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형사 홍윤식
무서운 책 6. 1933년 단두 유아 사건의 전모
성기웅이 쓴 ≪조선 형사 홍윤식≫
대한민국 서울의 거의 모든 문제
봉건 왕조의 몰락, 제국의 침탈, 식민의 정착, 도시의 출발, 모더니즘의 도래 그리고 아직 사라지지 않은 주술과 아직 나타나지 않은 이성이 혼재된다. 80년 전, 1930년대 식민지 경성이 자리를 잡아 간다.
고학생: 호외요−호외−! 조선중앙일보 호외요−!
죽첨정 3정목에서 그로−테스크한 사건 발생이오−!
금화장 고개에서 젖멕이 어린애의 잘려 나간 머리통 발견이오−!
호외요−호외−!
온 경성을 놀래 자빠뜨릴 젖멕이 머리통 유기 사건!
새루 나온 신문, 소식 빠른 신문, 조선중앙일보가 제일등으로 알려 드린다는 것을 필히 알아달라 하오−!
호외요−호외−!
≪조선 형사 홍윤식≫, 성기웅 지음, 12∼13쪽
머리통이 잘려 나간 어린애는 누구인가?
서대문경찰서 사법계 소속 사건 담당 형사들은 잘린 아기 머리를 경성제대 의학부로 보냈다. 법의학이 피해자 신원을 밝혀 주리라 기대한다.
뭔가 찾아냈는가?
사체를 발견한 때로부터 약 열 시간 이내에 산 채로 목이 잘렸다는 것, 범인은 예리한 도구를 사용해 고의적으로 뇌수를 파냈다는 것, 사체 발견 현장과 범행 현장은 다르다는 것, 송곳니가 난 것으로 보아 피해자는 만 1세 내외라는 것, 성별은 남자라는 것을 알았다.
범인을 유추할 수 있는 결과인가?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조선의 셜록 홈즈라는 형사 홍윤식은 사체 외에 현장에서 발견된 물품에 대한 감식이 소홀했다고 지적한다.
현장에 발견된 물품은 무엇인가?
아기 머리통을 감쌌던 하트롱 종이가 있었다. 감식반에서는 종이에 묻은 흙과 현장의 흙이 다르다는 것 외에는 밝혀 낸 게 없다.
홍윤식은 무엇을 알아냈는가?
모교에서 현미경을 빌려와 증거품을 직접 조사한 결과 그것이 쌀봉투였다는 것을 밝혀 낸다.
쌀봉투라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나?
하트롱 종이를 사다 봉투를 만드는 건 대개 쌀집에서 직접 하는 작업이다. 쌀집마다 봉투를 접는 모양과 방법, 솜씨가 다르다. 현장에서 발견된 하트롱 종이와 같은 재질의 종이를 파는 상점을 찾고, 그 거래처 중 쌀집만 탐방 수사한다면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탐방 수사에 진척이 있었나?
그 쌀봉투가 아현리 미곡 상점 김춘홍 쌀집 것임을 알아낸다.
김춘홍 쌀집이 범인인가?
홍윤식이 쌀집 근처에서 잠복한다. 얼마 전 한 살배기 조카 기옥과 사별했다는 손님 한영이를 만난다. 그녀가 피해자 가족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한영이가 피해자 가족 맞는가?
한영이와 한창우 남매를 찾아가 심문한다. 이들은 금화장에서 발견된 아기 머리통은 기옥이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주장의 근거는 무엇인가?
사건은 기옥이 죽은 날로부터 닷새가 지나 발생했다. 기옥이 죽은 날 부친 한창우는 직접 사망 신고했다. 기옥은 여자아이고 발육이 느려 송곳니가 나지 않았다.
기옥의 사체를 확인하면 되지 않는가?
홍윤식이 사체 확인을 주장하지만 한창우는 기옥을 어디에 묻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미제 사건으로 끝나는 것인가?
홍윤식 일행은 기옥을 묻었다는 염리 공동묘지를 찾지만 길을 잃고 헤맨다. 그러다 도깨비들의 도움을 얻어 기옥의 무덤을 찾는다. 거기서 머리 없는 아이의 사체를 발견한다.
누가 범인인가?
한영이가 자백한다. 어느 부잣집 영감 부탁으로 기옥의 무덤을 파헤치고 죽은 아이의 머리에서 뇌수를 꺼내 10원에 팔았다는 것이다.
아이의 뇌수를 어디에 썼는가?
부잣집 영감에게는 간질병을 앓는 손주가 있었다. 간질병에 아이 뇌수가 잘 듣는다는 소문이 돌았다.
한영이의 자백은 사실인가?
부검을 맡았던 경성제대 의학부에서는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머리통과 기옥의 몸뚱아리가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소견을 내놓는다. 그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된다.
홍윤식도 동의하는가?
그는 살해된 아이가 남자일 거라는 최초 감정 결과를 기억한다. 부검 소견을 미심쩍어하다가 홀연 경찰서를 떠난다.
어디로 갔는가?
머리와 몸통을 합장해 기옥의 무덤을 새로 만든 지 며칠이 지나 묘지 관리인은 머리통이 사라진 것을 발견한다.
이번에는 누구의 짓인가?
홍윤식이 머리통을 가져다가 염리 공동묘지 인근을 헤매며 원래의 몸뚱아리를 찾아다닌다는 소문이 무성할 뿐이다.
그 시대에는 이런 일이 실제로 있었는가?
전기수 전봉관의 책 ≪경성기담≫에 나오는 “죽첨정 단두 유아 사건”에서 소재를 얻었다. 1933년 5월에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이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매일신보≫에 보도된 관련 기사들과 잡지 ≪신동아≫ 1933년 7월호 기사 “단두 유아 사건의 전모”를 참고했다.
이 희곡의 초연 반응은 어땠나?
2007년 4월, 김재엽 연출, 극단 드림플레이 제작으로 초연했다. 1930년대 경성을 무대에 재현하며 관객에게 색다른 재미를 선사했다.
당신의 작품 가운데 1930년대 경성을 무대로 한 희곡이 또 있나?
2007년 발표한 <소설가 구보 씨의 경성 사람들>, 2008년 발표한 <깃븐 우리 절믄 날> 등이 있다.
왜 1930년대 경성을 쓰는가?
현대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시대, 지금의 도시 서울이 형성된 때가 1930년대 경성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 모든 문제들이 그 시대에 다 생겨난 것 같다.
당신은 누구인가?
성기웅이다. 극단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를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