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읽기
서혜정이 읽은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읽기> 100권
오디오북은 자유의 책이다
눈이 자유다. 손이 자유다. 빛으로부터 자유고 장소로부터 자유다. 길에서, 차에서, 식당에서, 욕실에서 그리고 침대에서 잠들기 직전에 당신의 상상력은 자유다.
당신은 누구인가?
성우 서혜정이다.
<X-파일> 여자 주인공 스컬리의 목소리인가?
그렇다. 1982년에 성우 생활을 시작해 30년 넘게 현역이다.
어쩌다 이 작업을 맡게 되었나?
나는 오디오맨이다. 평생 성우라는 일을 즐기고 있다. 카세트테이프 시절부터 오디오북에 관심이 많았다. 나이가 드니까 이제는 애니메이션도 힘들고 더빙도 힘들다. 그래서 편안하게 내 호흡대로 작업할 수 있는 오디오북이 점점 더 좋아진다. 혼자 편안하게 작업실에서 일한다. 녹음하고 편집하고 목소리의 톤이나 포즈를 스스로 점검하다 보니 내 실력도 점점 더 높아지는 느낌이다.
오디오북은 무엇이 좋은가?
무한 상상이 가능하다. 음악, 음향효과, 목소리로 사람의 상상력을 무한히 넓혀준다.
오디오북이 영화보다 낫다는 말인가?
상상력이라는 면에서 보면 비디오는 오디오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똑같은 오디오북을 들어도 듣는 사람마다 상상하는 바가 다 다르다. 들으면서 자기 마음대로 영상을 만드는 거다.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읽기>는 어떤 오디오북인가?
이야기 자체가 굉장히 재미있다. 읽다 보니 <<천일야화>>가 생각났다.
당신 생각에 <<천일야화>>가 나타난 이유는 뭘까?
우리나라에서 전해 내려오는 옛이야기, 설화 중에 처음 접하는 이야기가 많아 깜짝 놀랐다. 이야기의 다양성, 친근감이 <<천일야화>>의 이미지를 불러들인 것이 아닐까?
어느 이야기가 그렇게 재미났는가?
< B사감과 러브레터>, <감자>, <배따라기>, <동백꽃>이 생각난다. <동백꽃>은 얼마나 재미있는지 표현이 힘들다.
단편소설 팬인가?
개인적으로 단편소설에 특히 애정이 깊다. 시리즈 가운데 단편소설을 읽으면서 특히 더 깊은 재미를 느꼈다.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읽기> 오디오북은 어떻게 만드는가?
간단치 않은 작업인데 과정을 설명하면 이렇다.
1. 전체를 읽어 녹음한다.
2. 녹음 파일을 들으면서 내용을 확인하고 편집한다.
3. 편집 파일을 음향 편집자에게 보낸다.
4. 음향 편집자가 효과음, 포즈를 보태고 전체 길이를 조정한다. 톤도 이때 조정된다.
5. 음향 편집된 파일을 다시 받아서 최종 검토한다. 오독이 발견되면 수정 녹음한다.
6. 음향 편집자에게 보낸다. 수정 내용을 편집해 출판사에 보낸다.
7. 출판사에서 최종 검수한다. 오독이 발견되면 위의 과정 가운데 5번 과정과 6번 과정을 되풀이한다.
8. 출판사에 보낸다. 최종 확인 후 완성한다.
당신이 결정한 이 책의 낭독 지침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작업한 것 중 제일 힘든 작업이다. 이 책은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듣는다. 모든 글자 하나하나 다 발음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이 책에 대한 당신의 작업 마인드는 어떤 것인가?
내가 한국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읽는다. 문학작품을 낭독할 때는 저도 모르게 스토리 속으로 빠지곤 한다. 이 책은 이렇게 녹음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감정을 조절하는 것도 쉽지 않다. 책의 내용 속으로 들어갔다 다시 또 나오고 다시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하게 된댜.
나쁜 오디오북을 고르는 기준은 뭔가?
무조건 좋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읽어 주는 건 절대로 좋은 오디오북이 아니다. 스토리 중심의 오디오북은 스토리 속으로 쭉 들어가 그 속에서 여행해야 한다. 그래야 듣는 사람도 이야기 속을 여행할 수 있다. 그냥 또박또박 읽어서는 그런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오디오북 낭독의 특별한 노하우가 있는가?
디테일이다. 항상 듣는 사람을 생각하고 읽어야 한다. 성우들은 기본적으로 정확한 한국어 읽기 기술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책의 내용, 맥락, 성격, 대상 독자를 이해하고 자신의 목소리로 풀어낼 줄 모르면 오디오북은 실패다.
당신의 목소리는 몇 개인가?
‘몇 가지 목소리’라는 건 없다. 20대 여자여도 내성적인 성격이 있고 외향적인 성격이 있다. 거친 아이가 있고 조용한 성향의 아이가 있다. 캐릭터의 성격에 맞게 목소리 디테일을 설정한다. 그래서 성우를 ‘천의 목소리’라고 하는 것일 텐데 천 개 가지고 되겠나?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읽기>에서도 천의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나?
아마 그럴 거다. 호랑이나 용이 나오는 옛날이야기를 읽다가 목이 다 쉬었다.
이 오디오북은 누구를 위한 책인가?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일차 독자이겠지만 우리나라 단편소설이나 옛이야기는 어르신들이 들으면 너무 좋겠다.
당신이 꿈꾸는 오디오북은 무엇인가?
3 시간짜리 오디오북이다. 한 편의 영화를 본 것 같은 오디오북을 만들고 싶다. 3D, 4D 영화 못지않은 효과를 낼 수 있어서 오디오북 하나만으로 확실하게 듣는 재미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오디오북만을 위한 작가가 따로 있어야겠다. 작곡도 필요하고, 음향 효과, 예민한 믹스를 할 수 있는 전문 엔지니어가 있어야 되고. 그런 날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