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 준거양식의 이해
2672호 | 2015년 7월 8일 발행
커뮤니케이션은 준거양식이다
정연구가 쓴 <<커뮤니케이션 준거양식의 이해>>
언어로부터의 해방 기획
우리는 언어가 있는 곳에 태어난다.
그 언어대로 세상을 보고, 표현하고, 기억한다.
그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은 화용의 관습으로 저지된다.
있는 말로부터 벗어나려는 해방의 기획은 지극히 어렵다.
“커뮤니케이션 준거양식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는 준거양식이 인간의 사고와 표현을 일정한 방향으로 틀 지우는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를 공기처럼 투명하고 무색무취의 아무런 지향성이 없는 도구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자신도 모르게 채택하는 준거양식 때문에 한 번쯤 꿈꿔 보면 좋을 미지의 세계를 생각할 수도 말할 수도 없게 된다.”
‘커뮤니케이션 준거양식의 이해 이유’, <<커뮤니케이션 준거 양식의 이해>>, 9쪽.
커뮤니케이션 준거양식이 뭔가?
커뮤니케이션은 기호를 사용해서 사람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기호론과 화용론의 측면을 합쳐 만든 개념이다.
기호와 화용을 합친 이유는?
커뮤니케이션은 사람이 만들어 쓰는 것이 아니라 빌려 쓴다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해서 준거양식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무엇을, 어떻게 빌려 오나?
인간이 커뮤니케이션하기 위해 쓰는 언어라는 기호는 아무 생각이 없는 도구가 아니다. 결합 방식을 통해 인간에게 특별한 세계관을 강요한다. 커뮤니케이션 당사자의 화용적 관계도 자기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다. 전통과 관습이 범주 안에서만 가능하다.
언어의 강제성은 어느 정도인가?
내가 태어나서 언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있는 곳에 내가 태어난다. 그리고 그 언어의 짜임대로 세상을 보고, 표현하고, 기억한다. 기호론적 억압을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일이 쉽지 않도록 화용적 관습이 감시한다. 해방적 기획은 지극히 어렵다.
해방의 기획을 포기하면?
현존하는 질서에 편승함으로써 내가 아는 세계 너머는 고민하지 않고 살 수 있다. 편리하다.
편리함이 함께 준 것은?
세상을 새롭게 보거나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다.
사물에 대한 신선한 인식 능력을 보존하려면?
사람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사고한다. 그러나 자아·대인·집단·대중 커뮤니케이션의 어느 경우도 커뮤니케이션에 담긴 내용만 생각하지 이를 담아 옮기는 기호의 본질과 화용적 관계가 지니는 힘을 생각하지 않는다. 이를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어렵지만 변화를 모색할 수 있다.
어떤 변화인가?
인간을 힘들게 하는 것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대부분의 언어에서 삶과 죽음은 반대말이라는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삶의 건널 수 없는 저편에 죽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언어가 만든 해석일 뿐 실재가 아니다. 기호와 화용이 강제하는 해석을 걷어 내면 완전히 다른 세계를 볼 수도 있고, 만들 수도 있다.
기호와 화용의 강제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나?
한국 사회에는 유가적 준거양식이, 서양 사회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레토릭적 준거양식이 있다. 도가적 양식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밖에 언어와 언어를 둘러싼 인간관계를 고민한 철학자의 생각이 다 커뮤니케이션 준거양식이다.
유가적 준거양식은 어떻게 기능하는가?
유가적 기호가 커뮤니케이션 당사자 밖에 초월적으로 존재한다. 유가 철학은 도가 같지 않으면 함께 이야기도 하지 말고 미워하라고까지 가르치기 때문이다. 화자도 청자도 서로가 공유하는 기호 체계에 기대서 논할 수밖에 없다.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기존 가치체계와 세계관이 공고해진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레토릭적 준거양식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고대 그리스 민주정을 배경으로 탄생했다. 경제적 어려움 없이 사물을 자유롭게 탐할 수 있었던 시대다. 시민 사이에서 이루어진 화용적 관행을 전제했기 때문에 화자와 청자는 매우 평등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의견도 일단은 용인될 수 있고 기호론 측면에서 작동하는 언어체계의 구속력도 비교적 느슨하다. 새로운 사상의 생성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클 수 있지만 시민의 자유로운 사고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도가적 준거양식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주류 문명의 언어체계에서 지속적으로 견지한 이항대립구조의 경직성을 배척한다. 쉼 없이 바뀌는 세계를 연속되지 않은 두 개의 대척어로 재단하는 부적절함을 고쳐 볼 수 있다. 화자에게 세계에 대한 언어 재단을 의심하는 낮은 화용적 자세를 권하기 때문이다.
이 책, <<커뮤니케이션 준거양식의 이해>>는 무엇을 다루나?
커뮤니케이션이 사고와 이해를 증진하지 않고 오히려 억압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기호론과 화용론적 제약을 설명하고 세상에 있었거나 주창되었던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준거양식을 설명한다. 준거양식이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도록 요구하는지 살펴보고 한국에서의 해방적 기획은 어떻게 가능한지 논의했다.
커뮤니케이션 준거양식에 주목한 이유가 뭔가?
현존하는 커뮤니케이션 준거양식이 아니라 빈 준거양식, 또는 새로운 준거양식이 그려 내는 세상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정연구다. 한림대학교 언론정보학부 교수다.