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페의 희망 교육
저자와 출판사 10. 허준 교수
여기밖에 없었어
≪페페의 희망교육≫은 번역부터 출간까지 10년이 걸렸다. 특별히 분량이 많은 것도 아니고 내용이 난삽하지도 않다. 고대어나 희귀언어로 쓰인 고전도 아니다. 필리핀의 문해교육 과정의 이론과 실천을 기록한 책이다. 그러나 허준은 번역을 마친 뒤에도 7년 동안이나 이 책의 출판사를 찾지 못했다. 그러고 이번에 책은 세상에 등장했다.
무슨 일이 있었나?
학이시습밖에 출판할 곳이 없었다. 7년 전 이 원고를 한 출판사에 가지고 간 적이 있었다. 그때 프레이리 책을 번역한 원고도 함께 가지고 갔는데, 그 원고만 출판됐다.
왜 출판하지 않았을까?
잘 팔릴 책 같지 않았겠지. 그 후에도 몇 군데 출판사에 의뢰해 보았지만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학이시습은 달랐나?
소외되었던, 출판이 불가능해 보였던 원고를 책답게 만들어 출판했다.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학이시습의 안목이 특별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아니겠나?.
이번 출간에 만족하나?
매우 만족한다.
어떤 느낌이었나?
책을 ‘만든다’는 것이 고도의 창조적 작업이구나라는 것을 절감했다.
출판은 처음인가?
다른 출판사에서 저서를 낸 적이 있다. 그곳에선 모든 것을 저자에게 일임했다.
학이시습은?
책을 ‘함께’ 만들어갔다. 출판사의 입장을 강요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어떻게 하는 게 함께 만드는 것인가?
역자나 저자는 자기 글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그래서 책을 만들 때 못 보는 부분이 있다. 학이시습은 출판사와 독자의 입장에서 이 부분을 채워주는 역할을 해주었다.
학이시습과의 특별한 인연은?
이 출판사가 만들어질 때 기획위원으로 참여했다.
어떤 역할인가?
주로 민중교육 영역의 원고를 발굴하는 역할을 했다. 처음에는 책 기획에만 참여하다가 최근에 동료들과 번역한 ≪페페의 희망 교육≫을 출간하게 되었다.
역자와 기획위원 가운데 어느 역할이 더 좋은가?
기획위원이 더 좋다. 역자의 역할은 자기 글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골방에 갇히게 된다. 그러나 기획자는 좋은 사람들과 좋은 글을 찾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고 떠들고 돌아다녀야 한다. 이게 재밌다.
출판사 걱정은 안 되나?
손해는 안 보는지. 내가 기획하고 출판한 책의 상업성이 많이 떨어져서 늘 걱정이다.
학이시습은 어떤 출판사인가?
평생학습 전문 출판사다.
출범 당시의 사정은?
나는 평생교육 전공자다. 전문 출판사가 등장한다는 사실은 무척 반가운 일이었다. 당시 학습 관련 전문서를 출판하는 곳이 없었다.
현실 가능한 포지셔닝인가?
차별성은 충분했다. 그러나 가능성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었다. 선구자의 길은 험난하니까.
요즘 대학에서 저술과 번역이 인기가 없다. 당신은 왜?
학자의 책무다. 대중을 향한 글쓰기를 하고 싶다. 내게는 번역이나 책을 쓰는 일 자체가 훌륭한 공부이자 글쓰기 수련 과정이다.
번역은 어떻게 하나?
매일 조금씩 한다. 그 순간에는 정말 ‘내 공부’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 번역을 하려면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번역의 덕목은?
번역이란 다른 언어로 된 글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이다. 번역을 통해 원저자의 글도 이해해야 하고 내가 옮긴 글을 읽을 독자도 생각한다. 번역은 내 안에 갇힌 ‘자폐적’ 글쓰기가 아니다. 세상과 소통하는 글쓰기란 무엇일까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드는 열린 글쓰기다.
글쓰기는 언제하나?
지금은 번역에 집중하고 있다. 아침에 2시간은 꼭 번역을 위해 투자한다. 그리고 퇴근 후 저녁을 먹고 아이들 재우면 잠들기 전에 한두 시간 짬이 나는데 그 시간대가 번역 작업에 몰두하기에는 좋다.
무엇을 공부하는가?
박사논문은 사회운동과 공동체학습에 대해 썼다. 이후에는 주로 문해교육과 평생교육 제도를 연구한다. 틈틈이 민중교육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다. 당분간은 현장 연구, 특히 시민사회 영역에서의 학습 양태 연구에 집중하고 싶다.
출간 계획은?
지금 프레이리의 문해교육 관련 책을 번역하고 있다. 번역이 끝나면 사회운동과 공동체학습 관련 책을 집필하고 싶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문해교육 현장 전문가들과 준비한 책이 있는데 이 책도 꼭 출판하고 싶다.
공부는 언제, 어떻게 하나?
늘, 또는 틈틈이. 연구실, 집, 동네 도서관 등등
누구에게 학이시습을 추천하고 싶은가?
책을 통해 새로운 시도와 실험을 해보고 싶은 사람들, 또는 오랫동안 해온 진지한 성찰의 흔적들을 세상에 공표하고 싶은 사람들. 책을 통해 세상을 바꾸거나 행복하게 만들고 싶은 사람들.
당신은 누구인가?
영남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허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