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 시선
2537호 | 2015년 4월 13일 발행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
이규일이 옮긴 이하(李賀)의 ≪이하 시선(李賀詩選)≫
용을 삶고 봉황을 구워
복사꽃이 바람에 날려 붉은 비 내린다.
오늘 세상은 찬란하다.
세월의 소리가 들리면 인생은 기억이 된다.
밤이 시작된다면, 그곳에서 아름답지 않은 것이 있으랴?
하물며 용이나 봉황 따위랴.
將進酒 술을 올리다
琉璃鍾, 유리 술잔
琥珀濃, 호박처럼 짙은 빛
小槽酒滴眞珠紅. 술통에 떨어지는 방울방울은 진주처럼 붉다
烹龍炮鳳玉脂泣, 용을 삶고 봉황을 구우니 옥 같은 기름이 떨어지고
羅幃繡幕圍香風. 둘러친 비단 휘장은 향기로운 바람을 감싼다
擊鼉鼓, 피리를 불고 북을 치며
皓齒歌, 細腰舞. 하얀 이로 노래하고 가는 허리로 춤을 춘다
况是靑春日將暮, 청춘은 곧 저물어가는데
桃花亂落如紅雨. 어지럽게 떨어지는 복숭아꽃 잎은 쏟아지는 붉은 비 같아라
勸君終日酩酊醉, 그대에게 권하노니 종일 거나하게 취하게나
酒不到劉伶墳上土. 유령(劉伶)이라도 무덤에 가져갈 수 없는 술이라네
≪이하 시선≫, 이하 지음, 이규일 옮김, 156~157쪽
용을 삶고 봉황을 굽다니! 중국에 이런 시도 있었는가?
몽환적인 심상과 천재적 언어 구사력을 보라. 이하(李賀) 문학의 예술성을 단번에 보여 주는 그의 대표작이다.
술을 부르는 노래에서 예술은 어디 있는가?
비할 데 없이 화려한 시어 가운데서 언뜻언뜻 나타나는 허무의 그림자를 보라. 술에 취한 이하의 의식에서 섬세하게 흐르는 감정의 라인이 느껴지는가?
그의 언어는 얼마나 화려한가?
농염한 빛의 술이 방울방울 진주처럼 떨어져 보석 술잔에 담긴다. 음악은 선율이 되어 몸을 휘감는다. 미인이 노래하고 그녀의 치아는 희고 곱다. 가냘픈 몸이 춤을 춘다. 복숭아 붉은 꽃잎이 비가 되어 떨어진다.
붉은 비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낙화다. 화려함이 극에 닿으면 퇴폐와 허무가 나타난다. 낙화는 저무는 청춘에 대한 격정과 초조를 암시한다.
그는 저무는 청춘이었나?
27년을 살다 죽었다. 어려서부터 병약했다. 언젠가 찾아올 죽음을 한시라도 잊을 수 있었겠나?
죽음을 무엇으로 표현했는가?
인생의 비애와 죽음의 공포를 놀라울 정도로 집요하게 묘사했다. 그의 시는 240여 수가 전해지는데 그 가운데 ‘사(死)’ 자가 20번 이상, ‘노(老)’ 자가 50번 이상 사용되었다. 사람들은 그를 시귀(詩鬼)라고도 불렀다.
시의 귀신에게 죽음은 어떤 모습이었나?
시간으로 나타난다. 그는 중국 문학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방식으로 시간을 포착하고 표현했다.
이하에게 시간은 언제, 어떻게 찾아오는가?
중국의 문인들은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거나 자신의 노쇠를 한탄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표현했다. 이하는 그러하지 않았다.
그럼 어떻게 했나?
<고된 낮은 짧아(苦晝短)>를 보라. 용의 다리를 잘라 살을 씹어 아침과 밤이 다시는 순환되지 않게 만들겠다고 말한다. 신화 속의 거인처럼, 질주하는 시간을 두려워하고 저주했다.
그가 구한 것은 무엇인가?
시간이 흐르지 않는 공간, 사물이 사라지지 않는 세상이다. 다시 말하면 죽지 않는 것, 영원한 생명을 원했다.
그런 세상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가?
그래서 기이하고 신비한 몽환과 환상의 세계가 나타난다. 기괴하며 음산하기까지 하다. 사랑을 이야기할 때도 불운하게 죽은 소소소라는 기생을 언급하며 생과 사의 경계를 넘는다.
문체는 어떤가?
언어의 일반 규칙을 비틀어 시를 썼다. 가을 분위기를 묘사하면서 “어스름 등불 아래 귀뚜라미 차가운 울음 하얗게 울린다”고 했다. 시인의 마음이 고통으로 가득 차 있음을 시각, 청각, 촉각으로 느낄 수 있다.
그가 시를 통해 찾아간 곳은 어디인가?
한 자 한 자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감정을 최대한 키우려 했다. 언어의 미감을 집요하게 추구했다.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어휘의 선택, 표현의 독창성에 매우 공을 들였다. 시의 구조와 수사에 주력해 인공의 미감을 얻으려 했다.
시작의 방법론은?
떠오르는 시상을 메모했다가 나중에 고치고 다듬어 완성했다. 더 뛰어난 표현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퇴고했다.
중국에 이하와 비슷한 시인이 또 있었는가?
그는 한유, 맹교와 함께 한맹시파에 속했다. 이들은 어려운 글자를 사용해 난해한 표현을 즐겼다. 쉽고 평범한 어휘로 자기 체험을 전달한 백거이 등의 원백시파와는 달랐다.
시인 이하는 중국 문학에서 어떤 평가를 얻었는가?
한맹시파의 마지막 주자다. 화려한 색채미나 유미주의적인 창작 경향이 이후 만당의 시풍에 큰 영향을 주었다. 시가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예술성을 독창적이면서 심도 있게 추구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규일이다. 영동대학교 중국어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