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섬
전남윤이 옮긴 쑤웨이전(蘇偉貞)의 ≪침묵의 섬(沈默之島)≫
나는 내가 아프다
아닌 척하지만 나는 나를 모른다. 여기 섰을 때 저곳에 있고 눈을 감으면 비로소 바라본다. 기쁠 때 언제나 울고 있고 달릴 때면 멈춰 선다. 상처였고 흉터이고 그래서 성장한다.
‘또 다른 천몐’이라는 존재는, 그녀가 대학 졸업 후 출국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수감 중인 어머니를 보러 갔을 때 탄생했다. 어떤 이는 누군가를 쉽게 훔쳐보기 위한 방편으로 자신이 또 다른 공간에 있는 상상을 한다지만, 그녀는 달랐다. 그녀에게 진실하지 않은 것은 필요치 않았다. 자신의 운명을 제 눈으로 보아야겠다는 생각과 뭔가 다른 인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자 그녀는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 냈다. 그녀와 상반된 경험을 가진 또 다른 훠천몐(藿晨勉)이라는 존재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녀는 ‘또 다른 천몐’에게 “넌 이런 삶을 원해?” 하고 물은 적이 있다. ‘또 다른 천몐’은 침묵했다. 이에 그녀는 말했다. “적어도 너에게 이런 인생을 원했는지 물어봐 준 사람 정도는 있었다는 걸 명심해.” 그녀와 ‘또 다른 천몐’과 처음으로 대화를 나누었지만 놀랍게도 조금의 장애도 없었다. 그때부터 운명은 그들 두 사람의 몫이 되었다.
≪침묵의 섬≫, 쑤웨이전 지음, 전남윤 옮김, 7~8쪽
지금 천몐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소설 속 주인공이 자신의 인생을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보고 현실의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 내는 장면이다. 이렇게 탄생한 제2의 자아는 원래의 자아와 함께 소설을 이끌어 가는 또 다른 주인공이 된다.
또 다른 천몐은 누구인가?
천몐이 스스로 상상해 만든 분신이다. 그의 욕망을 투영했다. 자신의 이상을 부여한 것이다. ‘또 다른 천몐’은 따뜻한 가정에서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다. 슬픔이나 상처 따위는 모른다.
천몐의 부모는 누구인가?
아버지는 외국인의 피가 흐르는, 방랑벽이 심하고 성적으로 자유로웠던 인물이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집착하고, 살해한다. 옥중에서 자살한다.
천몐·천안 자매는 어떻게 성장하는가?
부모가 죽은 뒤 자매는 외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학비를 벌기 위해 일터에 나간다.
두 천몐은 완전히 다른가?
‘천몐의 분신’뿐만 아니라 천몐의 주변인물도 이름은 같지만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 가령 동생인 천안이 여자에서 남자로 바뀐다거나 주변인물들이 이름은 그대로이지만 성격이나 상황이 각기 다르게 설정된다.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1장은 실주인공 ‘천몐’의 이야기, 2장은 또 다른 천몐의 이야기, 이런 식으로 교차 서술된다.
왜 이런 모험을 하는가?
특이한 교차 서술 방식이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 작품에 색깔을 입히고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려는 시도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인가?
이야기의 전개 방식은 다소 다르지만 실제 자아와 대비되는 내면의 또 다른 자아를 그려 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여기서 핵심은 무의식인데 이 작품도 그런가?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봉인된 욕망의 발현체가 약물이라는 매개를 통해 실제 자아의 몸 밖으로 드러나는 일종의 괴기소설이다. 프로이트보다 앞선 ‘무의식’의 설정이었다. ≪침묵의 섬≫은 두 영혼이 고통을 공유하고 그 속에서 스스로를 치유해 나간다. 이것이 차이다.
천몐과 또 다른 천몐은 어떻게 되는가?
처음에 또렷했던 두 사람의 경계는 점점 더 흐려진다. 결국 하나의 영혼이 된다.
둘 중 하나의 사망인가?
천몐은 또 다른 천몐의 도움 없이도 이 세상에 홀로 설 수 있게 된다. 자아의 성취다.
두 천몐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열쇠는 뭔가?
원초적 욕망, ‘성(性)’이다. 쑤웨이전은 작품 속에서 노골적인 듯하면서 은근한 방법으로 ‘성’을 통해 자아를 찾아가는 주인공들을 그렸다.
성에 대한 집착인가?
다소 기괴하고 생경할 수 있으나 인간의 기본 욕구인 ‘성’을 통해 자아를 성찰한다. 가장 근원적이고 직접적인 해결 방식이 아닐까 싶다.
쑤웨이전은 어떻게 글을 쓰는가?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신문 칼럼 편집자를 9년이나 했지만 문자에 대해 모호한 개념만 갖고 있다.’ 글을 쓰던 당시의 정감이나 분위기가 변형되는 게 싫어 퇴고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에게 퇴고란 뭔가?
일종의 ‘상흔’과 같다고 말했다. 퇴고를 줄일 수 있는 단편을 선호한다. 그러나 그녀의 언어는 독특하면서도 감각적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언어의 천재 작가’란 말을 듣는다.
그녀의 작품 세계는 무엇인가?
1979년 등단하여 초기에는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룬 작품을 주로 썼으나, 차츰 광범위한 제재를 망라하면서 현대사회의 축소판을 그려 보였다. 인간 심리 묘사에도 탁월하여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열의 소멸(熱的絕滅)≫, ≪퉁팡을 떠나며(離開同方)≫, ≪옛사랑(舊愛)≫ 등이 있다. 여러 장르에 걸쳐 많은 상을 받았다. ≪침묵의 섬≫은 1994년 제1회 시보문학백만소설상(時報文學百萬小說獎) 심사위원추천상을 받았으며, 1999년 홍콩 ≪아주주간(亞洲週刊)≫이 고른 ‘20세기 중문 소설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 아닌가?
한국에 처음 소개한다. 타이완의 청장년을 대표하는 작가인데 좀 늦었다. 감각적이고 효율적인 원작 문장을 최대한 살리려 했으나 한국어와 중국어라는 두 언어의 태생적 차이 때문에 부득이하게 의역·윤문을 한 대목도 있다.
당신의 번역물을 보면 그녀는 뭐라고 할 것 같은가?
퇴고조차 작품을 변질시키는 것이라 하여 최소화하려는 작가다. 역자로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하기 힘들다.
당신은 누구인가?
전남윤이다. 부산대 현대중국문화연구실 소속으로 세계 각지의 화인(華人) 집단을 연구하고 작품을 번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