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허준 소설선
이재복이 엮은 ≪초판본 허준 소설선≫
허준은 이북에 왜 갔을까?
서울에 내려온 그는 백철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여튼 난장판이에요. 더구나 문학다운 것은 할 생각도 말아야 해요!” 문학이 아니라면 그 많은 문학인들은 무엇을 위해 북으로 갔을까? 왜 돌아오지 않았을까?
회령에서는 정거장이 전체적으로 폭격을 받아서 어느 모양으로 어떤 건축이 서 있었던 것인가를 조금도 분간하여 알지 못하리만큼 완전히 부서져 있었지마는, 청진은 하 커서 그랬던지 어떠한 규모로 어떻게 서 있었던 정거장인가의 상상을 허락할 만한 형적은 남아 있었다.
시가지에서 정거장에 이르는 광장 전면에 와 서서 보면 걷어치우다 남은 무대의 오오도구(大道具)처럼 한 면(面)만 남은 정거장 본건물의 정면만이라도 남아 있었다.
건물의 입체적 내용을 잃어버리고 완전한 평면 속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이 간판적인 의미밖에 없는 형해(形骸)만도 미미하나마 사람 마음에 일종의 질서감을 깨뜨려 주기에는 어느 정도의 효과가 없지 아니한 듯도 하였다.
정거장 정면 좌우에는 회령 이래 낯익히 보아 온 새끼줄 대신에 콘크리트 말뚝을 연결하여 나아간 철조망까지 있었다. 더러는 썩어서 끊어지기도 하고 더러는 끊기인 것 같기도 한 그 중간 중간 철선 사이로 무시로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는 데에는 여기도 다름이 없었으나, 그 저편 폼 구내에 예전 같으면 도록고 창고로밖에 안 쓰였을 납작한 판장으로 만든 집 안팎으로 소련병과 역원들과 또 드물게는 피난민들의 몇 사람조차 섞이어서 무엇인가 지껄이며 어깨를 치며 드나드는 것을 보는 것도 한갓 여유감을 주는 풍경이 아닐 수도 없었다.
<잔등>, ≪초판본 허준 소설선≫, 허준 지음, 이재복 엮음, 55~56쪽
이것이 어느 때의 정경인가?
1945년 가을이다. 그해 8월 7일부터 15일까지 소련군은 만주와 한반도 북부 지역에서 일본군을 공격했다. 역사에서는 간단히 취급되지만 폭격기까지 동원된 큰 공세였나 보다.
주인공은 뭘 보고 있나?
만주에서 함경북도 쪽으로 귀환 길이다. 교통 체계도 어지러워 험난한 여정이다. 전쟁 흔적과 곳곳에 돌아다니는 소련군 모습도 보인다.
<잔등>의 스토리 라인은?
화가 천복은 동행 방 씨와 장춘에서 회령까지 스무하루를 여행한다. 목적지는 서울이다. 전쟁 직후가 묘사된다. 주목할 만한 인물 두 명이 등장한다. 하나는 뱀장어 잡이 소년이다. 천복은 그로부터 고국의 순수성을 찾으려 하지만 알고 보니 잔류 일본인을 색출하는 감시꾼 노릇도 함께하고 있었다. 또 하나는 청진의 국밥집 할머니다. 할머니 아들은 일제 탄압으로 죽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해방과 더불어 패잔병 꼴이 된 일본인들을 동정한다.
천복은 소년에게 무엇을 받는가?
배반감을 느낀다. 작가 의식은 잔류 일본인을 잡아다 그저 아오지로 보내는 방식에 이의를 제기한다. 일본인 처리 문제가 단순히 감정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 성질의 것임을 암시한다.
국밥집 할머니는 어떤가?
흔히 ‘타자(他者)’는 불안과 공포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잔등>에서는 일본인이란 존재가 그렇다. 할머니로서는 일본인에게 원한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타자인 일본을 한풀이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고 진정한 타자로 받아들인다.
한국 문학에서 ‘진정한 타자’란 어떤 존재인가?
이 문제는 우리 근현대 작가들의 의식을 오랫동안 지배해 온 사안이다. 타자의 존재를 할머니처럼 인식하는 태도는 냉소라든가 초월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허준은 타자의 존재를 자신의 안으로 끌어들여 역사와 시대정신이라는 보다 큰 차원에서 바라보고자 했다.
