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가사|초판본 김소월 시선|왕안석 시선|홍콩 시선 외
시를 학습하는 아이들
한 시인이 자신의 시를 갖고 낸 수능 모의고사 문제를 풀었다.
세 문제 중 하나도 맞히지 못했다.
시란 그런 것이다. 객관식도 단답형도 아니다.
아이를 객관식으로 키우고 싶은가?
그렇지 않다면,
교과서에 갇힌 창백한 시 교육에서 벗어나
아이들 스스로 다양한 시 세계를 탐험하며
상상력을 키우고 시인의 영혼을 품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
교과서를 벗어나 느끼는 우리말의 아름다움
송강 정철, 수많은 학생을 고문(拷問)했던 고문(古文) 수업을 통해 낯익은 이름이다.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제목도 줄줄 외우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감동은? 송강의 작품이 두고두고 명문으로 회자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단지 시험을 위해 외웠던 작품으로 기억하기에는 아깝지 않은가? 미려한 가사와 쫄깃쫄깃한 사설시조를 함께 엮었다.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송강가사≫, 정철 지음, 김갑기 옮김, 한국
진짜 소월의 힘
소월의 작품을 초판본 그대로 소개한다. 현대 맞춤법에 맞춰 표백된 시어가 아니라 시인이 쓴 날것 그대로의 시어를 맛볼 수 있다. 민족 정서인 ‘한’을 민요조의 리듬으로 풀어내 한국 현대시사에 일획을 그은 시인, 시인과 평론가 100명이 선정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시인…. 이런저런 수식어도 다 부질없다. 초판본 그대로의 <진달내꼿>을 음미하다 보면 어느새 가슴 한 자락이 저릿해진다. 진짜 소월의 힘이다.
≪초판본 김소월 시선≫, 김소월 지음, 이숭원 엮음, 한국
개혁 사상가의 또 다른 얼굴
왕안석의 신법 개혁은 교과서에도 나온다. 그러나 그가 문장으로 유명한 당송팔대가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물며 시라니? 그가 평생 지은 시는 1600여 수에 달한다. 천재 시인 왕안석. 청소년에게 위대한 개혁 사상가의 또 다른 얼굴을 만나 보기를 권한다. 문학성은 물론, 그 글에 담긴 진보적인 사상과 추진력, 애국애민 정신에 감탄할 것이다.
≪왕안석 시선≫, 왕안석 지음, 류영표 옮김, 중국
홍콩인의 정체성 찾기
사회주의 국가에 속한 자유 무역 도시. 동양인이지만 서양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을 중국인도, 영국인도 아닌 ‘홍콩인’이라 생각한다. 그런 홍콩인들의 시를 엮었다. 유유자적하며 청풍명월을 노래하는 옛날 옛적 케케묵은 시가 아니다. 지금 살아 숨 쉬는 홍콩인들의 치열한 고뇌를 담았다. 동양과 서양,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경계에서 정체성을 찾으려 몸부림치는 홍콩의 자아는 바로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이다.
≪홍콩 시선 1997∼2010≫, 룡빙콴 외 지음, 고찬경 옮김, 홍콩
호찌민이 한시로 유머를?
호찌민 주석이 베트남 독립운동 중 중국 국민당에게 잡혀 수감 생활을 하면서 쓴 일기다. 산문이 아니라 시로 썼다. 한문 정형시 안에 소탈한 내용을 솔직하게 담아냈다. 비참한 옥중 생활을 때로는 사실적으로, 때로는 유머를 담아 재치 있게 묘사했다. 그러나 뛰어난 시의 기법보다 더욱 감탄을 자아내는 것은 그 글에서 묻어나는 호찌민의 애국심과 숭고한 인격, 따뜻한 마음이다.
≪옥중일기≫, 호찌민 지음, 안경환 옮김, 베트남
네루다 시 세계로의 여행
20세기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되는 네루다의 걸작들을 영어 중역이 아니라 원전에서 그대로 옮겼다. 끝 간 데 없이 펼쳐지는 광범한 존재와 언어의 내적 심연을 동시에 감싸 안을 수 있었던 시인의 깊이 있는 시어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살아 있다. 전문가의 친절한 해설과 주석은 한 줄 한 줄 마음을 울리는 그의 시 세계로 독자를 안내하는 데 모자람이 없다.
≪네루다 시선≫, 파블로 네루다 지음, 김현균 옮김, 칠레
살아가도 좋을 것인가?
낯선 이름의 시인은 묻는다. 시를 써도 좋을 것인가? 살아가도 좋을 것인가? 웃어도 좋을 것인가? 아우슈비츠의 고장에서 나치의 학살과 전쟁의 폐허, 사회주의의 폭압 정치를 살아 냈다. 고통, 죄책감, 분노, 좌절로 괴로워하는 청소년에게 추천한다. 인간에 대해, 삶에 대해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고뇌했던 시인의 고백이 공감과 이해, 치유와 성숙으로 이끈다.
≪루제비치 시선≫, 타데우시 루제비치 지음, 최성은 옮김, 폴란드
소설에 ≪어린 왕자≫가 있다면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작품이지만, 거창하고 거리감 느껴지는 어려운 글이 아니다. ‘나’의 소중한 친구 은빛 나귀 ‘플라테로’의 삶을 그린 동화 같은 시다. 인생의 아픔과 슬픔을 숨기지 않았지만 마치 한 폭의 파스텔화 같은 따뜻한 느낌을 준다. 평론가들은 소설에 ≪어린 왕자≫가 있다면 시에는 ≪플라테로와 나≫가 있다고 격찬했다.
≪플라테로와 나≫, 후안 라몬 히메네스 지음, 성초림 옮김, 스페인
전쟁, 재앙, 꿈, 청춘, 그리고 전통
시인 사모일로프는 “전쟁, 재앙, 꿈, 청춘”을 동시에 안고 살아야 했던, 러시아의 비극적인 1940년대 세대의 대표 주자다. 그러나 그의 시는 분노로 울부짖지 않는다. 남들이 앞다투어 모던, 포스트모던을 외치던 시기에도 ‘전통주의자’임을 자처한 그는 러시아 시 전통의 흐름 속에서 진정성이 녹아 있는 시를 창작했다. 따뜻하고 차분한 그의 시를 국내에 처음 소개한다.
≪사모일로프 시선≫, 다비트 사모일로프 지음, 박선영 옮김, 러시아
흩어진 자아의 조각을 꿰매다
퀘벡 지식인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가스통 미롱의 작품집이다. 프랑스인들이 개척했지만 영국 식민지가 되었고, 영국 연방 캐나다에 속하지만 아직도 프랑스어로 말하며 독립을 염원하는 ‘작은 프랑스’ 퀘벡. “꿰맨 인간”은 “흩어진 정체성의 조각들을 꿰매고 이어서, 상처는 있으나 본래 모습을 되찾은 인간”을 뜻한다. 그의 시편들에서 우러나는 퀘벡인들의 슬픔은 우리에게도 공감을 일으킨다.
≪꿰맨 인간≫, 가스통 미롱 지음, 한대균 옮김, 퀘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