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전 천줄읽기
5월의 신간. 불교의 천재들
변귀남이 뽑아 옮긴 석혜교(釋慧皎)의 <<고승전(高僧傳) 천줄읽기>>
무엇을 보았길래?
석도안이 반야바라밀경을 강의했다. 석혜원이 듣고 말한다. 불도의 밝은 빛 아래서 유교와 도교는 겨와 쭉정이에 불과하다. 그는 무엇을 보았을까?
안세고는 만물의 이치와 품성을 남김없이 알았고, 스스로의 숙연(宿緣)도 알고 있었으며, 신비한 행적이 많아 세상 사람들이 능히 그를 헤아릴 수 없었다.
≪고승전 천줄읽기≫, 석혜교 지음, 변귀남 옮김, 29쪽.
안세고가 누구인가?
안식국(安息國) 태자로 태어난 안청(安淸)이다. 부왕의 죽음을 계기로 인생무상을 깨닫고 왕위를 숙부에게 양보한 뒤에 출가했다. 148년부터 169년까지 20여 년간 불경과 논서 39부를 번역했다.
신비한 행적이란 무엇인가?
공정호의 신령이 된 전생의 동료를 제도한 이야기가 있다.
어떻게 제도하였는가?
강남 지방을 여행하다가 공정호를 지나게 되었다. 사당에서 복을 빌었다. 그때 신이 그를 불렀다. 가 보니 그것은 전생에 안청과 함께 수행하던 동료였다. 죽은 뒤 지옥에 떨어질까 두려워 제도를 부탁한 것이다.
석혜교는 왜 이런 기록을 모았는가?
당시의 여러 승전(僧傳) 내용이 사실과 다르거나 누락이 많은 점에 불만을 가졌다. 서로 다른 여러 기록을 있는 그대로 갖추어 두면 나중에 정확한 사실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얼마나 많은 기록을 수록했나?
중국 불교 형성기인 67년부터 519년까지 453년 동안 활약한 고승 257인의 전기를 실었다. 부록으로 덧붙여 실은 승려도 200여 명이다.
당신이 발췌한 인물은 누구인가?
안세고를 비롯해 강승회(康僧會), 구마라습(鳩摩羅什), 석도안(釋道安), 석혜원(釋慧遠), 불도징(佛圖澄)이다. 이들을 빼고 중국 불교 성립기를 서술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강승회는 어떤 인물인가?
서역 강거국(康居國) 출신 승려다. ≪육도집경(六度集經)≫, ≪오품(吳品)≫ 등 많은 경전을 번역해 초기 역경(譯經) 시대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 247년 건업(建業)에 도착해 오왕 손권을 감복시켜 강남 지방에 불법을 일으켰다.
손권이 무엇에 감복했는가?
손권이 사리를 보아야 불교를 믿겠다고 하자, 21일 동안 기도해 사리병에 사리가 나타나게 했다. 손권이 쇠망치로 사리를 치게 했는데 쇠망치는 움푹 파였으나 사리는 멀쩡했다.
구마라습은 누구인가?
서역 출신으로, 중국 불교 초기 최고의 승려다.
최고의 모습이란 어떤 것인가?
그가 모태에 들자 어머니는 신령스러운 깨달음을 얻어 이해력이 평소보다 배로 늘었다. 저절로 천축어에 익숙해졌으며 어려운 경전의 이치에 대한 질문에도 반드시 궁극적인 내용까지 다 대답했다. 구마라습을 낳은 후 그녀는 예전의 천축어를 잊어버렸다.
그의 능력은 어느정도였나?
열 살 때 이미 소승불교 학승으로 대단한 명성을 누렸다. 열두 살 때는 어머니가 그를 데리고 사륵국(沙勒國)으로 가자 국왕이 그에게 법좌를 마련해 주어 법사가 되었다. 그곳에서 대승불교의 종지를 배워 대승과 소승의 진리에 두루 능통하게 되었다. 10대의 나이에 대승불교와 소승불교를 전파하며 커다란 명성을 떨쳤다.
그가 번역한 불경은 어떤 것인가?
≪ 법화경(法華經)≫, ≪유마경(維摩經)≫, ≪금강경(金剛經)≫, ≪아미타경(阿彌陀經)≫과 같이 오늘날 잘 알려진 불교 경전은 대부분 구마라습과 제자들이 번역했다. 대승불교와 소승불교에 두루 능통한 그의 번역 지휘로 중국 불교는 최초로 황금기를 맞이했다. 현장법사 이전 중국 불경 번역의 일인자다.
석도안은 누구인가?
동진 시대 중국 불교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큰 학승이다. 태항산과 양양(襄陽) 일대에서 불교를 전파하는 한편, 뛰어난 제자 수백 명을 길러 중국 불교가 새로운 국면으로 발전하게 했다.
그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무엇인가?
광범위하게 자료를 수집하고 구분해 ≪종리중경목록(綜理衆經目錄)≫을 편찬한 일이다.
≪종리중경목록(綜理衆經目錄)≫이 그렇게 중요한 책인가?
불교 전파 초기의 혼란한 상황에서, 학자들은 전래된 경전의 저자나 연대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의 노력으로 안개 속에 가려졌던 중국 불교 전파의 초기 상황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석혜원은 누구인가?
석도안의 제자다. 스승과 함께 중국 불교의 초석을 마련한 학승이다. 출가 전에는 유교와 도교 경전에 해박한 지식을 갖춘 학자였다. 유교, 도교와 비교하며 불교의 진리를 쉽게 설명했다. 정토종의 개조로 보기도 한다.
유가와 도가를 연구한 사람이 어떻게 출가를 결심했나?
석도안의 ≪반야바라밀경(般若波羅蜜經)≫ 강의를 들었다. 유가와 도가는 겨와 쭉정이에 불과하다고 탄복하고 머리를 깎았다.
불도징은 어떤 일을 했나?
서역의 유명한 고승이었다. 후조(後趙)를 세운 석륵이 두각을 드러내자 석륵의 부하 곽흑략을 우선 교화하고, 이어서 그의 소개로 석륵의 왕사가 되었다. 세운 절이 893곳, 석도안을 비롯해 받아들인 제자가 1만여 명이다.
불도징이란 이름이 낯선 이유는 뭔가?
석도안처럼 뛰어난 제자들이 주로 남방에서 활약한 반면 그는 북방에서 활동해 그의 설법이나 종교적 주장은 거의 소개되지 못했다. 그러나 당시 북방 불교의 발전 과정에서 그의 공헌은 탁월했다.
그도 신통했나?
참기름을 연지에 섞어 손바닥 위에 바르면 천 리 밖의 일도 환히 볼 수 있었다. 방울 소리를 듣고 예언하면 맞지 않는 일이 없었다.
이런 고승들을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나?
최초의 승전이라고 할 수 있는 ≪삼국유사≫에 그들과 비교할 만한 인물이 몇 나온다.
그들이 누구인가?
초기 경전 번역에 크게 활약한 안청이나 강승회에 비할 만한 인물은 신라에 처음 불교를 전한 고구려의 아도화상이다. 여산 교단을 이끈 혜원에게는 진표율사와 의상대사를, 구마라습이나 도안 같은 학승에게는 풍부한 저술로 유명한 원효대사를, 신이한 행적을 남긴 불도징에게는 자장법사와 원광법사를 견줄 수 있다. 인도에 다녀와 ≪왕오천축국전≫을 남긴 혜초도 구도의 열정은 중국의 고승들에 뒤지지 않는다.
당신은 누구인가?
변귀남이다. 대구한의대학교 중국어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