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로 프레이리, 한국 교육을 만나다: 파울로 프레이리 교육 사상과 한국 민중교육운동
실천과 학습 특집 4. 다시 페다고지를 생각한다
홍은광이 쓴 ≪파울로 프레이리, 한국 교육을 만나다: 파울로 프레이리 교육 사상과 한국 민중교육운동≫
의식화 교육의 2014년 버전
우리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970년의 어느 날이었다. 그로부터 억압과 억압된 자아의 발견, 실천을 통한 세계의 변화가 시작된다. 의식화 교육은 지금 더욱 절실하다. 교육 혁신은 변화이고 실천이기 때문이다.
‘다양화’로 포장된 ‘파편화’, ‘자율’로 포장된 ‘시장주의적 교육 재편’이 광폭하게 진행되는 현실에서 프레이리의 통찰력은 진정한 인간화 교육이 무엇인가를 다시 묻는다.
≪파울로 프레이리, 한국 교육을 만나다: 파울로 프레이리 교육 사상과 한국 민중교육운동≫, xiv쪽.
프레이리가 한국 교육을 어떻게 만났다는 말인가?
이 책은 프레이리의 ≪페다고지≫가 당시 한국 사회에 어떻게 수용되었는지를 살핀다. 역사 과정, 영향, 해석 등을 살펴봤다. 물론 프레이리의 삶, 이론, 실천에 대해서도 개괄적으로나마 의미 있게 정리했다고 생각한다.
한국 교육운동은 어디서 시작된 것인가?
교육을 통한 사회 변화의 시점에서 보면 1970년대 정도가 될 것이다. 1980년대를 경과하면서 사회변혁을 목표로 하는 교육운동으로 진화했다고 볼 수 있겠다.
출발점에 그가 있었나?
그렇다. 1970년대 교육운동은 기독교 단체 내에서 진행되거나 야학운동이었다. 운동의 방향을 찾는 데 프레이리의 영향력이 컸다. 1980년대가 되면 마르크스가 등장하지만.
남미의 교육 실천 이론가는 어떻게 1970년대 한국 교육운동과 만난 것인가?
해방신학이 교육운동의 모태가 되기도 했고 저항민족주의운동 또는 종속이론의 영향도 있었다. 분명한 것은 당시 한국 교육운동이 저항적 의미의 ‘의식화 교육’의 방법론으로 프레이리의 교육 이론과 실천을 자신의 원형으로 삼았다는 사실이다.
당시의 의식화 교육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저항교육의 상징이었다. 프레이리의 의식화 교육론은 우리에게 국가로부터의 교육을 ‘은행예금식교육’이라고 개념지어 비판할 수 있는 틀 거리를 제공했다.
무엇을 형성하는 틀이었나?
교육의 사회적 기능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전 단계의 시각을 프레이리가 제공한 것이다. 저항적 교육의 정립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한국 교육운동을 시기로 구분한다. 무엇을 기준으로 나눈 것인가?
우리나라 진보운동은 1980년대 이전 시기, 1980년대와 1995년까지의 시기, 1995년 이후의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1980년부터 ‘과학적 사회주의 이론’이 들어온다. 1990년대 중반에는 시민사회운동론이 들어오면서 전통적 대중운동론이 달라진다. 1995년 ‘5·31교육개혁안’도 이 시기에 나왔다.
1980년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기독교 단체와 야학이 프레이리 사상을 흡수했다. 1970년대 초반 진보 신학자 그룹과 야학 활동가들의 교육운동 기본 방향 정립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때는 마르크스주의가 전면적으로 유입되기 전이고 알린스키(S. D. Alinsky)의 조직화 이론과 프레이리의 의식화 이론이 도시 빈민,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실천의 중심축이었다.
1980년대는 사정이 어땠는가?
초반에는 마르크스주의가 활발히 운동 진영에 유입되면서 각종 이론 논쟁이 촉발되었다. 결정론적 경향이 강해지면서 프레이리의 의식화 교육론은 지배이데올로기에 맞서 저항이데올로기를 형성하는 핵심 과정으로 간주되었다. 이전에 비해 교육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비판적 분석 등 과학적 개념이 확산되었다. 반면 의식화 교육에서 주체의 능동적 인식 과정에 대한 의미가 위축되고 저항 이데올로기라는 의식화 교육의 결과를 더 중요시하는 태도가 강해졌다.
과정보다 결과를 중요시하게 되었다는 말인가?
의식화 교육의 과정과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인간 주체의 발전이라는 교육의 능동성보다 의식화 교육의 내용이나 결과, 곧 비판적 사회의식을 강조하는 성향이 강해졌다.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는 우리 교육운동을 어떻게 바꾸는가?
포스트모더니즘이 등장한다.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에 기반을 둔 이론과 실천이 흔들리면서 교육운동의 이념적 지향도 혼란을 겪는다. ‘5·31교육개혁안’에 대해 교육운동이 정확한 입장을 표명하지 못할 정도로 이념 혼란기에 접어든다.
이때 프레이리는 어디 있었는가?
국내에서 그에 대한 관심도 급히 사라진다. 1980년대에 과학적 사회주의론의 하위 이론으로 프레이리를 받아들였던 한국 현실에서는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프레이리 르네상스가 시작된 이유는 뭔가?
마치 초기 마르크스주의의 생명력을 찾기 위한 시도를 보는 듯했다. 그러나 그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하는 데까지는 가지 못했다. 대안
으로 비고츠키가 지목되었고 성과를 만들고 있다.
오늘 한국에 비판교육론 또는 진보 교육 이념이 있는가?
2000년대 후반부터 대한민국 공교육의 진보적 재편을 위한 큰 그림이 제출되었다. 2010년에 진보 교육감이 탄생하면서 여러 실천과 그 실천을 뒷받침하는 이론들이 수용되기 시작했다. 이른바 북유럽식 교육 선진국의 실천 사례와 이론이 그것이고, 그 뒤에 비고츠키가 있었다.
대한민국 교육학계의 비고츠키는 누구인가?
처음엔 ‘구성주의 교육 이론가’, ‘근접 발달 영역’ 정도로만 소개되었다. 2010년을 전후로 연구가 누적되면서 진보적 교육론의 이론적 배경을 형성하고 있다.
이제 한국 교육은 무엇을 꿈꿀 수 있는가?
진보 교육이 비판을 넘어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고, 대안이 되는 것이다. 교육 이론이 실천을 기반으로 하고, 이론과 실천이 서로를 넘나들면서 상호 진화하고 발전하는 수준이 우리가 목표하는 교육 현실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홍은광이다. 강원도교육청 정책기획담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