작가는 이때 어디에 있었나?
해방 직전, 허준은 장춘에 있었다. 일본 유학 시절부터 방랑 기질이 있었는데 이때도 방랑벽을 이기지 못해 만주로 갔다고 한다. 장춘 ≪만선일보≫ 주위에는 편집장 염상섭을 중심으로 일군의 조선 문인들이 모여 있었다.
이 책에 어떤 작품이 더 있는가?
중편 <잔등>, <야한기>를 비롯해 단편 <탁류>, <습작실에서>와 콩트 <한식일기>를 실었다.
<야한기>는 어떤 소설인가?
남우언은 어릴 적부터 ‘사람은 저 혼자 살아가기 마련’이라는 유폐된 자아 구조를 지녔다. 그는 여관 주인의 딸 춘자와 결혼했는데 부부 사이는 별로 안 좋다. 춘자는 민보걸과 불륜 관계다. 보걸의 형 민흥걸은 불륜을 미끼 삼아 돈을 갈취하고자 우언을 이용하려 한다. 그러나 우언이 음모에 동조하지 않자 그에게 누명을 씌우려고까지 한다. 우언은 흥걸이 누명 계획을 꾸몄다는 사실을 알지만 대응하려 들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아내의 불륜에도 침묵한다. 우언은 삶의 적극성을 상실하고 가치 부재 상태에 빠졌다.
만연체 문장이 난해하고 줄거리 파악도 쉽지 않다. 왜 이렇게 썼는가?
심리주의 기법과 다중시점을 쓴 작품이다. 이야기 전개가 매끄럽지 않은데, 허준은 ‘창작 노트를 분실하는 바람에 작품이 부실해졌다’고 말했다.
남우언처럼 삶의 의미를 잃은 캐릭터는 또 어떤 소설에서 만날 수 있는가?
1930년대 모더니즘 소설에서 등장하는 지식인 캐릭터들의 공통점이다. 허준은 단편 <탁류>에서도 ‘삶에 대한 의의를 지니지 못하고 허무에 빠져 있는 인물’을 그렸다. 한편 이상은 <공포의 기록>에서 이런 인물들을 ‘환신(宦臣)’으로 표현했다.
허준은 해방 공간에서 어떻게 움직였는가?
좌익 단체인 ‘경성조소문화협회’에 가입했는데 적극 활동하진 않은 것 같다. 해방 직후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호구지책에 시달렸던 듯하다. 신변잡기 콩트, 수필을 많이 발표했다. <한식일기>가 그 전형이다.
<한식일기>에서는 어떤 인생이 그려지나?
5700원의 채무를 진 주인공 지식인은 일거리를 찾아 신문사로 출판사로 돌아다닌다. 마침 한식이라 38선 이북에 계신 어머니 생각도 난다. 어떤 책을 박 씨와 함께 번역해 출판사에 갖다 줬는데 출판사 측은 ‘왜 공역(共譯)을 하셨어요’ 하며 꺼리는 눈치다. 박 씨의 친일 행위 전력이 문제다. 주인공은 “언제까지나 이렇게 어물거려야 하는 것이람”이라고 되뇌며 토닥토닥 아스팔트길을 걷는다.
허준은 누구인가?
1910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났다. 1922년 서울로 이사했고 1928년 중앙고보 졸업과 동시에 도쿄로 유학을 떠나 호세이대학 문과에 입학한다. 1934년 귀국해 ≪조선일보≫ 10월 7일자에 <초> 등의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한다. 1936년 2월엔 ≪조광≫에 단편소설 <탁류>를 발표했다. 조선일보사에서 3년가량 근무하기도 했다. 1941년부터 해방 무렵까지 만주에 있었고, 해방 정국 때는 ≪민성≫, ≪대조≫ 등에 여러 작품을 발표했다. 1946년, 첫 소설집 ≪잔등≫을 을유문화사에서 출간했다. 1948년 8월, 해주에서 열린 ‘남조선인민대표자회의’에 참가한 뒤 월북했다.
북한에 왜 갔을까?
허준은 한국전쟁 때 인민군을 따라 서울에 왔다가 백철의 집에서 하룻밤 묵었다. 그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백 형에게니 말이지 하여튼 난장판이에요. 더구나 문학다운 것은 할 생각도 말아야 해요!”
당신은 누구인가?
이재복이다. 한양대학교 한국언어문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