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여인의 편지 천줄읽기
존재한다는 것의 행복
세밑 편지의 마지막 발신인은 잉카의 공주 질리아입니다.
결혼식 날 아침 스페인 사람들에게 잡혀 프랑스에 끌려와
낯선 세계에서 이방인으로 절망의 세월을 살면서도
새로운 기쁨과 즐거움을 찾아 나섭니다.
그녀처럼 내가 살아 있다는,
이 순수한 행복을 기억하고 즐긴다면,
우리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고독이 나의 건강을 해칠까 염려하지만 그것은 기우입니다. 데테르빌, 건강을 해치는 것은 나태입니다. 습관은 모든 것을 무미건조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항상 바쁘게 살다 보면 그런 것에서도 새로운 기쁨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자연의 비밀을 깊이 천착하지 않더라도, 단지 자연의 경의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나의 하루는 즐거울 것이며 또한 그것을 통해 매일 새롭고 다양한 일거리를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우주에 대해, 그리고 내 주변의 사물들과 나 자신의 존재에 대해 피상적인, 그러나 매우 흥미 있는 지식을 충분히 얻으려면 아마 한평생을 다 바쳐도 부족할 것입니다.
존재의 즐거움, 많은 눈먼 인간들이 잊어버린, 심지어는 아예 모르고 지내는 이 즐거움, 내가 있다, 살아 있다, 그리고 나는 존재한다, 우리가 이 감미로운 생각, 이 순수한 행복을 기억한다면, 그것을 즐길 줄 알고, 그 가치를 안다면, 우리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오세요, 데테르빌, 이곳에 와서 우리 영혼이 소유한 모든 자원과 자연이 우리에게 베푼 모든 은혜를 알뜰히 절약하는 방법을 배우세요. 우리 존재를 소리 없이 파괴하는 격앙된 감정을 포기하고 순박하고 지속적인 즐거움을 발견하세요. 그것을 나와 함께 향수합시다. 나의 마음과 우정과 감정을 모두 드릴 테니 그것으로 사랑의 감정을 벌충하십시다.
≪페루 여인의 편지≫, 편지 41: 파리에 있는 데테르빌 기사에게, 176~177쪽
불멸의 편지
이 소설은 프랑스로 끌려온 잉카 공주의 편지 모음이다. 1747년에 출간된 이후 30년 동안 46판을 거듭한다. 한동안 잠잠하더니 20세기 후반 다시 인기를 얻는다. 지금은 프랑스 문학의 정전으로 자리 잡았다. 사랑, 사회, 이그조티즘과 페미니즘이 있었다.
≪페루 여인의 편지(Lettres d’ne Peŕuvienne)≫, 프랑수아즈 드 그라피니(Françoise d’lssembourg d’Happoncourt de Graffigny) 지음, 이봉지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