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아도 정거장
그해 여름
멀리 간 날이었다
무서우리만치 많은 나무들이 몰려왔다
다함이 있어야 혼이 들어간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박물관 앞에서 여자를 처음 보고서
눈을 감았다 뜰 때 아주 먼 시간이 어둔 화덕에 피어 있었다
찌그려 신은 한 켤레 시간을 세족시키며
여강가 꽃 피듯 일없이 여자가 앉았다
무슨 물고기를 먹은 그 오후와 저녁 사이
그 식당은 지금 없어졌다 침이 마르듯이
낌새가 없는 일이었지만 식당 뒤
공사장 붉은 흙더미와 고랑 건너 흑백 어딘가에
수줍은 중년이 어떻게 손을 들고 있었나
오색을 다 내줘 버린 자작나무
몸 떨군 가장자리로 가만가만 가져가는
저녁처럼 여자 혼자 살고 있는 곳
이승에서 하루쯤이면 갈 수 있는 곳
요행히 떠나면 잊을 수 있을 듯도 해
그 한나절은 기념이 되었다
다 알 수는 없었지만
마음이 피는 일엔 다함이 있어야 한다는 걸
여자가 눈짓해 준 그해 여름
≪황학주 육필시집 카지아도 정거장≫, 82~83쪽
멀리 간 날
박물관, 여자, 자작나무, 눈짓
그 여름 한나절은 기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