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즈워스 시선
4월의 신간. 풀의 광채, 꽃의 영광
윤준이 옮긴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의 ≪워즈워스 시선(Selected Poems of William Wordsworth)≫
남은 것의 힘
의심과 분쟁과 혼란과 두려움 가득한 말의 세상. 그러나 비탄에 잠기지 않고 오히려 남은 것에서 힘을 얻는 인간. 자연은 우리를 죽음의 너머로 안내한다.
한때 그토록 빛나던 광채가
지금 내 시야에서 영원히 사라진들 어떠리,
풀의 광채, 꽃의 영광의 시간을
되찾을 길 없다 한들 어떠리.
우리는 비탄에 잠기지 않고
오히려 남아 있는 것에서 힘을 얻으리라,
지금까지 있어 왔고 또 늘 있을 게 틀림없는
원초적 공감에서,
인간의 고통에서 솟아나는
위안이 되는 상념들에서,
죽음을 꿰뚫어 보는 신앙에서,
사색적인 마음을 가져다주는 세월에서.
≪워즈워스 시선≫, 윌리엄 워즈워스 지음, 윤준 옮김, 115쪽
이 시가 그 유명한 <초원의 빛>인가?
아니다. 틀렸다. 이 시는 장시 <송가>의 일부다. 나중에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부제를 덧붙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1년 워렌 비티와 나탈리 우드가 주연한 영화 <초원의 빛> 때문에 잘못된 제목으로 알려졌다.
부제가 뭔가?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얻은 불멸성의 암시’다.
어린 시절에서 불멸을 볼 수 있는가?
불가능하다. 어린 시절, 풀의 광채, 꽃의 영광, 모두 지상에서 사라진다. 돌이킬 수 없다.
불멸한 것은 무엇인가?
인간의 영혼이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나?
기억의 동기와 충동을 제공하는 자연을 통해, 또 ‘자연에 대한 경애’를 간직하고 있는 어린 시절에 대한 회상을 통해서다.
영광이 사라지면 무엇이 남는가?
‘원초적 공감’, ‘인간의 고통에서 솟아나는/ 위안이 되는 상념들’, ‘죽음을 꿰뚫어 보는 신앙’, ‘사색적인 마음’이 남는다.
원초적 공감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영혼을 자연과 맺는 끈이다.
맺어진 인간은 무엇이 되는가?
고통을 통해 자신의 과거와 미래로, 다른 인간들에게로, 궁극적으로는 자연과 인간 너머 신에게로 향한다.
왜 신인가?
‘영광’과 ‘평범한 날의 빛’ 밑바탕에는 ‘우리의 본향인 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세월이 가져온 ‘사색적인 마음’이 우리를 그곳에 안내한다. 사색을 통해 인간은 원초적 공감의 형이상학적 의의를 파악하고 ‘죽음을 꿰뚫어 보는 신앙’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이 시인에게 자연은 무엇인가?
고통과 죽음을 인식하게 하는 매개이고 그 너머에 있는 불멸의 신을 깨닫는 동기다.
윌리엄 워즈워스는 누구인가?
영국 시인이다. 1770년에 태어나 1843년에 계관시인에 올랐고 1850년 사망했다.
어떤 시를 썼는가?
1798년 새뮤얼 콜리지와 합작 시집 ≪서정담시집(Lyrical Ballads)≫를 출간했다. 영국 낭만주의의 시작이다.
둘의 낭만주의는 무엇을 했는가?
당대의 지배적 문예 사조였던 신고전주의를 거부하고 개인의 주관적인 내면과 자연의 존재에 주목했다.
신고전주의가 개인의 내면을 무시했기 때문인가?
그들은 세계의 보편 질서에만 집중했다. 창조적인 상상력보다 정형화된 시어법에 집착했다.
워즈워스의 시어는 어떤 것인가?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언어”를 골랐다.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평범한 언어로 썼다.
낭만주의는 무엇의 결과물인가?
정치적으로는 프랑스 혁명, 경제적으로는 산업 혁명이 격동의 시대를 연다. 고정관념이 붕괴하고 가치관이 변하면서 문학이나 예술에도 ‘혁명’이 일어난다.
워즈워스의 낭만주의는 무엇을 했나?
“의심과 분쟁과 혼란과 두려움 가득한/ 철의 시대”에 우리 인간들을 “꽃 만발한 서늘한 대지의 무릎에/ 눕혔고,” 그럼으로써 “오랫동안 죽어 있던 정신에,/ 바싹 말라 있고 꼭 접혀 있던 [우리의] 정신에/ 초창기 세계의 신선함이 쏟아지게 만들었다”.
누구의 말인가?
19세기 후반 빅토리아 시대 시인이자 비평가인 매슈 아널드가 워즈워스를 애도한 <추도시(Memorial Verses)>의 일부다.
그가 발견한 초창기 세계의 신선함이란 무엇인가?
자연이다. 종래의 기계론적 세계관에서 자연은 단순한 중립적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워즈워스는 비범한 감수성으로 이를 생명을 지닌 유기체로 파악했다. 이런 자연관은 과학적 결정론과 종교적 회의에 시달리던 사람들의 정신을 치유했다.
치유의 증인이 있는가?
존 스튜어트 밀은 워즈워스의 시를 통해 20대 초반에 맞닥뜨린 정신적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의 증언은 무엇이었나?
≪자서전≫(1873)에서 이렇게 회고한다.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내면의 기쁨과 공감적·상상적 쾌감의 원천”이 되어 주는 워즈워스의 시는 “인간의 공통 감정과 공동 운명을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관심을 갖게 하면서” 평정 상태의 관조에는 참된 영원한 행복이 있다는 귀중한 가르침을 전해 준다.
당신은 누군가?
윤준이다. 배재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