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웅 시선 초판본
4월의 신간. 이 땅에서 진짜가 되려면
고인환이 엮은 ≪초판본 이광웅 시선≫
시인 이광웅
시를 읽었다는 이유로 고문이 시작되고 6년의 징역. 철창을 통해서 흘러든 햇빛을 얼어 곱은 두 손에 받아 든다. 맛있는 국밥 한 그릇, 앞에 있다.
목숨을 걸고
이 땅에서
진짜 술꾼이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술을 마셔야 한다.
이 땅에서
참된 연애를 하려거든
목숨을 걸고 연애를 해야 한다.
이 땅에서
좋은 선생이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교단에 서야 한다.
뭐든지
진짜가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목숨을 걸고…
≪초판본 이광웅 시선≫, 고인환 엮음, 60쪽
이 비장한 시인은 누구인가?
이광웅이다. 1940년에 태어나 1992년 세상을 떴다.
교사였는가?
그렇다. “백만장자 데릴사위 자리 준다 해도”, “고관대작 자리 준다 해도” 싫고 “내가 바라는 자리/ 오직 그리운 교단뿐”이라고 했다. 교직을 사랑하고 아이들을 사랑했다.
교사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1982년 동료 교사들과 함께 구속되었다.
구속 사유가 뭔가?
오장환의 시집을 읽었다.
오장환의 시를 읽는 것이 죄가 되나?
오장환은 월북 시인이다. ‘교사 간첩단’으로 7년 형을 받았다. 바로 ‘오송회 사건’이다.
증거가 있었나?
20여 일간의 모진 고문으로 만들어진 거짓 자백이 증거였다.
이때의 기억은 이광웅에게 무엇으로 남았는가?
“그때 그 순간 악마가 와서/ 심장이 든 내 가슴을 악마가 와서 난도질을 했다. 그러나/ 매와 고문과 그 견딜 수 없는 치욕에도/ 나는 살았다.” <그때 그 순간 악마가…>의 한 구절이다.
진실은 제자리를 찾았는가?
2008년 무죄가 선고되었다. 그가 이미 고문과 투옥 후유증으로 세상을 뜬 후였다.
그는 어떤 시인이었나?
토속적이고 순박한 언어로 민족적 삶의 애환과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되살려 냈다.
토속과 순박의 언어가 어떤 것인가?
<대밭>의 첫 연을 보자.
“대밭에 살가지 쪽제비 시글시글 댓가치를 분질러 놓으며 댓잎사귀 짓이겨 놓으며 바스락 소리 밤새 끊어지지 않는 밤이 깊었다. 새암 두덕에 두룸박 소리 긁히고 부딪히고 쌀 씻는 소리랑 큰동세 작은동세 주고받는 목소리 뒤세뒤세할 때까지 한쪽 귀퉁이 이불귀를 끌어 잡아댕겨 가며 대밭은 떠내밀며 잠을 설쳤다.”
‘대밭’에 얽힌 유년 시절의 추억이 ‘시냇물 흐르듯이’ ‘뒤세뒤세’한 어조로 되살아난다.
오송회 사건의 흔적은 무엇인가?
‘인생의 의미’를 곱씹어 보게 하는 ‘새나라’의 ‘상아탑’이자 그리운 시의 텃밭이었던 ‘대밭’의 소리가 ‘퇴락한 고가나/ 천연색의 아름다운/ 강과 들에 펼쳐지는/ 지저분한 간음의/ 꿈’으로 변주된다. 유년의 상실이자 꿈의 훼손이다.
훼손된 꿈에 대한 보상의 방법은 무엇인가?
보상을 구하지 않았다. 과거의 기억은 ‘밤 가운데 사라진 별똥별’일 뿐이다. 시인은 자신의 삶을 통해 우리 역사의 현장을 정화하고자 한다.
역사 현장의 정화는 어떻게 실천했는가?
소외된 서민들의 삶에 관심을 갖는다. 현실의 모순에 대한 분노와 ‘살 부비며 모여 사는’ 삶에 대한 동경이 공명(共鳴)하며 ‘달동네 꽃동네’의 너울로 출렁인다.
그가 평생 ‘목숨을 걸고’ 추구한 ‘진짜’ 언어는 어떤 것인가?
‘철창을 통해서 흘러든 햇빛’을 ‘얼어 곱은 두 손에 받아 든’ ‘맛있는 국밥’의 언어다.
그에게 시란 무엇인가?
‘결코/ 말도/ 말의 예술도/ 아니다’. ‘역사의 토양에 깊이 뿌리 내리고/ 미래의 하늘에 주렁주렁 열매 맺는’ ‘숨결/ 맥박/ 따순 손길/ 말없는 바라봄/ 뜨건 뺨부빔’ 그 자체다.
당신은 왜 이광웅의 시를 엮었는가?
마음이 무겁다. ‘투사’의 삶에 가려진 그의 시의 속살을 이제야 눈여겨보게 되었다는 때늦은 후회 때문이다. ‘목숨을 걸고’ ‘진짜’로 살아가려 한 ‘시인’의 순정한 마음이 ‘지금 여기’의 경박한 현실을 되짚어 보게 한다.
당신은 누군가?
고인환이다.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부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