때문에 사상운동, 문학운동에서 한발 빼는 문인들이 많았다. 대부분의 카프 문인들도 그러했다. 그들은 전향에서 오는 자조감을 토로하거나, 지조를 꺾은 자신을 변명하거나, 아니면 다른 전향자를 비난하는 소설을 썼다.
<녹성당(綠星堂)>에서 약장수로 전향한 소설가는 자신의 심경을 어떻게 고백하나?
전직 작가 성운은 고단한 현실 앞에 “지기는 싫고, 그러자니 물속에서 숨은 답답하고, 눈을 감은 채 숨을 꼭 트러막고 있던 어린 날의 작난, ― 그 질식할 뜻한 안타까움”을 생각한다.
점점 더 희박해지는 산소, 또는 자유와 자아에 대한 자각증인가?
<녹성당>은 ‘실어(失語)의 형식’을 지닌 작품이다. 사상의 믿음을 상실한 데 대한 자기 환멸과 더불어 터져 나오는 자조가 말을 앗아 가 버린 것이다. 작가는 질식할 듯한 잠수의 느낌으로써 그 이미지를 담아냈다.
전향을 ‘변절, 배신’이라고 볼 수 있는가?
김남천도 그 문제를 많이 고민했나 보다. 당시 그의 문학에는 ‘신의의 윤리’가 중요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대표작이 <신의에 대하여>다.
<신의에 대하여>는 믿음을 어떻게 이야기하는가?
우리 집에서 빚을 갖다 쓴 사람이 도망갔다가 슬그머니 돌아왔다. 이 사실을 부모님에게 알릴까 말까 고민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학생들은 나름 토론을 벌이나 어떤 게 옳은 행동인지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이 작품에서 신의에 대한 김남천 결론은 무엇인가?
채무자가 몇 년 뒤 빚의 절반 가까이를 갚았다는 얘기를 덧붙인다. ‘신의’ 지키기가 얼마나 소중한 덕목인가를 말하고자 한 것이다.
김남천 작품 속 전향자 중에 비판해 마땅한 자가 있다면?
<경영(經營)>에 나오는 오시형이다. 진보적 사상운동가였으나 감옥 안에서 무엇을 잘못 깨달았는지 침략주의를 따르는 것으로 나온다.
다원 사관을 선택해 대동아공영권 논리를 지지했다는 오시형을 말하나?
오시형은 한때 신봉했던 ‘세계 일원론’을 버리고 ‘다원 사관’을 택했다. “동양과 동양 세계를 다원 사관의 입장에서 새로히 반성하구 성립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대동아공영권 논리의 기초 이론이다.
이 작가의 작품 목록은 어떤가?
90여 편의 평론, 40여 편의 소설, 두 편의 희곡, 수많은 수필을 남겼다. 미완성 장편소설이 많다. 아직 잘 정리되지 않은 작품들도 있다.
김남천은 어떤 작가인가?
평남 성천 출생으로 일본 호세이 대학 재학 중이던 1929년 카프에 가입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 논쟁에서 ‘조선적 특수상황’을 강조했다. 일제 말기엔 전향의 길을 걸었다. 광복 직후 조선문학건설본부, 조선문학가동맹 등에 관여했다. 1947년 말 월북, 1953년에 숙청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신은 누구인가?
정호웅이다.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