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십리
박인희가 현대어로 옮긴 ≪명사십리(明沙十里)≫
인간관계의 원근법
사랑하면 가까워지고 시기하면 멀어진다. 대가 없는 사랑은 은혜가 되고 감동은 보은을 낳는다. 시혜와 보은은 사랑의 이름이다. 인간의 멀고 가까움이 여기서 비롯된다.
이때 북두칠성(北斗七星)은 중천에 빗기어 명랑한 서기(瑞氣)가 왕 씨가 누운 옥창(獄窓)으로 전기 광선을 쏘듯 하는데, 왕 씨 부인은 복중이 점점 요란하여 정신을 수습하지 못할 즈음에 그 학이 조그마한 유리병 하나를 물어다 부인 앞에 놓으니, 부인이 먹으라고 하는 줄 알고 의심 없이 따라 먹으니 이윽고 배 속이 편안해지며 일개 옥동자(玉童子)를 낳으니, 부인과 춘매 기뻐하며 한편으로 아이를 살펴보니 골격(骨格)이 비범하고 왼팔에 은은한 칠성(七星)이 완연히 있어 부인이 탄식하여 말했다.
“천우신조(天佑神助)하여 목숨만 살아나면 장 씨 후사(後嗣)를 빛내려니와 당장 목숨을 어찌 보전하리오.”
한편으로 눈물을 머금고 강보에다 싸니 홀연 그 학 둘이 앞에 와서 날개를 잇대고 엎드리며 삐죽한 입으로 부인의 옷을 물고 지근지근하였다. 부인이 그 거동을 보고 깨달아 말했다.
“이는 천지신명이 장 씨 무후(無後)함을 애석히 여겨 저 학으로 아이를 데려다 살리게 함이니 내 무엇을 의심하고 지체하리오.”
하고 한편으로 옷 동정을 떼어 손가락을 깨물어 아이의 생월생시를 쓰고 이름은 장유성이라 지었는데, 이는 끼칠 유(遺) 자, 별 성(星) 자였다. 끼칠 유 자는 유복자(遺腹子)를 응함이요, 별 성 자는 왼팔에 북두칠성을 응하여 지은 것이었다. 쓰기를 마친 후 아이를 싼 강보에 넣고 학의 등에다 업히어 단단히 매니, 학 하나는 그 위에 가 엎드리어 날개로 아이를 가려 보호하며 일시에 날아 중천으로 솟더니 부지거처(不知去處)로 가 버렸다.
≪명사십리≫, 지은이 모름, 박인희 현대어로 옮김, 88~89쪽
옥동자 장유성은 누구의 자식인가?
아비의 이름은 충신 장경문이다. 간신 정필구의 모함으로 유배 가고 아내는 옥에 갇혀 출산한다. 하늘이 불쌍히 여겨 청학을 내려 보낸다.
모함의 연유가 무엇인가?
정필구가 권력을 제 마음대로 휘두르자 이를 바로 잡기 위해 황제에게 상소했기 때문이다.
청학이 날아간 부지거처는 어디인가?
장유성의 할아버지 장연수에게 은혜를 입은 윤광옥과 진평중에게 데려간다. 이 둘은 어릴 적 부모를 여의고 장연수의 집에서 자랐다. 자신들이 입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장유성을 살리려 한다.
생존을 도모하는 방책이 무엇인가?
윤광옥은 자신의 아들과 장유성을 바꾸고 산으로 도망간다. 진평중은 윤광옥의 아들을 장유성인 체하고 일부러 정필구에게 잡혀 죽기를 작정한다.
은혜를 갚기 위해 자식과 자신의 목숨을 던지는가?
그렇다. 윤광옥은 자기 자식을, 진평중은 자신의 목숨을 던지려는 것이다.
산으로 도망간 장유성은 살아남는가?
윤광옥 밑에서 자라다가 하옥산 진인에게 맡겨져 8년 동안 공부한다. 그러던 중 정필구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는다. 비범한 능력으로 전쟁터에 나가 반란을 평정하고 정필구를 사로잡아 황제에게 바친다. 아버지, 어머니와도 해후한다.
진평중과 윤광옥은 어떻게 되는가?
진평중은 가족과 상봉하고 윤광옥은 오래전에 헤어진 아들을 만난다. 이 과정에도 장경문과 진평중에게 은혜를 입은 이들의 도움이 있었다.
보은담인가?
작품 전체에 걸쳐 시은과 보은의 관계가 중요하게 다뤄진 윤리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시은과 보은은 어떤 특징을 갖는가?
고전소설에서는 대개 주인공과 특정 인물 사이에서만 시은과 보은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주요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시은과 보은이 얽힌다. 등장인물들 사이의 시은과 보은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은과 보은이 얽히는 등장인물은 또 누구인가?
정필구의 부하 중에 김치근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장경문에게 은혜를 입은 적이 있다. 이 때문에 정필구가 죽이라고 명한 장경문과 부인 왕 씨, 진평중과 윤광옥 아들을 차례대로 살려 준다. 주인공 주변 인물로는 진평중에게 보은하는 정 소저도 있다.
정 소저는 어떤 역할을 하는가?
목숨을 건진 진평중과 윤광옥 아들이 그녀의 집에서 지낼 수 있게 한다. 전에 진평중에게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다.
≪명사십리≫라는 제목은 시은과 보은을 의미하는 것인가?
직접 관련은 없다. 명사십리는 본문 가운데 해당화가 활짝 핀 들판을 가리킨다. 제목을 그렇게 붙인 의도가 무엇인지 불분명하다. 시은과 보은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제목으로는 ≪보심록(報心錄)≫이 분명하다. 보심은 보답이란 뜻이다.
≪보심록≫은 어떤 책인가?
≪명사십리≫보다 몇 년 전에 간행된 소설이다. 유사한 작품으로 ≪금낭이산(錦囊二山)≫도 있다. 세 작품의 내용은 몇 군데 차이가 있지만 거의 유사하다.
이것들은 언제 간행된 작품인가?
개화기 때 간행된 작자 미상의 구활자본 고전소설이다. 일찍이 김태준은 ≪조선소설사≫에서 이 작품을 영·정조 때 것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건 명백히 아니다.
개화기라고 단정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작품 속에 ‘전기 광선’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전기는 고종 때 경복궁에서 최초로 사용되었으므로 그 이후에 나온 것이 맞다고 본다.
이 책이 대중의 흥미를 끈 이유는 무엇인가?
작품 후반부에 군담이 들어간 것이 한몫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이 책이 간행된 때는 1910년대로 일제강점기다. 어려운 시기에 시은과 보은의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박인희다. 국민대 교육대학원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