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의상

2409호 | 2015년 1월 20일 발행
배우가 입는 옷
김유선이 쓴 <<영화 의상>>

영화에서 옷의 언어
배우가 입는 옷은 배우의 운명과 현실, 감춰진 욕망을 상징한다.
색과 선, 재질과 패턴, 유행과 스타일은 그가 누구인지, 무엇이 될 것인지를
첫눈에 설명한다.

“영화 의상 디자인은 캐릭터와 결합된 조형물을 만드는 작업이다. 영화 의상은 시각적 측면과 캐릭터 측면을 균등하게 다루며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
‘영화 의상의 요소와 디자인의 기능’, <<영화 의상>>, xi쪽.

영화 의상이 조형물인가?
그렇다. 다양한 옷감과 실, 단추, 지퍼 같은 부속물 또는 장식물을 착용 가능하게 조합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영화 의상은 형태-조형물이다.

이 형태-조형물의 구성 요소는 뭔가?
인체를 감쌀 수 있는 모든 재료다. 색, 선, 질감 같은 시각 디자인 요소를 갖추기만 하면 된다. 종이, 비닐, 플라스틱도 가능하다.

캐릭터와는 어떤 관계인가?
영화 의상은 성별, 나이, 성격, 심리, 취향, 습관, 행동, 직업, 상황, 성장 배경과 같은 캐릭터의 거의 모든 특징을 암시한다. 영화 의상을 잘 활용하면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캐릭터도 표현할 수 있다.

<퇴마록>에서 배우 추상미가 연기했던 악령 캐릭터와 의상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가?
물론이다. 악령이라는 비현실적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일반 의상은 적절치 않다. 그래서 선택된 재료가 섬유 다발, 곧 직물의 원료다. 패턴, 재단, 재봉과 같은 일반 디자인 단계를 거치지 않고 섬유를 배우 몸에 직접 부착하는 방식으로 캐릭터의 형체를 디자인했다. 흐트러지고 뭉개진 섬유의 이미지, 배우의 움직임에 따라 변형되는 실루엣은 정형화된 형태를 갖고 있지 않았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악령 캐릭터를 환상으로 표현했다.

이 책, <<영화 의상>>은 무엇을 말하는 책인가?
영화 속 핵심 시각 요소인 의상의 특성과 기능을 정리했다. 의상의 색, 재질, 선, 실루엣, 무늬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영화 의상에서 색의 기능은 뭔가?
캐릭터의 일면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작품 전체의 시각 디자인 콘셉트를 전달한다. 색이 저마다 고유한 이미지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8명의 여인들>을 보라. 여인들의 옷 색깔 차이로 각기 다른 캐릭터를 표현한다.

옷 색깔이 무엇을 표현하나?
살해된 남자의 부인 게비는 옐로 골드로 탐욕과 욕망을, 욕심 많은 장모는 퍼플로 노년을 상징한다. 큰딸 수종의 로즈 핑크는 사랑스럽고 매혹적인 분위기를, 작은 딸 카트린느의 그린은 순진무구함을, 여동생 피에르트의 레드는 강렬하고 도발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노처녀 처제 오귀스틴의 와인은 감춰진 욕망과 음침함을, 내연의 여인이었던 하녀 루이즈의 블랙앤화이트는 순수함과 동시에 이중성을, 또 다른 하녀 샤넬의 그레이는 성실함과 신뢰를 표현한다.

흑백 영화에서는 의상 요소가 어떻게 활용되나?
의상의 재질이다. 흑백에서는 물체가 명도와 재질로 구분되기 때문이다. 재질은 시각, 촉각 자극을 이끌어 내는 요소다. 화면에 풍성한 감각을 창출한다. 솜털 같은 앙고라 스웨터는 부드럽고 따스한 이미지를, 표면이 거친 질감의 가죽 재킷은 터프함과 강인한 이미지를 표현한다.

의상에서 선의 효과는 뭔가?
직선은 곧고 바른 느낌을, 곡선은 부드럽고 유연한 느낌을 전달한다. 캐릭터의 세부를 묘사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선은 어떤 캐릭터를 구축하나?
직선으로 이루어진 의상 디자인은 단정한, 정직한, 경직된, 직관적, 엄격한 이미지를 캐릭터에 부여한다. 곡선 디자인은 여성스러운, 완만한 이미지를 전달하는 데 효과적이다.

인체의 선은 무엇으로 표현하나?
실루엣이다. 인체에 밀착되는 정도에 따라 크게 슬림한 실루엣과 박시한 실루엣으로 나뉜다.

날씬한 핏과 넉넉한 핏은 각각 어떤 캐릭터를 표현하나?
슬림한 실루엣은 인체의 선을 그대로 드러낸다.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자신감 있고 당당한 캐릭터에 적용된다. 반면 인체와 의상 간 공간이 넉넉하다는 것은 몸을 감추려는 심리가 작용한 것이다. 박시한 실루엣은 자신을 감추거나 드러내고 싶지 않은 소극적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쓰인다.

동일한 의상 요소가 전혀 다른 효과를 낳기도 하나?
그렇다. 여러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와이언 트로피컬’ 무늬를 보자. 남자 캐릭터의 셔츠에 애용되는 이 무늬는 코믹하거나 엉뚱하거나 허풍스럽거나 패셔너블한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주로 활용된다. <아리조나 유괴사건>에 어수룩한 전과자 캐릭터로 나오는 하이가 대표적이다. 이때 하와이언 트로피컬 셔츠는 무능력하고 어리바리한, 행동이 느리고 생각이 없음을 표현한다. 하지만 이 무늬가 영화 설정에 따라 우울함이나 슬픔과 같은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낼 때도 있다.

하와이언 트로피컬 무늬가 우울과 슬픔을 표현한 영화는 뭔가?
사회부적응자 클레런스의 이야기를 다룬 <트루 로맨스>다. 자유분방하고 무모한 청춘을 그린 이 작품에서 그의 하와이언 트로피컬 무늬는 꿈, 희망, 사랑, 동경을 의미한다. 그러나 클레런스의 위험한 도피 과정에서 이 천진스런 무늬는 피에 얼룩져 간다. 클레런스의 꿈과 사랑이 파괴된 것을 의미하며, 여기서 이 무늬는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로 반전한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유선이다. 씨네엔패션 대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